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변수들로 삶은 롤러코스터처럼
자폐 아이는 수학문제처럼 풀기 어려워
자폐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것 중 하나는 살면서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것들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것들 중 몇 가지를 나열해 보면,
º 아주 작은 상처가 엄청나게 깊고 커지게 된다.
모기에게 살짝 물렸을 뿐인데, 상처를 가만 두지 못하는 아이는 긁고 뜯고 하면서 살이 몇 겹이나 떨어져 나가 밴드를 넘어 붕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붕대를 하더라도, 금세 풀고 상처를 마구 뜯어내 피가 흥건해졌다.
혼자 조용하면 뜯고 있다.
긁을수록 시원한 걸까? 상처가 불편한 걸까? 무엇 때문인지 아이는 상처에 집착했고,
상처가 커질수록 더 못 견뎠기에 아이를 아주 사소하게라도 다치는 날(넘어지거나 물리거나 긁히는)이면, 우리는 비상계엄령을 내렸다. 번갈아가며 교대로 아이 옆에서 아이의 손을 아예 잡고 있거나,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º 무엇이든 입에 들어간다.
아이는 마치 입으로 세상을 탐색하는 영아기 아이들처럼 무엇이든 입에 넣었다.
마치 이것들은 못 하겠지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으려는 듯 거침없이 도전하는 모습 같았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식감? 이 있으면 더욱 자주 들어가는 듯했다.
레고, 모래, 옷깃, 점토, 붙였던 밴드, 후드 티의 끈, 책, 스티커, 퍼즐조각, 인형, 코딱지, 분변, 나뭇잎, 나뭇가지, 돌, 집게, 지우개, 크레파스 그 외에도 무척 많았다.
º 변화에 민감하다
낯선의 방문, 낯선 촉감, 낯선 환경, 낯선 일정, 낯선 음식, 낯선 구조의 변화, 낯선 잠자리 위치 등.
아이 나름의 패턴과 익숙함에서 벗어나면 탈이 났다. 가령 침대 위치를 옮긴다거나 하면, 같은 방인데도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가족행사나 지인 모임에 초대받은 날이면 나가서도 들어와서도 긴장했다. 돌아오면 여지없이 손 주변에 생기는 거스러미들을 뜯고 파고 해서 피가 났다.(매번 학년 초에는 밴드를 손가락 서너 군데 붙인다) 돌아와서도 내내 마음을 두지 못하고 소리를 내거나, 안 잘 각오를 한 사람처럼 늦은 새벽까지 부산스럽게 굴었다.
그러다 보니 외출도 만남도 쉽지 않았고, 우리를 맞춰줄 수 있는 사람들과 상황들만 가야 했다. 언제든 그 자리를 뜰 수 있는 준비를 했다. 아이가 힘들어서 짜증을 내든가, 각성이 되든가 하면 다시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뭐 그것만 힘들었겠냐만은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고민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마주해서 느껴지는 무력감과 패배감, 자책이었다.
어디서든 배우지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문제를 본 기분.
수포자에게 개념조차 알 수 없는, 난도조차 가늠할 수 없는 수학 문제와 같은 아이.
그게 많이 어려웠다.
14년 차가 된 지금은 수십 권의 오답노트를 쓰며 유형분석을 마친 덕에 정답률이 올라가는 중이다. 아주 조금씩.
나를 기다리는 수학문제.
틀리더라도 안 푸는 건 예의가 아니다.
끝까지 풀 것이다. 오답이든 정답이든 보다 중요한 건.
내가 풀기 시작했다는 것!
나를 기다리는 수학문제. 틀리더라도 공란은 예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