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소설
기나긴 수혈이 끝나고도 피 검사는 계속 이어졌다.
간호사는 1시간마다 꼬박꼬박 양의 피를 뽑아 갔지만, 결과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수상과 금희로서는 기껏 피를 4봉이나 맞히더니, 이제 와서 다시 다 빼 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 되자 주삿바늘 자국은 양의 두 손등부터 손목을 거쳐 팔꿈치 안쪽까지 핏줄을 따라 이어져 빨간 길을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주사가 싫어 병원에 안 가며 버티던 양이기에, 피를 뽑힐 때마다 느끼는 두려움과 무력감은 더욱 컸다. 주삿바늘을 새로 찌를 때마다 실랑이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간호사와 양은 왼쪽 손목에 일주일 정도를 사용할 수 있는 굵은 주삿바늘을 하나 새로 박기로 결론을 모았다. 바늘에 수도꼭지처럼 생긴 기구가 연결되자 신기하게도 간호사가 작은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피가 흘러 나왔다.
그렇게 밤늦도록 간호사는 피를 뺐고, 양은 응급실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입원할 병실이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환자가 응급실을 비운 사이에 차례가 지나가 버리면 얼마나 기다려야 다시 기회가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모두가 서서히 기다림에 지쳐 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응급실로 들어간 사람이 바로 침대에 눕혀졌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대기실에서 휠체어 신세일 줄을 양은 상상조차 못했다.
그나마 양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주변에 앉은 대부분의 환자는 딱딱한 의자 위에서 허리도 편하게 못 편 채 각자 짧게는 몇 시간부터 며칠 밤을 버티고 있었다. 안에서 컴퓨터로 검사 결과를 본 의사가 내린 지시에 따라 간호사가 부르거나 전화를 하면 그때그때 들어가서 응급 처치를 받는 상황이었다. 참다못한 금희가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느냐며 따지듯 물었으나, 간호사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했다.
“그쪽 병실은 잘 안 빠져서, 보통 최소 사흘은 기다리셔야 해요.”
“응급실에서 가는 데도요?”
“네. 응급실이라서 엄청 빠른 게 그 정도예요. 입원수속실을 통하면 보통 한 달은 걸려요.”
“그럼, 응급실 침대에라도 누울 수 없나요? 애가 힘든데.”
“지금은 응급실에 빈 침대가 하나도 없어요. 자리가 나면 저희가 어련히 알아서 부를 거예요.”
이 말을 끝으로 간호사는 바쁜 걸음으로 사라졌다.
어느덧 밤 12시가 넘어 다음날에 출근해야 하는 대양을 보내고 모두가 말이 없어질 즈음, 심해가 응급실로 양을 찾아왔다. 파란 마스크로 두부처럼 허연 얼굴을 반쯤 가린 젊은 의사와 함께였다.
“하, 양 씨? 좀 어떤가요?”
“수혈을 받고 나니 피로감이 좀 줄어든 거 같아요.”
“양호합니다. 불편한 곳은 없으신가요?”
심해가 양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럽게 묻자, 금희가 나섰다.
“의사 선생님, 응급실에라도 빈 침대가 언제쯤 나올지 알 수 있을까요? 병실이 나려면 적어도 사흘은 걸린다는데, 이렇게 아픈 애를 휠체어에서 재울 수도 없어서요. 피도 수혈할 땐 언제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계속 뽑아가네요.”
“흠.”
심해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수상이 금희를 말리며 끼어들었다.
“그런 말씀을 왜 드려! 그보다도 교수님, 우리 딸은 괜찮습니까?”
“제가 여러 검사 결과를 계속 보고 있는데, 투석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투석…이요? 그건, 신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 딸의 신장이 안 좋습니까?”
“나쁜 피가 지금 몸 안에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투석을 해서 걸러 내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심해와 수상의 대화를 듣던 양이 물었다.
“선생님, 투석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목에 관을 삽입해서 진행합니다.”
“제 목에, 관을… 꽂는다고요?”
온갖 주사에 찔리며 시달리다가 이번에는 관이 박힌다는 말에 시선이 흔들리는 양을 보고, 수상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교수님, 지금 투석까지 하면 우리 딸에게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클 겁니다. 어떻게든 약을 써서, 가능하면 투석은 안 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부탁드리겠습니다.”
“흠. 그러면, 많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보호자로서 투석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수상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심해는 수상을 설득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대신 그때부터 양에게 작은 알약이 나오기 시작했고, 1시간 정도 더 지나자 드디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응급실의 문 안으로는 보호자가 1명만 따라 들어갈 수 있어서 수상은 대기실에 남았다.
양의 자리는 응급실 안 복도로, 중환자실 건너편에 놓인 이동 침대였다. 침대 발치에 보호자를 위한 플라스틱 의자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양과 금희가 당황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하자, 간호사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교수님이 말씀하셔서 이 자리도 겨우 만든 거예요! 싫으면 밖에서 더 기다리실래요?”
“아니요, 좋아요! 여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