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하수 : 수건돌리기
알프스, 지금 어디에 있어?
알록달록한 작은 집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알프스는, 잃어버린 내 가방의 이름이다.
나의 기억 속에서 부모님은 언제나 서로를 물어뜯으며 으르렁거렸다. 그래서일까? 내가 어려서부터 가출을 꿈꾼 이유.
“하수는 날다람쥐처럼 얼마나 재바른지, 조금만 한눈팔면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어요. 경찰서에서 찾은 적도 셀 수가 없다니까요? 도대체 누굴 닮아서 틈만 나면 달아나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명절이면 엄마는 무슨 전통 의식처럼 나를 들먹이며, 친척 어른들께 나 하나 키우는 게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일인 듯 엄살을 부리곤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못마땅한 얼굴로 자리를 뜨곤 했는데, 엄마의 말이 거의 맞다 치더라도 그 정도의 비난은 살짝 지나치다는 게 내 개인적인 입장이다.
가만히 두면, 엄마의 과장은 지구 대기권을 뚫고 달까지 닿을 수준이라니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찰서의 신세를 진 건 딱 한 번뿐이라고!
물론, 모르는 동네의 어느 담벼락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다가 조폭 뺨치게 생긴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오거나, 동물원에서 길을 잃은 나를 피카추 풍선 파는 아줌마가 데리고 있다가 정신없이 달려온 아빠의 품에 돌려준 일도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꽃사슴이 너무 예뻐서, 조금만 더 보고 싶어서 우리에 달라붙어 있었을 뿐이다. 딸을 볼모로 휴일에 쉬지도 못하게 괴롭힌다느니, 가족이 그렇게 귀찮으면 왜 같이 사냐며 또 말로 치고받느라 5살배기 딸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간 부모가 더 문제 아닐까? 그때의 나는 달아난 게 아니라 버림받은 기분이었다고!
어쩌면 그날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집을,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와 아빠를 떠나려는 바람으로 열심히 준비해 왔다.
가출이란 뭘까?
오롯이 내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혼자서 먹고 입고 잘 수 있어야 한다. 삶에 있어 돈의 중요성을, 나는 그렇게 깨달았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큰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그저 스크루지처럼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설탕과 케첩을 둘둘 바른,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저절로 도는 핫도그를 남보다 하나씩 덜 먹으며, 생일을 맞은 친구에겐 선물 대신 그림일기처럼 정성스레 꾸민 편지를 고이 건넸다.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3개 사 오라고 돈을 주면 2개만 사고 잔돈을 챙긴 뒤 엄마한테 빌붙었고. 자식이 먹고 싶어 죽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면 한입이라도 안 주곤 못 배기는 부모의 심리를 독창적으로 활용했달까? 진정한 창조 경제란 바로 이런 거라니까?
이렇게 먹을 거 안 먹고 가족한테까지 짠순이란 소리를 들으며 알뜰살뜰 모아서 가방을 장만했는데, 핫도그 소스 통에 빠뜨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도둑놈이 홀랑 훔쳐간 거다!
알프스는, 내가 무려 15년 동안 안 먹고 안 입고 안 써서 얻은 소중한 친구라고! 알았다면, 안 훔쳐 갔을까?
하, 도둑놈이 그딴 걸 신경쓸 리가 없다.
부모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애가 나왔냐며 도대체 누굴 닮은 거냐며 툴툴대지만, 자식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어 속이 터지긴 매한가지다.
만약 정자와 난자가 단순한 합체 본능 외에 미래를 따질 수 있는 이성까지 갖춘다면, 임신 성공률은 눈에 띄게 줄어들 거야. 태아에게 부모를 미리 알려 주고 자유로운 선택권을 준다고 해도 마찬가지고. 출생률이 과연 어디까지 곤두박질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
이처럼 내 뜻과 관계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서글픈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 나는 갖가지 설을 만들어 냈다.
