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나쁜 학생은 없다
O라는 학생이 있다. 열여덟 살, 고등학교 2학년.
교과서 확률 문제를 푸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러면 문제에서 제시된 상황의 가능한 전체 경우를 다 적어보자”라고 했다. 학생은 (1, 1, 1), (1, 1, 2), (1, 1, 3)까지 적더니 이내,
“다 적으려면 너무 많은데요.”
라고 한다.
풀이의 시작부터 어딘가 이상했다. 문제를 다시 읽어보라고 했는데, 여전히 문제에 코를 박고 있다.
“뭐가 잘못됐는지 찾았어?”
“잘못된 것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럼 OO아, 문제를 소리 내서 천천히 한 번 읽어볼래?”
“1부터 3까지의 자연수가 각각 하나씩 적힌 3장의 카드가 들어 있는 상자에서 임의로 한 장을 꺼내어 숫자를 확인한 후 상자에 넣고, 다시 한 장을 꺼내어 숫자를 확인하는 시행을 한다. ......”
“자, 카드를 몇 번 꺼냈지?”
“세 번이요.”
???
이번엔 내가 문제를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준다.
“문제에서 몇 번 꺼냈다고 했지?”
“음…… 세 번……”
???
“왜 세 번이라고 생각해?”
“세 번 아니에요?”
아이가 점점 주눅이 들고 있는 것 같아서, 이건 그냥 흔한 실수라는 듯 “오늘 왜 이래”라고 말하며 웃으며 넘기는 척한다. 하지만 단지 글을 읽고 내용 파악을 하는 것뿐인데 반복적으로 실패를 하고 있어서 나 역시 당황스럽다.
결국 마임을 하듯 동작으로 설명을 해준다.
“잘 봐. 상자가 있어.”
손으로 네모를 그리고.
“거기에 1, 2, 3이 적혀 있는 세 장의 카드가 있어.”
손가락을 세 개를 세워서 확인시켜 준다.
그리곤 손을 상자에 넣었다가 빼서 눈앞에서 숫자를 확인하는 시늉을 하며,
“한 장을 꺼내서 숫자를 확인한 후.”
다시 손을 넣어 카드를 빼내는 동작을 한다.
“다시 한 장을 꺼내서 숫자를 확인하는 시행을 한다.”
그제서야,
“아, 두 번.”
그리곤 실망감을 드러내는 표정을 짓는다. 이 아이는 자신에게 이런 식의 실망감을 느끼는 순간이 지금까지 꽤 있었을 것이다.
이 학생은 이런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1, 2, 3, 4가 적힌 4개의 공이 들어있는 주머니에서 공 두 개를 꺼내 두 공에 적힌 숫자를 곱하는 문제였다. 문제를 다 읽고도 문제가 말하는 상황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도 똑같이 칠판에 주머니를 그렸다. 그 안에 동그라미 4개를 그려 1, 2, 3, 4를 적어놓고, 양손으로 주머니 안에서 공을 꺼내는 시늉을 했다.
공을 움켜쥔 것처럼 둥글게 오므린 두 손이 서로 만나도록 모으며
“이 공들에 적혀 있는 숫자 2개를 서로 곱할 거야.”
라고 말했다.
그제야 학생은 ”아~“하고 이해를 했다.
상황을 재현해서 눈앞에서 보여주면 바로 이해를 하는데 글로는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이 학생은 난독증일까?
읽기 / 작업기억 / 추론과 전이능력
읽기 능력은 인간의 역사에서 극히 최근에 등장한 능력이다. 말하기 능력은 진화적으로 수십만 년 전부터 준비가 된 기능이고 인간의 뇌는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발달해 왔다. 반면 글자 읽기는 인류 역사상 겨우 5천 년 남짓? 호모 사피엔스의 긴 역사에서 보면 새로운 문화적 발명품인 것이다.
읽기의 인지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자.
우리가 문자를 인식하면 시각적으로 글자/단어를 구별한다. -> 음운론적으로 부호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철자를 소리로 바꾸고 -> 기억 속에서 단어의 의미를 불러오고 -> 문장을 문법적으로 해석을 해서 -> 상황을 모델링하여 머릿속에서 의미 있는 장면/지식 구조로 통합을 하게 된다.(물론 이런 식의 단순한 직렬 구조가 아니라 병렬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처리가 일어난다.)
