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SQ(영적 지능:Spiritual Quotient)가 그 답이라면?

by 꿈꾸는 영혼

오늘날, AI를 비롯한 기계와 물질문명은 최첨단으로 발전함으로

우리 삶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손과 몸으로 힘들게 해야 했던 많은 일들을 기계가 대신해주고 있으니까요.


좀 엉뚱하긴 하지만, 예전에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는데요:

'내가 만약 이조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드럼 세탁기 대신 그 많은 빨래를 하느라 손목이 다 나가고,

인덕션 대신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불 지피고,

주방 아일랜드 대신 낮은 부뚜막에서 허리도 못 펴고 밥상 차리면서 평생을 살았을 텐데,

나는 20세기에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감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이같이 삶은 정말 편리해졌고,

사회는 여러 면에서 과거보다 발전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우리 정신과 마음은 더 거칠어지고, 더 혼탁해진 것도 사실이죠.

더 자극적이고, 더 즉각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미디어가

눈만 뜨면 쏟아져 나오고,

소셜 미디어에서는 익명성을 무기로

누군가에게는 치유되기 힘든 상처가 되는 말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그래서 디지털 디톡스에 공감하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

한마디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뭔가가 결핍된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90년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디지털 혁명으로 모든 지식 정보가 공유되면서

우리의 IQ는 이전보다 더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통합과 콜라보를 통해 새로운 결과를 창출하면서

서로에게 공감하고 협업하는 EQ (감성 지수) 역시 과거보다 높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공황장애나 우울증, 조현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는 현대 문명에 지쳐있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정화시켜 주고 치유해 주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뭔가에 대해 찾고 또 찾으면서,

저는 2019년부터 SQ(Spiritual Quotient: 영성 지수)에 꽂히게 됐고,

"인공지능 시대에 성공하려면 SQ를 높여라"는 주제로 제 유튜브 채널(뉴 브레인 tv)도 만들었습니다.


IQ는 논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고,

EQ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능력이지요.


우리는 이 같은 지성(IQ)과 감정(EQ)이라는 두 눈을 통해서 세상을 봅니다.

하지만 이 두 눈으로는 전혀 볼 수 없는

초월성을 보기 위해서는 제3의 시력이 필요하겠죠.

이것이 바로 영성이고,

이를 측정하는 것이 SQ입니다.


SQ(Spiritual Quotient: 영성 지수)란

삶의 의미와 가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현실의 한계를 초월하여 이상을 추구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인 영혼을 탐구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SQ는 IQ와 EQ 형성에 토대가 되고,

인간의 모든 지능을 통합하는 지능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근본적인 지능을 의미합니다.


IQ와 EQ가 규칙이나 정해진 환경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 준다면,

SQ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고,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보여 주는

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삶의 의미와 가치, 삶의 목적에 대해 추구하는 SQ를 통해

개인은 더 행복해지고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으며,

이러한 개인이 모인 사회는 더 안정되고, 더 살 맛 나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주장합니다.


SQ가 발달한 사람은 인격이 갖춰진 자로써,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리더십:

타인에 대한 존중과 포용력, 동기 부여, 문제 해결력, 추진력등을 지닌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서는 이같이 SQ가 발달한 인물들을 통해

SQ가 그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는지 생각해 보고,

지금 이 시대, 우리 삶에도 이 같은 SQ를 실천해 본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현실의 한계를 넘어,

삶의 궁극적 의미와 목적을 찾아가는 영혼(SQ)의 여정을 통해

우리도 행복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요?



영혼의 나침반(SQ)을 따라 목적을 이룬 사람들


<넬슨 만델라 ― 용서로 세상을 바꾸다>


27년간 잘못도 없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있었다면,

누구나 분노와 증오에 잠식되는 것이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넬슨 만델라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둔 백인 정권을 증오하는 대신,

'우리는 하나의 나라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라는 더 큰 비전을 붙들었습니다.


그의 영혼의 나침반(SQ:영적 지능)은 단순히 개인적 고통에 머물지 않고,

“남아프리카의 미래는 화해에 달려 있다”는 더 큰 의미를 향했습니다.


만델라는 IQ에서 오는 전략적 지능도,

EQ의 공감 능력도 탁월했지만,

그를 진정 위대하게 만든 것은

바로 SQ, 즉 삶의 의미와 방향을 향한 영혼의 힘이었습니다.


그 힘이 있었기에 그는 분노 대신 용서를,

복수 대신 화해를 선택했고,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토머스 에디슨 ― 실패 속에서 의미를 붙들다>


전구 발명에 도전하던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실험에 실패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포기했을 그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잘 되지 않는 방법을 1만 가지나 찾아낸 것뿐이다.”


이 말은 단순히 낙관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그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더 깊은 이유를 붙들고 있었기에

수천번의 실패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IQ의 발명 능력이나,

EQ의 협력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집요한 인내와 반드시 목표를 성취하겠다는 비전.


그것은 SQ(영적 지능),

삶의 의미를 붙들고 나아가는 힘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둠을 밝히는 전등 아래 살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의 SQ가 빛을 발했기 때문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고통을 의미로 승화시킨 영혼의 메시지>


예술가는 종종 세상의 상처를 가장 예민하게 감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가난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았지만,

그 고통을 절망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삶에 지칠 대로 지친 그에게 마지막까지 희망을 주었던

들녘에 활짝 핀 '해바라기'와

암흑같이 어두웠던 그의 삶을 비춰준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서

그는 절망을 이기고, 삶의 의미를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빛을 본다”는 깊은 영혼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고흐처럼 SQ가 발달한 예술가들은

삶의 아픔과 고통을 '의미'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새로운 눈과 마음을 열어줍니다.


그들의 작품은 창작에 필요한 기법(IQ)이나 감성(EQ)을 넘어,

인간 존재의 더 깊은 차원 ― 영혼의 울림(SQ) ― 을 전해주니까요.



만델라, 에디슨, 반 고흐....

삶의 처절한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들의 발걸음을 끝까지 지탱한 것은

IQ나 EQ만이 아니라,

“나는 왜 이 길을 가야 하는가”라는 영적 지능, SQ의 힘이었습니다.


그 힘을 통해 그들은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깊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따라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머리(IQ)와 가슴(EQ)만으로는 할 수 없는

선택과 인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SQ, 영혼의 나침반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영혼의 나침반 SQ는 특정한 사람들만이 지닌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실이 너무 힘들 때,

가늠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를 때,

내 마음속 깊은 영혼의 소리(SQ)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


내 삶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무한한 힘을 가진 내 영혼과 함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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