유치원 시절에는 줄곧 ‘미아설’에 매달렸다. 사실 나는 엄마나 아빠의 친자식이 아니라 사이좋은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찾고 있는, 잃어버린 아이가 아닐까? 하지만 아빠를 닮아 험한 잠버릇처럼,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온갖 유전적 증거 앞에서, 내 부모는 지금의 엄마와 아빠가 틀림없다는 슬픈 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직도 미련이 남는 ‘알프스 소녀설’은 초등학생 때 『하이디』를 읽으면서 생겼다. 드문드문 흩어진 오두막이 마을을 이룬 알프스 산맥에서 할아버지와 페터 할머니, 염소들과 뛰노는 하이디의 삶은 내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다. 하이디가 부러운 나머지 혼자 엉엉 울기도 했다니까? 나도 차라리 영주로 내려가 우리 할머니랑 같이 산다면 훨씬 행복할 듯했다.
하지만 내가 자랄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나에 대한 엄마의 집착을 보면서, 만에 하나 부모님이 이혼을 하더라도 엄마가 할머니에게 나를 보낼 리가 절대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 설도 역시 끝이 났다.
나는 포기하는 대신, 사춘기를 맞아 ‘최후의 화해설’을 통해 또 다른 희망을 꿈꾸었다. 내 부모가 맞고, 헤어지기를 바랄 수도 없다면, 어떻게든 싸움을 멈추는 수밖에.
아무리 서로를 미워하는 엄마와 아빠라도 내가 정신도 못 차리게 아프면, 다 같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끌어안고 화해하지 않을까?
모두가 감동적으로 하나가 되면 당연히 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하게 낫고. 엄마가 들으면 뒤로 넘어가겠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나의 고민은 늘 하나였다! 어딘가 아파야 하는데, 어떻게 적당히 아플 수 있을까?
2학년 여름, 심한 다이어트로 인한 빈혈로 체육 시간에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간 비리비리한 친구를 보고 이거다 싶어 따라해 보려고도 노력했지만, 눈앞이 빙빙 돌 정도로 배가 고픈 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엄마와 아빠는 내가 아픈 책임을 놓고 또 끝없이 싸울 것 같아서 결국 그만뒀다.
이렇게 3개의 설은 눈물을 머금고 겨우 떠나보냈지만, 할머니와 함께 사는 꿈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은밀하게 간직해 왔다.
이번 생엔 망했지만, 언젠가 다시 태어난다면 내가 고를 수 있다면, 하이디가 사는 알프스 산맥처럼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우리 할머니와 함께 하는 삶을 택할 거라고, 나는 지금까지 백만 번쯤 다짐했다.
알프스란 이름은 이런 내 무의식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가방을 보자마자 그곳이 떠올랐으니까.
올 여름, 수혁을 보내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백화점에 갔다가 알프스를 본 순간,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이거야!
가져야만 했다. 내가 원하던 세계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으니까.
손이 떨릴 만큼 비싸서 같은 층을 10번 넘게 돌며 망설이긴 했지만,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 다른 가방으로는 내 마음을 채울 수 없었다.
결국 그날 나는 신용 카드를 긁었다. 특별한 존재는 멀리 달아나기 전에 온 힘을 다해서 잡아야 하니까.
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할 수는 없었다, 수혁을 보낸 것처럼. 그렇게 첫눈에 홀딱 반한 가방을 잃어버리다니, 그것도 고작 길에서 마주친 남자에게 한눈팔다가.
하. 나란 사람, 정말 최악이다! 나의 알프스는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잠시나마 알프스에 대한 생각에서 떠나 머리를 식히려 창밖을 본다.
4층에서 내려다봐서인지 긴 거리가 시원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평일 저녁의 우리 학교 앞은 언제나처럼 붐빈다.
비가 개인 신촌을 누비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오늘따라 여행 가방만 자꾸 눈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또 알프스를 찾고 있다.
오후 내내, 조금 전까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주변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못 찾은 가방이 여기서 떡하니 눈에 띌 리가 없다고!