우리는 책이나 글을 읽을 때, 글자라는 기호를 보는 게 아니라 장면을 ‘그리는’ 것이다.
난독증(읽기장애, dyslexia)은 이 과정 중 ‘철자를 소리로 변환하는 단계’에 결함이 있을 때 발생하는 장애이다.(다만 난독증은 단일 단계의 문제라기 보단 다양한 하위 유형이 있다.) 이 학생은 글자를 소리 내어 정확히 읽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게 아니다. 글자를 빼먹거나 순서를 바꿔 읽지도 않는다. 난독증의 징후는 없다. 그럼 뭐가 문제지?
하나의 가정은 언어의 이해나 작업기억에 약점이 있을 수 있다.
조건과 절차가 포함된 긴 문장을 읽을 때, 문장의 구조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조건->절차->질문’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힘들 수 있다.
혹은 작업 기억이 약하다면 문장을 읽는 동안 앞부분의 조건을 기억 속에 유지를 못하고 기억이 흩어질 것이다. 그러면 문장을 다 읽고 나서도, 절차를 재구성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인상으로만 남았을 수 있다.
조건이 여러 개 붙는 문제/지시 사항에서 혼동을 느낀다면 이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
또 다른 가정은 추론과 전이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이 학생은 같은 개념을 묻는 문제라도, 문제를 묻는 뉘앙스만 달라져도 문제 풀이의 처음부터 막히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맥락이나 구조를 일반화하기보다는 문제 풀이를 단순 암기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을 것이다.
또 교과서 문제를 살짝만 바꿔서 대여섯 번 반복을 해도 여전히 다수의 문제를 틀리는데 ‘암기->적용’ 루트를 벗어나면 사고의 전환이 힘든 것 같아 보였다.
배운 풀이법을 새로운 맥락에 적용하지 못하고 문제 그대로 외우는 식으로만 학습한다면, 공을 배열하는 문제를 단순히 사람을 배열하는 문제로만 바꿔도 생소한 다른 문제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설명을 다시 구체적으로 해줘야만 접근이 가능해진다.
어쩌면 처음에 얘기한 읽기의 과정, 글자를 알아보고(시각처리)->소리, 단어 의미로 연결(음운, 어휘 처리)->문장 구조를 해석(구문 처리)->내용을 머릿속 상황(장면)으로 재구성하는 연쇄적인 단계 중 어딘가에서(아마도 머릿속 장면 재구성 단계일 텐데) 병목이 있을 수도 있다.
글을 읽을 때 상황 모델링이 자동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글을 읽어도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고, 실제로 공을 꺼내는 동작 같은 물리적 시연을 봐야 이해를 할 테니 말이다.
이 모든 이유가 조금씩 다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 모든 가정이 다 틀릴 수도 있다.
사실 이런 게 뭔가 특수한 장애가 되는 건 아니다(이 학생 역시 지능에 문제가 있는 학생도 아니고, 학교 수업을 못 따라가는 학생도 아니고, 4등급 정도의 점수를 받는 아주 평범한 학생이다). 여러 번 문제를 읽고도 내용 파악이 잘 안 되거나, 맥락이 조금만 바뀌면 같은 문제도 다시 틀리는 건 꽤 흔한 현상이다.
이런 모습은 평범한 학습자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주의 집중 문제, 작업 기억 한계 문제, 추상적 사고나 전이 능력 부족 문제, 읽기 이해력 차이 등 원인도 제각각이고, 흔히 나타나는 학습 특성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서로 다른 소질들이 동등하게 평가되지 않고 인지적 약점을 젤 두드러지게 만드는 환경에서 이런 경험이 누적됐을 때, 당사자가 ‘나는 머리가 나빠’라는 이상한 결론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는 게 제일 무서운 일이다. 마지막에 이 학생의 주눅 든 표정이 너무 신경이 쓰인다.
세상에 “머리 나쁜 사람”이란 건 없다.
단지 각자의 약점이 있을 뿐이지.
