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소설
그곳은 응급실의 명당이었다. 면회가 제한되는 중환자실 앞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어쩌다 중환자의 상태와 장례에 관해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무리가 모여들었지만 금세 흩어졌다.
양에게 열이 나기 시작한 건, 몇 번째인지는 몰라도 간호사가 손목의 수도꼭지를 돌려 피를 뽑아간 직후였다. 열은 39.8도까지 빠르게 올랐다. 지나친 수혈 때문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 양과 금희로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이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양의 긴 머리카락은 끝없이 솟아나는 땀으로 흠뻑 젖었고, 가끔 반짝 눈을 뜨고 자신을 지켜보느라 잠 못 이루는 금희를 걱정하는 말을 웅얼거리기도 했으나 양은 방금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금희는 플라스틱 의자에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자꾸만 쥐가 나서 오그라드는 양의 두 다리를 주무르며 밤을 지새웠다.
새벽녘에 먹은 해열제 덕인지 아침이 되자 열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체온계는 다시금 36.5도를 가리켰다. 아침에 교대한 간호사가 피를 뽑으러 왔다가 양이 아직도 바깥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환자복을 가져다 줬다.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축축한 머리칼을 뒤로 올려 묶은 양은 공기의 변화를 느끼며 수상이 사 온 전복죽을 먹었다. 중환자실 앞 복도는 밤새 더 밀려든 4개의 이동 침대와 그만큼 늘어난 환자와 보호자들로 한층 북적이고 있었다. 누군가 가늘게 코를 고는 가운데, 양의 종아리에 여전히 쥐가 난다는 점 말고는 특별한 일 없는 오전이 지나갔다.
점심 무렵, 또 다른 의사가 찾아와 골수 검사를 해야 한다며 긴 동의서를 내밀었다. 의사는 A4 3장짜리 동의서에서 나머지 부분은 대충 건너뛰고 형광펜으로 미리 표시해 온 부분만 손으로 짚으며 꼼꼼히 읽더니, 모든 검사가 그렇듯이 이것도 좀 위험할 수 있다면서 각 장의 마지막 문장 밑에 그어진 선에 서명을 하라고 재촉했다. 양은 위에 적힌 모든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었으며 충분히 이해했고 완전히 동의한다는 문장 아래마다, 총 3번의 이름을 썼다. 잠시 뒤 어딘가 그늘진 얼굴의 남자가 나타나 양의 이름을 확인하더니 침대를 밀고 어디론가 들어갔다.
골수 검사는 응급실 안 병실에서 이뤄졌다. 정사각형의 공간에 벽을 따라 침대가 다닥다닥 붙었고, 중앙에는 서로 마주보게 놓인 침대 9개가 한 줄에 5개, 4개로 나뉘어 놓여 있었다. 남자는 깡마른 몸으로 침대가 4개인 줄의 끝, 빈자리에 양이 탄 침대를 세우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서둘러 나갔다. 얇은 커튼 한 장이 침대와 다른 침대를 구분하는 전부였다. 병원식이 안 나오고 외부 음식을 들여오기에 아무런 규제가 없는 응급실의 특성으로 인해 온갖 냄새가 뒤섞이는 바람에 공기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탁했고, 수십 명의 아픈 사람들과 그만큼의 보호자가 좁은 공간에서 떠드는 통에 정신이 빠질 만큼 시끄러웠다.
양의 맞은편 침대에 누운 대머리 남자는 배가 아프다며 목까지 환자복을 걷어 올리곤 아내에게 사이다를 가져오라 계속해서 조르고 있었다. 얼굴을 찌푸린 금희가 남세스럽다며 남자의 알몸이 안 보이도록 커튼을 치자, 어느 틈에 간호사가 달려와 다시 열어젖혔다.
“이러지 마세요! 여기는 다 응급 환자뿐이라서 언제든 우리가 모든 사람의 상태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야 되거든요? 커튼은 옆 침대랑 구분하는 정도만 쳐야지, 전체를 가리면 절대로 안 돼요!”
눈을 안 감는 한, 양은 다른 환자들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안쓰러울 정도로 사이다만 찾는 남자의 옆자리에선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입가며 환자복에 줄줄 흘리며 홀로 팥죽을 떠먹고 있었고, 커튼 너머 옆 침대에서는 가래가 끓는 소리 사이로 토하는 듯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양은 자신과는 평생 관련이 없으리라 여겼던, 말로만 듣던 골수 검사를 기다렸다. 곧 자그마한 의사가 손수레를 밀고 오더니, 그 위에 보기에도 겁나는 의료 도구들을 풀어 놓으며 양에게 검사 과정과 주의 사항을 간단히 설명했다.