하, 짜증이 식도를 타고 버럭 올라온다. 빨리 찾아야 하는데, 혜수는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폰을 쓸 수가 없다고 이토록 속이 터질 줄은 몰랐다.
집에선 하얗게 모르고 있겠지만, 위험 부담을 안고 폰을 켜기는 싫다.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에휴.
하긴 갑자기 불러냈는데도 데이트하다 말고 냉큼 달려온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내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서일까?
기다림이 지겨워져, 식어 가는 커피를 플라스틱 막대로 빙빙 저어 본다.
나답게,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앞에서 고기를 곁들인 냉면으로 배를 그득 채우고 나서, 게다가 정말 맛있었다, 나는 가방을 잃어버린 뒤에 해야 할 당연하고도 어른스러운 조치를 했다.
먼저, 거의 백만 년 만에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잘 곳은 파리에 도착해서 알아보려 했으니 통과! 신분증이나 카드도 크로스백에 들어 있으니 문제없고.
하,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급한 일이라곤 그게 다였다.
러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프랑스로 날아가는 국제적 가출치고는, 여행 가방을 도둑맞은 것치고는 뒷수습이 지나치게 간단했다. 차에 치여서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다 보니 살짝 긁힌 상처뿐이라 반창고만 붙이면 끝이었달까?
이런 일을 당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대책 없이 집을 나왔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무려 15년을 특별 기획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로 갈 건지 그것도 나라와 도시를 빼곤 아무것도 못 정한 팔푼이가 바로 나다.
아무리 오래 준비했어도, 오늘 짐을 싸서 나올 줄은 아침에 세수를 하면서도 몰랐다고!
이렇게 말해 봐도, 알맹이가 다 빠진 옥수수처럼 부질없는 변명 같아 자꾸만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인 듯 머리를 볼링공처럼 열심히 굴리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제야 깨달은 스스로의 멍청함에 이마를 치며 인생이 이끄는 대로 하릴없이 끌려가고 만다니까?
내가 헛똑똑이가 아니라면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완벽한 가출 계획을 세웠어야 했다.
오늘 아침,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뜨거운 아침밥을 입안으로 한가득 밀어넣으면서 엄마는 허기진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하수를 신림으로 보낼까 봐?”
엄마가 자주 쓰는, 듣는 사람을 떠보는 것 같은 말버릇이었다.
나는 계란말이로 뻗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와는 나눈 적이 없는 얘기였다.
아빠는 김칫국으로 들이밀던 숟가락을 식탁 유리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아빠의 숟가락에 붙었던 커다란 고춧가루가 공중으로 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얘기는 당분간 하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던 것 같은데!”
아빠의 반응을 보고, 나는 부모님이 그동안 내 미래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쏙 빼고서 말이다.
엄마는 그동안 친척들이 보란듯이 나를 외교관으로 키워 왔기에 새삼 놀랄 일은 아니었다.
초등학생이 되자마자 방학마다 틈틈이 나를 데리고 유럽을 돌아다녔고, 외고로 보내 프랑스어를 선택하게 부추겨 갈고닦게 한 결과, 대학마저 프랑스어과를 가게 만들었다.
나 역시 엄마가 정해 준 길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이라든지 벗어나고 싶다는 식의 반감은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엄마가 이루지 못한 꿈을 나를 통해 대리 만족하려는 심리인지도 모르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상관없었다.
다양한 유럽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여행이 좋았고, 부모가 자식을 나쁜 길로 내몰 거라곤 의심하지 않았으며, 프랑스어 외에 특별히 잘하거나 미치도록 하고 싶은 다른 꿈도 없었으니까.
탱탱하게 삶은 달팽이에 상큼한 허브 소스를 살짝 얹은 에스카르고(escargot)와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살은 생크림처럼 촉촉한 바게트(baguette), 화이트 와인을 넣고 녹인 갖가지 치즈로 작은 빵 조각을 적셔 먹는 퐁뒤(fondue)는 언제 어디서든 떠올리기만 해도 입맛이 짝짝 다셔진다.
