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친다는 착각

서문

by 바리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했었다. 꽤 많이 했지. 물론 과장이고 농담이었지만, 종종 동기들이랑 선배들은 나를 과외 재벌이라고 불렀다.

IMF 외환위기와 카드대란의 여파로 대졸 취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똑 부러지고 성실하게 자기 계발도 잘하더라만, 정신 못 차리고 대학생활 내내 방탕(?)하게 보낸 나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졸업 후에도 자연스럽게 과외로 생계를 이어갔다.


과외는 대개 학부모님의 소개로 이어지는 일이다 보니, 운 좋게도 열심히 하는 애들 만나서 (여기서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 계속 비슷하게 열심히 하는 아이들과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어쩌다 성적이 잘 안 나오는 아이들도 있긴 했지만, 그런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소수여서 그랬는지, 나는 그건 그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이 정도의 이해력도 안 되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그래서 한 두어 달 해도 성적이 기대만큼 안 나오면 내가 먼저 그 수업을 그만 두곤 했다. 방법, 피드백, 과제 설계 등의 교수 전략을 조정해 볼 생각은 못 하고, 그런 조정 가능한 요인 대신 ‘학생과의 궁합‘, ‘학습 스타일’ 같은 소리나 하며 애매하고 바꾸기 어려운 요인으로 원인을 돌린 거지. 그게 편하니까.


그러다가 우연찮게 아무 준비 없이 학원을 병행하게 됐는데, 그 몇 년이 나에겐 그전 20년의 경험을 뒤엎는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우리 지역에서는 나름 학군지라고 불리는 동네에서 주로 고등학생들과 수업을 했었고 다수가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었다. 고3 위주라 거의 성인에 가까운 다 큰 아이들이었기에 말도 잘 통하고 (물론 그 아이들은 당연히 나랑 세대차이를 팍팍 느꼈겠지만) 난 수업을 재미있어했다. 수업을 하러 가는 건 목욕탕을 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가기 전까지는 정말 집 밖에 나가기 싫고 귀찮지만, 가서도 좋고, 다 끝내고 나오면 개운하고 즐거운 기분.

나는 수업을 하는 건 뭔가 행위 예술 같은 거라고 늘 생각했다. 1:1 수업이라, 같은 내용의 진도를 나가도 아이의 반응에 따라 매번 전달하는 방식이랑 구성이 달라진다. 물론 교과 내용이 달라지진 않기 때문에 그 단원에서 내가 전달하는 건, 농담까지도 같은 타이밍에 같은 내용이지만, 매번 다른 반응과 다른 질문이 나오고, 나는 2시간을 full로 집중을 하고 아이에 맞춰 반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재미가 없을 수가 있겠어?


하지만 내가 학원을 시작한 곳은 우리 지역에 편입된 군 단위 지역 중에서도 거의 개발이 안 된 곳이었고, 나중에 우리 학원에 놀러 온 친구가 어떻게 여기에서 학원을 할 생각을 했냐고 깜짝 놀랄 정도로, 논밭이 펼쳐진 조용한 곳이었다.

그곳엔 고등학교가 없어서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과정을 거의 모르는 데다가 뭔가 초등학교는 보육의 개념이 같이 포함돼 있어야 할 것 같고 감히 내가 시도할 수 없는 영역 같았다. 나처럼 막말하고 조심성 없는 사람은 애기들한테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았거든.

그래서 우리 학원은 거의 중학생 위주였는데, 솔직히 중학생들도 아직 애기인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중1은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진짜 애기들이었고, 그동안 고1들도 애기라고 부르던 내가 보기엔 중3도 너무 아기 같았다. 내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어린 호모 사피엔스들.

그렇게 처음엔 난 아무것도 몰랐던 거지. 중학생이 얼마나 망아지 같은 존재들인지. 그곳에서 학원을 하는 몇 년 동안 나는 지인들에게 중학생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종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인간은 중학생 무렵에 변태를 해서 완전 다른 종류의 생명체가 되는 건데 내가 너무 오래전에 겪은 일이라 잊고 살았던 모양이라고 ㅋ


어쨌든.

몇 년의 경험 끝에 난 이곳에서의 나의 몇 가지 실험들은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다인수 수업을 효과적으로 설계하는데 실패했고 내가 계속 고수해 왔던 1:1 수업 방식을 해체하고 다른 시스템을 만드는데 실패했다.

한때는 나랑 수업을 해서 성과가 없는 학생은 누구랑 해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오만한 소리를 하고 다닌 적도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여태 누구랑 해도 성과를 낼 애들 하고만 수업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의심스러워졌다.


