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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Nov 04. 2022

'왜?'라고 물을 때, '좋아서'라고 답했다.

회사 사람들이 '왜' 여기에 왔냐고 물을 때면,

나는 그저 '좋아서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내가 원하던 회사에 입사하니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처음 보는 신입에게 궁금한 게 많은 선배들의 호기심이랄까...

나의 이야기에 대해 궁금해하는 회사분들이 내게 다가와 하나 둘 물어보았다.


"'왜' 엔터에 왔어요? 그 정도면 여기 굳이 안 와도 되는데..."

"'' 이 일을 하려고 해? 그 실력이면 다른 데 가서 능력 인정받을 수 있는 일 하지..."
"'' 이 일이 하고 싶어요? 엄청 힘들 텐데..."


그럼 나는 별 다른 말 없이 "그냥 음악이 좋아서요!"라고 대답했다.

나의 한 문장짜리 대답은 아무런 힘이 없는 줄도 모른 채 말이다.


회사에 입사해서 나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일은 회사에 소속된 모든 아티스트들의 앨범과 콘텐츠를 모니터링하는 것이었다. 그 누군가는 침대에 누워서 노트북으로도 할 수 있고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엔터테인먼트를 입사한 신입에게는 가장 필요한 업무일지도 모른다.


모니터링을 통해 아티스트의 장단점, 회사가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성(아이돌이라면 세계관이 될 수도 있다.), 활동 콘텐츠의 흐름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라는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업무 시간을 통해 데이터화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굉장히 유의미하다.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고, 음악을 파악하는 것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될 만큼 좋았다. 이 공간에서 음악에 관련된 모든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과 일을 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했다.


경험이 중요시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특성상, 신입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다.

예를 들면, 윗분들이 사용하신 법인카드내역서를 정리하는 일이라던가,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슛 들어가면 모니터 화면을 회사 휴대폰으로 녹화하는 일이라던가, 우리 팀이 사용하는 자금에 대한 지출품의서를 작성하는 일 정도다. 정말 그게 다이다.


그렇다고 일의 강도가 약하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쏟아지는 촬영 스케줄에 치이고 지칠 수밖에 없다. 촬영 스케줄은 왜 매번 갑작스럽게 잡히는 걸까. 참 의문이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평일에도 일하고, 쉼 없이 일하다 보면 다음 촬영이 또 잡히고... 이렇게 반복되다 보니 일 자체는 쉬워 보일지언정 강도는 아주 강하다.


일을 하다 보면 가끔은 이게 일인가, 심부름인가 혹은 이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 나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충돌들이 나를 좌절시키기도 했다.


나는 이런 일을 하려고 여기 들어온 게 아닌데...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이 좋았던 이유는 내가 이 음악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어지러운 내면을 정돈하고자 더 열심히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하나라도 배울 것을 찾아서 말이다. 힘들지 않냐는 걱정 어린 회사분들의 질문에 진심으로 괜찮냐고 답했다. 열정적인 나의 모습을 보며 어쩐지 안쓰러운 듯이 쳐다보는 회사분들의 표정과 ''를 동반한 여러 물음들에 나는 '좋아서요!'라는 해맑고 순수함을 내비칠 뿐이었다.


조금만 버텨서 나의 경력과 능력을 쌓으면 나 역시도 나의 자아실현을 하며 멋지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힘들고 지칠 때마다 눈 감고 그려보곤 했다. 때때로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긴 긴 시간들이 지나 유의미하게 펼쳐지길 바라며.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언제나 자신이 있었다.


'왜' 여기 왔냐고 물을 때, '좋아서요'라고 답할 자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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