서유럽은 이렇게 혀끝을 날아다니게 만드는 곳이기에 나 같은 식신에게는 살아서 갈 수 있는 천국이다.
외교관이 되면 자연스레 한국과 부모님을 떠날 수 있고, 운 좋게 유럽으로 파견되면 미식 여행까지 실컷 다닐 수 있다! 수혁도 프랑스에 있으니 잭팟이 줄줄이 터지는 행운이랄까?
나는 그동안 이렇게 헐렁하게 생각해 왔다. 오늘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막상 고시촌에 들어가라는 얘기를 들으니, 아침밥을 한 그릇 다 비웠는데도 속이 허전하고 기운이 쭉 빠졌다.
엄마의 등쌀에 떠밀려 프랑스어를 하고 어쩌다가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까지는 왔지만, 사실 나는 공부에 별로 흥미가 없는 편이다. 즐거운 일은 여행이나 다니면서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고.
인생, 뭐 있을까? 지나치게 아등바등하지 말고 슬렁슬렁 살아가면 된다고.
나는 대충 이런 사고방식의 소유자다. 게다가 나는 아직 대학교 1학년이라니까?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빼더라도, 초등학교부터 무려 12년 동안 학교와 학원에 갇혀서 자잘한 글자만 들여다보며 살았는데, 무릎이 튀어나온 추리닝을 입고 하루 종일 두꺼운 책만 파며 살라는 건 한창 파릇파릇한 청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더 어이가 없는 건 평소에 그렇게 죽어라 싸우고 서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던 부모님이, 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한통속이 된다는 기막힌 사실이다.
특히 나의 진로에 대해서 아빠는 언제나 엄마를 따랐다. 때로 진심을 알 수 없이 착잡한 표정을 짓기는 해도, 드러나게 반대한 적은 없었다. 가라앉는 배의 선장처럼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무겁게 침묵할 따름이다. 친척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떠들 때처럼 공격적으로 나를 들볶는 엄마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아니나다를까.
“당신 생각이 정 그러면 그렇게 해라.”
아빠답지 않게 밟힌 지렁이처럼 잠시나마 꿈틀거리더니.
이러면 얘기 끝이다. 보통 나는 실험실의 토끼처럼 얌전히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이상하게도 도저히, 내키지가 않았다. 꼭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다른 이유가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닌데, 그냥 그러기가 싫었다.
마구 뒤흔든 콜라 캔처럼 터지기 직전인 내 속은 아랑곳없이 엄마는 신이 나서 준비한 말을 늘어놓았다. 학원은 어디가 좋다더라, 학원에서 파는 교재 말고도 무슨 책이 좋다더라, 둥둥 떠다니는 말 속에 막상 나는 없는 느낌이었다.
아침을 다 먹고도 그대로 앉아서 그릇에 바싹 말라붙은 밥풀을 손으로 떼면서야 깨달았다.
오늘이야! 오늘이 그날이야!
아빠가 출근하고 엄마가 내 이름으로 학원에 등록하러 간 사이, 나는 인터넷으로 비행기를 예약하고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른 빛의 속도로 짐을 챙겼다.
목적지는 에펠탑의 도시, 파리. 그리운 수혁이 있는 곳이다.
사실 내 마음은 그가 떠난 여름부터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치면 놀랄 테니, 일단은 소르본에 가서 연락하려고 했다.
이런 일만 안 생겼으면 지금쯤 잘생긴 프랑스인 승무원의 서비스를 받으며 에어 프랑스를 타고,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러시아를 넘고 있을 나라고! 하긴 또 무슨 일이 나를 기다렸을지는 모르지만.
수혁이 나와는 차원이 다른 몸매의 외국인 여자친구와 새로운 역사를 이미 썼을 수도 있고, 학교로 가서 그를 만나기까지 소매치기나 다른 험한 꼴을 당했을지도 모르니까.
이제야 인생을 조금은 배운 느낌이다.
겨우 1초 뒤도 내다볼 수 없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