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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사람 Dec 26. 2023

띵동, 방학이 5일 추가되었습니다

좀만 참지, 방학 직전에 독감이 걸리다니!

띵동, 독감입니다.

이건 좀 아니다.

방학 직전에 독감 걸리는 건 좀 억울하다.

연간 수업일수가 똑같아 엎어치나 메치나 넘어뜨리는 건 매한가지인 걸 잘 알면서도, 유난히도 긴 겨울방학 앞두고 독감이라니.

네가 학교 간 사이, 긴 방학을 앞두고 심신 건강을 위해 꾸려본 며칠 간의 계획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천만영화 서울의 봄을 남편과 살짝 보려고 했고,

송구영신의 마음으로 목욕탕에 가서 때를 팍팍 밀어보려고 했고,

카페에서 따뜻한 바닐라 라떼 한 잔에 선물 받은 책도 읽어볼 심산이었는데, 다 그르쳤다.


이게 다 독감 때문이었다.

새벽에 열이 나던 아이는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열도 내리고 생기가 돌았다. 점심에는 입맛이 도는지 내 밥도 반이나 뺏어 먹었다.

다행히 가볍게 지나갈 것 같다.


엊그제부터 이상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소파에 앉아 목을 끓는 기괴한 소리를 한참 냈다. 비몽사몽 잠결에 아이 옆에 있었는데 소리만 낼뿐 외마디 말도 없었다.

졸다 자다 하면서 아이의 기괴한 소리를 듣고 있으니 잠이 깼다.


선생님을 뵙거나 병원에 가면,

"아이가 발음이 어눌하고 목소리가 탁해도, 두 세 어절로는 말해요."라고 둘러댔는데,

누워서 듣고 있으니 입을 벌려내는 소리조차 없이 심각했다.

분명 질문에도 답하고, 원하는 것도 말로 하는데, 왜 1차 소통수단이 되지 않았을까?


딱 십 년 전 나는, 남편의 이렇다 저렇다는 말에도 길길이 날뛰며 다 좋아질 거라고, 초치는 말은 말라고 협박하며 현실을 부정했다. 유창하게 재잘거리는 날이 올 거라고 말이다.

딱 십 년 후 나는, 조금 현실에 타협하고 있다. 아이가 음성언어를 의사소통 수단으로 우선으로 하지 않고, 이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짖어보라는 조지엄마의 말에 조지는 멍멍 대신 야옹, 꽥꽥, 음매, 꿀꿀거린다. 엄마는 의사를 찾아가고 의사는 아주 간단한 이유를 찾아낸다.

바로, 조지의 뱃속에 동물들이 있기 때문. 입에서 하나씩 꺼내져 나오는 장면은 황당하면서도 귀엽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조지가 우리 아이 같다.


너는 강아지니까.

엄마인 나도 개니까.

우린 멍멍이라고 짖어야 한다.

아이가 가진 모습이 강아지가 아니라면?


아이가 가진 모습이
나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면?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아이가 선호하고 편하게 적용할 방식을 고민하기보다 아이가 속한 사회가 덜 밀어내길, 덜 힘들어하길, 그래서 조금 더 안전하고 따뜻하게 그곳에서 머무를 수 있길 바랐다.


그렇게 맞춰나가기 위해 가르치고 연습했다.

물론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춘기를 앞둔 자폐 아이에게 조금 더 최적화된 방식이 필요하다.


십 년간 다른 방식의 소통을 따라 익혔다면,

지금부터는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것을 익혀볼 수 있게 도우려고 한다.


조지는 무슨 뜻인지는 알고 짖는 걸까? 따라말하기를 하면, 당연히 이해도 하고 있을거란 착각을 하기도 한다.


암튼 방학은 5일 보너스가 추가되어 더 길어졌다.

긴 겨울을 어찌 보낼지 막막하다.

고민은 덮어두고, 우선 신나게 놀게 독감부터 낫자!


66일의 겨울을 짜릿하게 보내보자.

그러려면 우선 찐한 믹스 한 잔 때려야 한다.

식으면 그나마 효과가 떨어지는 기분이라 뜨거울 때 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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