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햇수로는 14년 차.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짐작한 지는 11년 차.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은 지는 8년 차.
그냥 마냥 예뻐만 했던 시간이 분명 있었다.
우리에게도 소중한 새 생명이 찾아왔음에 기뻤고,
아이가 하는 하나하나의 행동에 마냥 행복을 느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괴로웠던 시간도 있었다.
아닐 거야, 아니길 바라면서도 미심쩍은 정황들로 해프닝이 아님을 직감했을 때 인생의 어느 순간보다도 절망적이었다.
어떤 날은 내가 아는 우리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꼈던 적도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화로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기를 하다
끝내 터지는 울음을 참을 수 없던 적도 많았다.
그냥 증발해버리고 싶었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이제는 행복함과 절망감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잘한 기쁨과 또 자잘한 좌절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이가 보여주는 문제들이나 아이가 겪는 난관에, 송두리째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있고,
아이와 함께 한 시간만큼 자폐에 대해서도 조금씩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과 경험을 통해 익숙하게 적응도 하고 치유도 받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자신을 두고 큰소리가 오가고 눈물을 보였던 엄마아빠.
자신을 다루기 힘들다고 고개를 내저었던 치료사나 선생님들.
자신이 이상하다며 차가운 시선을 보냈던 사람들.
선택권이 없이 동생이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했던 순간들
뭐니 해도 너무나 호되게 화를 냈던 엄마.
아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원망도 하고 많이 미웠을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많이 미안하다.
내가 너를 가장 많이 사랑하고,
내가 너를 가장 많이 이해하고,
내가 너를 가장 많이 품어줬어야 했는데,
너무 미숙한 부모라서,
내 상처가 컸고,
내 짐이 컸고,
내 미래가 무서워서,
너를 제대로 이해해 줄 여유조차 부리지 못했다.
너는 늘 그 자리에서
부족하고 부족한 나를 기다려줬는데,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진짜 진짜 사랑해.
이제라도 늦지 않게,
제대로 사랑을 표현해야겠다.
너무 부족한 부모지만,
너무 늦지 않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