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 속 나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음악이 제일 좋아."
내가 생각하는 가장 어렸을 때의 내가 행복했던 순간은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를 치던 때였던 것 같다.
내 손가락 관절들이 유연하게 움직여서 손가락 끝이 건반에 닿는 촉감,
나의 여러 손가락 끝이 건반에 미끄럽게 닿아 어떠한 음을 낼 때의 소리.
그 모든 요소들이 모여 내가 행복했던 것 같다. 아니, 그때의 나는 분명 행복했다.
7살의 나는 음악을 가장 좋아했다.
중학생 때는 외국에 나가 살았었는데, 사춘기를 맞이한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꾸려갈까 늘 고민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그 고민은 찰나, 나는 결정했다. 음악이다.
부모님이 참 반대를 많이 하셨었다. 부모님의 딸인 나는 평범하게 살아야 하고, 음악은 신이 주신 재능이며, 그 무엇보다 부모님이 그의 자식은 음악을 하며 불안정하게 살길 원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중학생의 나는 고집스럽게도 사춘기를 핑계로 삼아 음악을 하겠다고 선전 포고했다.
중학생의 나는 음악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한국에 돌아와 외국 생활과는 다른 입시 문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나의 성적으로 매겨진 수치들이 내가 갈 수 있는 대학교를 나열했고, 나의 가치가 정의되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고 싶고, 나의 꿈은 궁금해하지도 않는 냉소적인 시스템이 무서웠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담임 선생님이 싫어하는 '예체능' 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자발적인 예체능 학생이 되어 야간 자율학습에 빠질 명분을 만들어 실용음악학원으로 도망갔다. 실용음악학원이 입시에서 자유롭고 행복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인생에 대한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그때부터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의 나는 음악을 가장 좋아했고 그 말에 책임지고자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 속 나는 항상 음악이 좋다고 했었다. 나는 분명하게 기억한다. 분명하다. 분명한데... 나는 왜 이 기억을 원망하고 있을까?
엔터테인먼트에서 음악은 밥벌이 수단이었다. 나에게는 음악이 마음이었는데.
내 마음이 밥벌이 수단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내 마음이 고작 밥벌이 수단밖에 되지 않는 게 내 마음에게 미안했다.
음악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하기 때문에 메시지의 진정성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단기적으로 보면 돈이 안될 것 같아 보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사사로운 마음일 수 있지만, 나의 진심 어린 말들은 이곳에서 설득되지 않았다. 그 누군가는 나에게 꿈에서 깨라고 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온 곳이 너무나도 차가운 현실이라 납득되지 않았다.
음악으로 돈을 버는 산업에서 음악의 진정성을 운운하는 꼴이라니.
내가 너무 어리석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싫어해야 했다.
그래야 나는 음악을 좋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