전인교육을 목표로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는 평균적인 시민을 길러내는 데에 일차적 관심이 있는 공교육과 달리, 나는 사교육은 일단 성적 향상이 젤 첫 번째 목표라고 생각한다. 특히 수학이라는 과목은 누구나 힘겨워하는 과목이고, 점수를 잘 받고 싶어도 원하는 점수가 잘 안 나오는 가장 대표적인 과목이라, 나는 때론 아이들이 공부하는 과정에 젤 어울리는 단어는 struggle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고등학생, 특히 고3은 입시가 코 앞이라 이미 동기부여가 돼 있는 아이들이었다. 같이 공부만 하면 되는 거였다. 아이들이 수학 성적을 올리려고 말 그대로 ‘분투’하고 있을 때, 옆에서 같이 그 아이가 어떤 부분에서 왜 이해를 못 하는지, 어떻게 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방법을 찾아내고, 아이가 극복해 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것, 그 과정이 때로는 짠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런 게 수업하는 재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원이란 곳은 완전 환경이 다른 현장이었다. 게다가 그곳 중학생에겐 아직 입시는 먼 남의 일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느낀 건, 학원이란 곳은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가 공부를 죽어라고 안 하니 붙잡고 공부 좀 시켜달라”는 곳인가 보다,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내가 기본적으로 ’본인이 하기 싫다는데 왜 강제로 시키지?’라는 생각을 장착하고 있는 인간이었던 거다. 물론 외재적 동기의 역할을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돈 내고 학원까지 왔으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당사자에게 1그램이라도 있어야지.

아무튼 교수설계의 첫 단계인 요구분석에서부터, 그 요구조건이 수용이 안 되는데 뭘 하겠냐는 말이지. 결국 난 학원 수업은 접기로 결정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대학 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었기에 평생 아이들이랑 수업을 하면서도 난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자각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냥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수업을 하고 그 아이들을 알아가고 하는 게 즐거웠던 것뿐이지. 근데 이 몇 년의 경험이 이게 ‘내 업이구나’라는 자각을 분명히 하게 해 주었다.

난 그동안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최저 수준으로, 9등급제 하에서 3등급이 마지노선이라고 말해왔는데, 내가 주로 그런 아이들과 수업을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었음을 깨달았다. 인생 편하게 살아왔네,라는 생각도 들고. 그 정도 성적이 안 나오는 아이들을 심각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라고 치부했던 게 얼마나 돼먹지 않은 생각이었나 하는 것도 알게 됐다. 그 학원에도 수는 적지만 고등학생은 있었고, 물론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평균 정도의 점수나 혹은 평균이 안 되는 점수를 받는 아이도 있었다. 그전엔 아이들과 젤 처음 수업을 시작하면서 테스트로 모의고사 문제를 풀게 했을 때 아이들이 보통 7-80점대에서 시작을 했었기 때문에 3-40점 받는 학생들을 처음 봤을 땐 티는 안 냈지만 정말 너무 충격을 받았었다. ‘이게 뭐지?‘ 싶고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판단을 못하겠는 거다. 그치만 생각해 보면 수학 모의고사 평균이 보통 그 정도인데, 그 점수가 이상한 게 아니었던 거지. 그러면서 그전에 내가 수업을 못하겠다고 포기했던 모든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해졌다. 멍청하게도 예전의 나는 그 아이들에겐 치료적 개입이 필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도 했었거든. 내가 여기서 수업을 하지 않았다면 난 계속 그런 반쪽짜리 강사로 남았었겠지.


하지만 나는 수업 중에 맞닥뜨렸던 여러 많은 문제들에서 결국 답을 내지 못했고 학원을 접고 몇 달을 곰곰이 생각하며 정리 중이지만 몇몇 문제는 여전히 모르겠다.


예전엔 수업을 하면서 들었던 말 중에 젤 난감한 얘기가 “그 생각을 어떻게 해요?”였다. 문제의 난이도가 올라가서 소위 ‘킬러문제’라는 걸 풀게 되면, 아이들 중엔 설명을 들으면 알겠는데 혼자서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발상을 못하겠다고 하는 애들이 있었다. 당시엔 왜 혼자선 방법을 못 찾을까, 그걸 어떻게 접근하게 할까가 젤 큰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외우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이것저것 책이나 논문도 찾아보고 교육학 학부 수업도 듣고 그러다 교육학으로 대학원 수업까지 듣게 됐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더 많은 모르는 것들이 생겼다. 기본적인 연산 연습도 혼자서는 반복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왜 어떤 아이는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데 어떤 아이는 문제의 모든 문장과 풀이의 모든 단계를 하나씩 쪼개서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 하는지, 그 아이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뭔지, 왜 어떤 아이들은 모국어로 적힌 글을 읽고도 문제에서 제시된 상황 자체도 이해를 못 하는지, 내가 내려준 처방이 진짜 적절한 방법이 맞는지, 기타 등등. 모르는 것 투성이다. 지금도 여전히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답을 구하고 있다.(제발 누가 답 좀 알려줍쇼 ㅠㅠ)


여기에도 몇 번이나 글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지 모르겠다. 수업하면서 봤던 아이들의 상태와 그 아이들의 학습 과정에 대해 얘기를 해보고 싶다가도, 내가 하고 있는 판단이 맞는 건지 의심스럽고, 또 비록 내가 한 아이를 특정하지 않고 여러 아이들의 특징을 섞어서 얘길 한대도 그래도 내가 수업했던 아이들의 특성에 대해 얘길 하는 게 윤리적으로 옳은 짓인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학원에서 수업을 하며 봤던 여러 이슈들에 대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일단 내 생각이 정리가 안 되는데 그 정리부터가 우선이 아닐까도 싶다.


난 다시 1:1 수업만 하고 있다.

근데 너무 골치가 아프다. 숙제를 못 끝내고 티비나 보고 있는 것처럼 뭔가 찝찝하다.

그래서 맨날 이런저런 생각만 한다.

나이도 먹을 대로 먹고 가장 자신 있던 일이 모든 게 불확실한 상태가 됐지만 그래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뭔가 하나라도 답을 얻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