“주변 살에 마취를 충분히 하겠지만, 굵은 주삿바늘이 뼈를 뚫고 골수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아플 수 있어요. 혹시 못 참겠으면 바로 말씀하세요. 그만 넣을 테니까요. 끝나면 4시간 동안은 검사 부위에 모래주머니를 댄 채로 그대로 꼼짝 않고 누워 있어야 하니, 화장실이 가고 싶으시면 지금 다녀오세요.”
양이 얼른 화장실을 다녀와 의사가 지시하는 대로 엎드리자 곧바로 검사가 시작됐다. 엉덩이뼈 위쪽 곳곳에 맞은 마취 주사 덕분인지 주사기가 들어갈 때는 크게 아프지 않았다. 주사기가 점차 뼈를 뚫고 들어가 의사가 골수를 뽑기 시작하자, 양은 엉덩이 아래의 뼈들이 덜거덕거리면서 몸속 깊숙이 잠들어 있던 영혼까지 빨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사가 골수의 조직을 긁어내려고 주사기를 더 집어넣었을 때, 양은 제발 그만하라며 자신도 모르게 흐느끼고 있었다. 의사는 알겠다고 말하면서도 필요한 만큼 얻은 다음에야 아주 천천히 주사기를 뺐고, 검사가 끝났다. 양은 모래주머니 위에 얹혀 침대에 탄 채로 다시 복도로 옮겨졌지만, 뼛속을 긁히던 아픔이 가라앉지 않아 결국 가장 강한 진통제인 모르핀까지 계속해서 맞아야 했다.
4시간이 막 지났을 무렵, 소변 검사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간호사가 통을 가져왔다. 양은 알겠다고 답했지만, 통증 때문에 당장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간호사는 10분 만에 다시 오더니 비어 있는 통을 보자 득달같이 화를 냈다.
“왜 아직도 오줌을 안 내세요?”
“골수 검사를 받은 데가 아파서, 조금만 더 누워 있다가 가려고 했어요.”
“벌써 4시간이 지났잖아요! 제가 하양 씨, 한 사람만 돌보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지금 바로 다녀올게요. 엄마, 저 좀 일으켜 주세요.”
“됐어요! 우리가 오줌 줄로 빼는 게 빨라요!”
“지금 바로 갔다 온다니까요?”
“바쁘니까, 잔말 말고 속옷 내려요. 당장!”
간호사의 닦달에도 양은 골수를 뺀 곳이 아파 엉거주춤했다. 간호사는 인상을 쓰며 시트를 휙 들어 올리더니 양의 바지를 잡아끌어 내리고 요도에 줄을 꽂았다. 그러자 양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노란 오줌이 줄을 타고 통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간호사는 원하는 만큼 얻자 거침없이 줄을 뽑았고, 양은 화끈거리는 아랫도리뿐 아니라 처음 겪어 보는 모욕감과 함께 남겨졌다.
환자가 된다는 건, 내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잃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약자가 된다는 의미였다.
점점 더 붐비는 응급실 중환자실 앞 복도에서 하룻밤을 더 머무르고서야 수납에서 금희를 찾는 연락이 왔다. 금희는 응급실 진료비로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돌아왔음에도, 병동에 자리가 났다는 소식에 마냥 기뻐했다.
“111병동 1107호야. 사흘 만에 자리가 난 것도 그렇고, 응급실에서 바로 6인실로 가는 경우도 거의 없다네? 병실료가 싸니까 다들 6인실로 가고 싶어 해서 우리 같은 사람은 보통 1인실이나 2인실로 일단 들어가서 6인실이 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나 봐. 간호사의 말이, 운이 좋았다고 하네!”
골수 검사를 하러 갈 때의 우울한 남자가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더니, 양이 탄 침대를 밀고 111병동으로 향했다. 11층에 도착해 병동 간호사실에서 비밀번호가 걸린 차단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는 잠깐 동안이 어쩐지 어색해서, 양은 말없는 남자에게 여기에 환자를 자주 데려오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슬퍼 보이는 얼굴을 가늘게 흔들더니, 묻지 않은 말까지 답해 주었다.
“아니요. 여긴 장기 입원 환자들이 많아서… 111병동은… 일단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죽으면 몰라도.”
이때 문이 열렸고, 남자는 묵묵히 양이 탄 침대를 밀었다. 불안한 걸음으로 따르는 금희와 수상의 등 뒤로, 불투명한 유리문이 하나, 둘. 소리 없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