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평범한 일상을 상상해 본다

자폐 아이에게 장애가 없었더라면?

by 삶은 사람

혼자 별별 생각하는 것을 즐기기도 하지만,

가끔씩 하는 상상의 주제가 있다.

작정하고 하는 건 아닌데,


아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볼 때,

아이가 말없이 앉아있는 모습을 볼 때,

아이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정말 1도 도움이 안 되는 상상을 한다.


상상한다고 뭐 달라지겠냐마는,

상상만으로도 잠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씁쓸해진다.


성냥팔이 소녀의 마음이 이랬을까?




아이는 무슨 과목을 좋아했을까?

- 나를 닮아 책 읽는 것을 좋아했을까?

둘째같이 역사광이었을까?


아이 성격은 어땠을까?

- 말수가 적고, 성격이 유순하지 않았을까?


아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니고 친구들과 노느라 바빴을 테고

나는 사춘기 아이와 약간은 힘겨루기를 하며 어느새 생각도 덩치도 커진 아이를 보며,

내심 흐뭇하면서도 아이의 미래를 위해 여러 고민들을 했을 것이다.


점점 내 말을 듣기는커녕, 자기 말이 맞다고 핏대 세우며 말하는 날도 있고,

뭔가 필요하고 아쉬운 게 있을 때면, 다시금 귀여워진 모습으로 애교를 부려 얻어냈을 것이다.


엄마아빠의 외출을 반기고,

함께 따라나서는 외출을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을지도 모르고,

밖에서 늦게까지 놀고 오고, 쉬지 않고 핸드폰게임 삼매경이라 내 속도 좀 태웠을 것이다.


다시 쓰고 있는 지금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둘째 아이를 통해 첫째 아이의 평범했을 일상을 상상해 본다.


나와 남편은 저마다의 시간을 조금씩이나마 가졌을 것이고,

남편은 더러 친구와 술 한 잔 하고 모임도 가지며 바깥 생활도 자유로웠을 것이다.

두 아이는 티격태격하다가도 친구처럼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다.


아이는 누가 보아도, 얼핏 보아도 장애가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는 모습과 행동으로 이목을 끈다.

- 사실 나는 어느 정도 숨겨진다고 생각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 단번에 이상함을 느끼는 것 같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뽀로로와 동요 삼매경에,

엄마아빠 없이는 혼자서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다.


가고 싶고,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는

종일 집에 있는 걸 답답해하고,

같이 놀아주고 함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아이를 키우면서 평범한 일상은 정말 상상 속에나 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나와 남편의 개인 시간은 사치였다.

각자가 누리는 개인 시간은 누군가에게 짐이 되어야만 했으니까.

어쩌다가 참여하는 상황이 더 눈치 보인다며 남편은 직장동료들과의 사적 모임을 모두 끊어냈다.

사람들과 시간을 맞춰 만나는 취미들은 엄두를 못 냈다.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겼고, 아이가 자는 시간 짬짬이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책 읽기나 글쓰기, 영화 보기, 헬스와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이런 사정을 알고 시간을 맞춰주는 지인들과 가끔씩 만나는 모임이 있다.

내가 바쁠까 봐 늘 조심스럽게 물어봐주는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차도 마시고, 술 한 잔도 한다.


아이가 자는 밤이 되면,

남편과 나는 각자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고, 내일을 위해 무리해서도 안 된다.

어쩌다가 같이 영화를 보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허락된 몇 시간을 굳이 서로에게 맞추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게 서로의 귀한 시간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그래도 요새는 조금 여유가 생겨

내가 칼퇴를 하는 날이면 남편이 잠깐이라도 운동을 하고 자기 시간을 갖고,

저녁에 줌과 같은 온라인 모임이 있는 날이면, 남편이 아이들을 돌본다.

둘째가 훌쩍 큰 지금은 몇 날 며칠도 혼자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아이 둘을 혼자 볼 수 있는 정도가 된 게 그래도 아이가 열 살 무렵 정도부터였던 것 같다.

물론 어떤 날은 대참사였고, 어떤 날은 선방한 날도 있었지만,

그때부터는 그래도 멘탈이 무너지지 않고 아이를 돌볼 수 있었다.

작년 초부터 대변 뒷처리를 혼자 할 수 있게 되면서, 조금 더 여유가 생겼다.



시간이 지나 혼자 아이들을 돌볼 수 있고, 둘째가 커서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지만,

끊어진 사회생활이 다시 이어지기란 쉽지가 않았고,

또 의욕과 에너지도 그만큼 남아있지도 않아

남편과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그나마 직장생활을 해서 조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바깥과 단절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는 주변의 부모들이 참 많다.

많이 안타깝고 또 아프다.


나는 짤막한 상상 속에서나마 자유를 느끼고, 해방감을 느낀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에 대한 푸념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당신 곁에 있는 소소한 일상의 귀중한 행복을 알아주길 바란다.

더 많이 행복하고, 더 많이 사랑하길.


조금은 다르지만,

조금은 특별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평범한 일상이 된 지금의 귀중한 행복에 감사하려고 한다.


아이가 건강함에,

또 우리가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음에,

또 희망을 갖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음에 말이다.


물을 좋아하는 아이는 어느 물이든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다섯 살 어린이집 소풍 때 사라져 한참 뒤에 근처 습지에 들어가 있는 걸 발견했다. 수족관 물도 흙탕물도 연못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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