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현실
어느 날 아침 카페에서 구글을 검색하는데, 제 시선을 확 사로잡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주요 기업들은 이제 AI를 이용해 근로자를 완전히 대체하고 있다.
2025년에만 5만 2천 명이 넘는 기술직 근로자가 해고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년 5월 엔지니어 6,000명을 해고했는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해고되자마자,
그들이 훈련시킨 AI가 그들의 업무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글 역시 20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IBM, 드롭박스, 듀오링고등 주요 기업도 이 같은 추세로 가고 있다
개발자 중 일부는 AI를 다루는 관리자로 전환 중이며,
단순 코딩 업무 대신
시스템 검증, 윤리 감시, AI 관리 등으로 업무 영역을 이동하였다.
일부는 아예 그 분야를 떠난 사람도 있었다."
한국은 AI로 인한 일자리 재편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 흐름은 시작되었고,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큽니다.
글로벌 기업들에서 일어난 사례들이
몇 년의 시차를 두고 국내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5년 이내에는 한국 역시 이 변화의 정점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은 일부 IT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자동화 기술이 도입되고 있지만,
곧 대기업·공공기관·교육·금융·의료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될 것입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신호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국내 대기업들이 이미 ChatGPT API를 사내 시스템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스타트업들은 고객 응대, 마케팅, 콘텐츠 제작에 생성형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역시 AI 기반 민원 응대 시스템 도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AI가 일자리를 대체할까?"라는 질문보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를 물어야 할 때입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더 이상 멀지 않았습니다.
5년 안에 한국 사회도 ‘AI와의 공존’이라는
실질적인 선택의 기로에 설 것입니다.
출처: kdi.re.kr, koreajoongangdaily.joins.com
AI 시대 생존의 조건은 ‘AI와 협업하는 능력’입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직무 재교육(Re Skill)과 AI 도구 숙련
정책적 지원: 정부 주도하에 AI 인력양성 및 사회 안전망 확충
인간 중심의 가치 회복: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개발
이것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깊이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예술가는 고통과 감동의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힘을 가집니다.
심리상담가는 한 사람의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에서 삶의 이야기를 읽어내고,
그 마음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창의적 리더는 세상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문제를 재정의하고,
의미 있는 해답을 제시합니다.
다음은 AI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창작'이라는 작업을 중심으로 풀어보았습니다.
AI가 그림을 그리고, 시와 소설을 쓰고, 음악을 작곡한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맥락 즉 ‘작가는 왜 이 글을 썼는가’, ‘무엇을 전하려는가’에 대한 깊이는 따라오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검은 바탕 위에 하얀 점 하나를 찍은 그림'을 봤다고 가정해 보죠.
인간은 이 그림을 두고,
“어둠 속의 희망인가?”, “고독 속에서 찾은 빛인가?”와 같이 수많은 해석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삶의 경험과 켜켜이 쌓인 감정의 깊이 속에서
의미를 끌어내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AI가 만든 최초의 그림 ‘에드먼드 드 벨라미 (Edmond de Belamy)’는 기술적으로는 훌륭합니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43만 2,500달러(5억 8천만 원)에 팔려서 화제가 됐죠.
하지만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이제 AI가 그림도 그리네?'하고 신기해하면서도,
“이건 그저 데이터의 조합일 뿐이야”라고 느끼게 됩니다.
AI의 작품에서는,
붓질 하나에도 수십번의 세심한 손길이 갔을
화가의 마음이 전해져 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면
하지만, 그 그림에 담긴 천진난만함을 통해 우리는 어린 시절 기억들을 떠올려 보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달리 AI는 절대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아요.
AI는 인간처럼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다르죠.
“내가 지금 쓰는 이 문장이 누군가에게 와닿을까?”
“이 멜로디가 내 마음을 다 담고 있을까?”라는
수많은 사유와 고뇌 속에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합니다.
이같이 인간만의 다층적이면서도 섬세한 내면의 감정들을 표현한 작품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이 그림을 처음 보면
강렬한 푸른 소용돌이와 노란 별빛의 대비가 참 인상적으로 다가오지요.
아마도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 그리고 저의 최애 작품이기도 한데요.
하지만 이 그림은 단순히 ‘아름다운 밤하늘’만을 표현한 것만은 아닙니다.
반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 중
창밖에 펼쳐진 밤하늘을 보며 이 작품을 그렸죠.
그의 내면에는 불안, 외로움, 신에 대한 갈망,
그리고 회복되지 않는 우울감이 뒤엉켜 있지 않았을까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이 감정들이 고스란히,
짙푸른 코발트 블루의 강렬한 붓터치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데요.
AI는 이 작품을 ‘별이 있는 밤하늘’로 인식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안에 담긴 고흐의 존재론적 질문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 《절규(The Scream)》
이 작품은 ‘공포’나 ‘불안’이라는 감정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감정의 파장이 어떻게 존재 전체를 휘감는지 보여줍니다.