우리 모두는 인지적 부분에서도 각각 약점들을 지니고 있다. 어떤 사람은 기관지가 약하고, 어떤 사람은 소화능력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모두 각자 조금씩 신체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듯이 말이다.
이 학생도 어쩌면 단지 연습이 덜 돼서, 글을 읽고 머릿속으로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부분이 서툰 것일지도 모른다. 읽기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머릿속에서 장면을 만들어서 상황 모델을 구성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장면화 능력이 약한 아이들은 글을 읽고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거야?”라고 자주 묻거나, 인물 관계를 헷갈리곤 한다. 수학 문제에서도 누가 무엇을 가진 건지 정리가 잘 안 되고, 원인–결과 연결이 약하다.
이 학생의 경우도 아마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은 이유는, 글을 읽게 하는 게 아니라 동작으로 상황을 보여주면 바로 이해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해서 영어로 된 글을 읽을 때 문장들이 한국어로 번역이 돼야 그 글이 설명하는 상황이 이해가 되고 장면이 그려진다. 영어로 된 글을 눈으로 읽고 소리 내 발음을 다 할 수 있어도 각각의 단어들이 의미랑 착 붙어있는 느낌이 안 든다. 그래서 영어로 된 글을 빨리 속독해야 할 때는, 눈은 영어 단어를 보고 있지만 그걸 한국어 단어로 바꿔서 읽는다. 그래야지만 한글 읽는 속도랑 비슷하게 읽을 수 있으니까. 영어 단어랑 이해 사이에 한국어가 들어가 줘야 하는 것이다. 이 학생도 마찬가지로 글자와 이해 사이에 정보를 구조화할 수 있는 도구(동작의 시연 같은)가 들어가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시연과 시각화 / 단계별 읽기 / 구조화
뭐가 원인일지는 모르겠고, 어쩌면 여러 원인이 함께 작용할 수 있다.
나의 처방은 우선, 지문을 읽을 때 문제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보게 하거나 간단한 손동작이나 시연을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의 사고는 몸과 분리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려운 글을 읽거나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손이나 눈, 몸을 사용한다. 그건 몸의 움직임이나 제스처가 사고를 보조하기 때문에(embodied cognition 체화된 인지) 신체활동을 통해 인지 내용을 더욱 구체화하고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또한 작업기억 부담을 줄이고 단계를 구분하기 위해, 긴 문장은 의미 단위로 짧게 끊어서 읽게 한다. 문장을 쪼개고 분해해서 구조화시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문제를 읽고 바로 풀이에 들어가지 않고 문제가 뭔지 설명하게 한다.
비슷한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오도록 숙제를 내서, 같은 구조의 문제를 다양한 맥락으로 보게 한다. ‘문제 외우기’가 아니라 구조를 인식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여러 학생이 함께 수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선 이 아이 하나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1-2주 정도만이라도 문제 풀이 전 과정을 같이 해보면 습관으로 잡힐 텐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돌아서면 중간고사, 모의고사가 닥쳐오는 고등학생이라 더 여유가 없기도 하고. 진도 나가고 시험에 대응하기도 정신없이 바쁘니 말이다. 학생 스스로 공부할 때마다 이런 부분들을 신경을 써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지만, 아마도 혼자서는 한두 번 해보다가 다시 원래 습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가끔씩 특정 학생을 언급하며 “그 아이는 정말 성실한데 머리가 나빠.”라는 말을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선생님들을 본다. 그 말에는 진심 어린 연민이 담겨 있다. 숙제도 꼬박꼬박 잘해 오고 수업도 열심히 듣는데 성적이 안 나온다면서, 학생의 시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선생님들이 더 가슴 아파하고 더 울적해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머리 나쁜 사람”이란 건 없다. 그 학생이 공부하는 전 과정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면 어디에 약점이 있는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개개인을 하나하나 밀착해서 지켜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 안타까운 마음으로만 남을 수밖에...
* 학생 O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특성을 가진 학생들을 합쳐 구성한 사례입니다.
이 글은 현장에서의 관찰을 기록한 것이며, 특정 학생에 대한 전문적인 진단이나 평가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