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나는 20년 넘게 주로 고등학생들과 수학 공부를 해왔다. 특별한 몇몇 케이스가 아니고서는 1:1로 수업을 해왔지.
우리 수업은 보통 내가 전체적으로 한 단원의 내용을 설명을 해주고 나면 그 상태에서 학생이 기본서 문제를 혼자 풀어오는 걸로 시작을 한다. 물론 개념만 한 번 듣고서 처음 보는 문제를 완벽하게 풀 수 있는 학생은 없다. 그러면 우리는 그 문제를 왜 틀렸는지를 얘기한다. 자기가 문제를 푼 과정을 설명을 하다 보면 왜 틀렸는지를 스스로 찾아내거나 아니면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논리적으로 비약이 있는 부분을 함께 얘기해 볼 수 있다. 학생이 아예 접근 자체를 못하고 있는 경우는 문제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문제에 나와 있는 조건을 다시 검토해 보면서 방법을 찾아내거나 아니면 내가 문제를 풀 수 있는 힌트를 줄 수도 있다. 외워야 하는 공식은 처음부터 학생이 유도를 한다. 옆에서 길만 잡아주면 대부분 직접 유도할 수 있는 문제들만 교육과정에 들어와 있고 아이들이 스스로 증명할 수 없는 내용은 교육과정에 없다. 있다면 그 공식 없이도 문제를 풀 수 있다.
나는 이 방법으로 그동안 수업을 해 왔고, 아이들의 현재 상태에 따라 문제의 난이도는 달라질 수 있지만 이 방법이 먹혀들지 않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이건 기본적으로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대화를 하는 거니까. 우리 수업에서는 그래서 말이 진짜 많다. 어떨 땐 간단한 계산 정도는 말로 하면서 계산을 한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어쩌다가 학원을 시작하게 됐다. 말 그대로 어쩌다가 얼떨결에 아무 준비도 없이. 지인의 건물 1층에 학원 자리가 나왔는데 집기며 다 그대로 있어서 말 그대로 몸만 들어가면 되는 상황이었거든. 코로나 판데믹 상황에 수업도 많이 줄어있었고 어차피 그 동네는 중학생 위주라, 고등학생 수업이 없는 비는 시간에 수업을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시작을 하게 됐다. 그냥 작업실처럼 나가서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으로.
그런데 여기서 보낸 4-5년의 시간이 나에겐 큰 전환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믿음이 흔들리고 내가 너무 좁은 풀의 아이들만 만나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여지껏 나는 나랑 같이 수업을 해서도 안 되는 아이들은 누구랑 해도 안 될 거라는 자신감 같은 게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나는 여태 누구랑 같이 수업을 해도 성과가 좋을 아이들하고만 수업을 해 온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내가 여태 봐 왔던 아이들은 다 비슷비슷한 아이들이었구나, 내가 아는 건 정말 아주아주 일부분의 작은 영역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5년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학원을 접었다.
평소 나는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것은 일종의 행위 예술 혹은 조소 작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아이에 따라 개별적으로 수업을 하는 방식이 다 다르고, 그때그때 서로의 상호 작용으로 수업이 완성된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내가 원하는, 혹은 아이가 원하는, 그래서 우리가 도달하고 싶어 하는 어떤 공통의 상태가 있고, 그게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각자 기대하고 있었던 모습과는 결론적으론 다를지언정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성취를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이 있고, 수업이란 같이 그걸 만들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5년 나는 아이들을 내가 원하는 상태로 끌어당기는 데 실패했다.
이 글은 내 좌절과 실패를 돌이켜 보는 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