뭉크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자연 전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절규’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삶 전체를 뒤흔드는 실존적 절망의 메아리입니다.
AI는 이 그림의 형태나 색상, 구도를 분석할 수는 있어도,
그 안에 깃든 인간 실존의 위기와 감정의 깊이를 해석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슈베르트(Franz Schubert) – 《겨울 나그네(Winterreise)》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연인에게 버림받고 떠도는 한 남자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단순한 이별 노래가 아니라,
절망, 체념, 내적 독백, 자기 연민, 죽음에 대한 희망까지
여러 감정이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이러한 다층적 감정은 단순히 노래 가사나 멜로디로는 다 담을 수 없고,
이 곡을 부르는 성악가의 내면과 감정 이입을 통해서만 비로소 완성되는데요.
AI는 이 곡을 분석하고 재생할 수는 있어도,
그 절제된 한숨의 무게까지 담아낼 수는 없겠죠.
AI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의 '감정’을 모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내면의 복잡한 감정 구조
—그 층위와 결, 그리고 삶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는
오직 인간만이 표현할 수 있죠.
이 차이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삶을 살아온 시간, 기억, 고통, 사랑, 상처같은
존재의 밀도에서 비롯된 응축된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엔 ‘감성 시인 AI’도 나왔습니다.
인간의 감성을 그럴듯하게 흉내 내더군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왜’글을 쓰는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가 아닐까요?.
예를 들어, 미국의 아티스트 홀리 헌든 (Holly Herndon)은
AI와 협업해 전자음악을 만듭니다.
하지만 그녀가 이같이 AI와 협업하는 것은
단지 기술을 실험하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그녀는 AI와의 협업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은 기술 시대에 어떻게 재정의되는가?”라는 질문을
음악 안에 담고 있습니다.
홀리 헌든 (Holly Herndon)
튀르키에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 (Refik Anadol)은
AI가 수집한 뇌파 데이터를 활용해
‘기억’과 ‘상실’에 대한 미디어 아트를 만듭니다.
그의 작품은 단지 아름답게 시각화하는 것이 아니라,
잊히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지요.
레픽 아나돌 (Refik Anadol)
이처럼 인간 예술가는 AI를 그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과 아픔, 시대에 던지는 질문을 예술로 표현합니다.
반면 AI가 혼자 만든 작품에는 이런 의도와 사유가 없습니다.
AI의 작품은 마치 심장이 없는 시계처럼
정확하기는 하지만,
심장을 울리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AI는 빠르게, 정확하게, 그럴 듯하게 창작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느리게, 고통스럽게,
그러나 깊이 있게 창작합니다.
AI는 주어진 데이터를 계산하지만,
인간은 경험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습니다.
이 차이는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인간만의 창작에 대한 갈망,
고뇌,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힘이야말로
AI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이 창작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코딩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AI와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인간만이 지닌 감정과 욕망을 승화시키면,
인간의 본질은 더 빛이 날 것입니다.
이로써
AI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AI 시대, 이 모든 변화는 단지 기술의 혁신이라는 단어로 포장되기엔,
시퍼렇게 날 선 예리한 칼날과도 같습니다.
AI라는 이름으로 단숨에 불필요한 사람들을 잘라버리니까요.
그 자리에 가기까지 수없이 시도하고, 좌절하면서 끝끝내 견뎌 온
삶의 소중한 기억들과 시간도 함께...
AI가 만든 코드가
우리의 손을 대신하고,
우리가 해고되면,
그 자리를 AI가 차지하게 되는 이 시대.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만의 가치일까요?
기술은 도구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도구가 우리의 자리를 뺏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존재의 이유와 방향을 다시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이 글은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우리의 자녀는 어떤 미래를 살아야 할까요?"
그리고 이렇게 제안해 봅니다.
AI 자체를 두려워하지 말고, 제대로 이해하기.
인간 본질의 깊이를 성찰하기.
AI에는 없는 ‘인간다움’에 집중하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존재, 즉 영혼이 깃든 존재의 가치를 지키는 길입니다.
이제 여러분 앞에는 두 길이 놓여 있습니다.
“AI가 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AI에게 자리를 내줄 것인가?”
기술은 계속 진화하지만,
인간의 존엄은
스스로 선택하고,
느끼고,
사랑할 때에만 지켜집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출처:1.<https://www.securitycareers.help/the-ai-layoffs-begin-how-artificial-intelligence-is-reshaping-t he-tech-workforce/? utm_source=chatgpt.com
2.<https://www.indiatoday.in/technology/news/story/report-says-microsoft-engineers-worked-to-create-ai-systems-the n-fired-and-replaced-with-same-ai-systems-2728778-2025-05-22? utm_source=chatgp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