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한없이 무거울 때

부모역할, 오늘은 쉽니다!

by 삶은 사람

어느 집이라고 근심 하나 없을까 싶어 그러려니 하다가도

어느 집이라고 다 이럴까 싶은 마음에 한탄스러울 때가 있다.

쨍하고 볕 들 날도 있지만

끝도 없이 오는 비에 때마침 눈치 없이 신고 온 운동화로 물이 차올라 그 안의 양말까지 흠뻑 젖은 기분일 때가 있다.


가끔은 내 몸과 내 시간을 쪼개고 싶다가도

동동거리는 나 자신의 상황이 괜히 가엾어지기도 한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주제인데,

아이를 챙겨야 하니

그 사이 놓치는 것들이 부지기수다.


하나, 자식 된 도리.

- 잘 키우고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며 부모님 살갑게 대해드려도 될까 말까인데, 정작 부모님은 조금이라도 당신들의 도움을 더 보태지 못하는 것을 되려 미안해하신다. 그런 부모님께 무한히 감사하면서도 제대로 된 표현조차 못하는 인색한 딸이자 며느리다.


둘, 여유로운 부부의 삶.

- 게를 오래 잡아두면 먹잇감이 없어 제 살로 양분을 대신해 게 속이 텅텅 빈다고 한다. 잡은 지 한참 된 게가 속이 꽉 차지 못한 것이 그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한참 잡아둔 게와 같다. 그의 양보와 희생이 나에게 쉼과 틈을 주고, 나의 고됨이 그에게 그를 돌볼 사치를 준다. 서로에게 미안하고 서로에게 원하는 꼴이 참 아프다.


셋, 비장애 형제아이에게 오롯한 삶.

- 직장에서는 숨길 수도 포장할 수도 있는 반면에 정작 나의 영향력이 너무나 큰 가정에서는 숨길 수가 없다.

- 내색하지 않으려 애써도 둘째 아이에겐 고스란히 전해진다. 형의 이해할 수 없는 낯선 모습, 냉랭해진 공기, 부모의 피로감, 편애가 아님을 알면서도 느껴지는 서운한 수많은 상황들.

- 강요하지 않았어도 스스로 강요받는 삶을 살아갈지 모른다. 내 것을 지키고 요구하고 싶지만 태생적으로 배려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삶. 어쩌면 그 아이가 나보다 더 무겁고 혼란스러울지 모른다.


일상이 되어 무감각해지다가도

이따금씩 내가 짊어진 무게와 고민들로 물에 빠진 솜처럼 한없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런 날은 그냥, 잠시 내려놓는다.

몇 년간 자폐아이 지도를 위해 나를 코치해 주던 미국인 행동분석전문가의 말 때문이다.


제대로 못할 거면, 그냥 확실히 쉬어.


그 말이 매서운 회초리였을지 모르는데

나는 그 말이 위안이 되었다.


그래. 쉬어도 돼.
못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낫대.


그래서 갑자기 내가 짊어진 짐이 무거운 날이면

차악을 선택한다.

그냥 아이들과 멍 때리고, 주구장창 티비 보고, 편의점에서 간편식으로 식사도 때우고,

그렇게 보내는 날이 조금 덜 미안해졌다.


그래. 오늘도 땡땡이다.

오늘 쉬고 내일 다시 일어서자.


그래. 다 힘들지. 안 힘든 게 어디 있겠나 싶다.

노는 것도 힘들지, 암.

그렇게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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