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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사람 Dec 27. 2023

엄동설한에 마루공사를?

공사다망한 나와 은근히 즐기는 너

이 집에 살게 된 지 8년째, 곧 9년 차다.

한 번 둥지를 틀면 좀처럼 뜰 줄 모르는(?) 뚝심도

아니 기회를 잡지 못하는 소심한(?) 투자마인드가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1층이라 아랫집에 미안할 일 없었고,

2미터 30센티가 웃도는 높은 층고라 윗집에도 덜 미안했고,

자전거도로가 가까워 날 좋으면 자전거 타기가 좋았다.


그렇게 고마운 집이 너덜거려 집을 수리하기로 했다.

이 나간 듯 듬성듬성한 마루바닥이 눈에 거슬린 지 4년, 도저히 못 참겠다 하여 공사를 결심하긴 했지만 도무지 사는 집 전체 공사가 엄두가 나지 않아(물론 비용도) 문제의 핵심인 거실만 하기로 했는데,

겁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죄다 듬성듬성, 스타킹 신으신 분은 못 오십니다. 올 나가요.

아이가 학교를 가 있는 동안, 집은 공사를 하고

퇴근길과 하굣길이 만나 잠시 임시거처에서 우리는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3일 뒤 방에 둔 거실과 주방 짐을 옮겨놓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짜잔!

"와, 새 집 같아!"

이건 어디까지나 순진한 우리 부부의 바람이었다.


현실은

아이는 독감에 걸렸고 날은 춥고, 갈 곳은 없고,

사서 고생하기에는 젊지 않은데, (안 사요!)

게다가 빌린 집은 단칸방 짜리니 남은 셋의 독감확진은 시간문제였다.


처음엔 테트리스 하듯 착착 정리하다 마지막엔 밀어넣기와 우겨넣기로 대혼란 그 자체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거실과 주방에 있는 짐을 옮기며 아우, 이걸 왜 지금 한다고!

짐들과 함께 실종된 차키를 찾다 절규하면서, 무슨 부귀영화 누린다고 공사를 하는 건가?(결국 실종 여덟 시간 만에 찾았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 덜컥 겁이 났다


아이는 집 가구 위치만 바꿔도 심란해했다.

바로 옆교실이어도 새 학기면 손톱 주변을 죄다 뜯어 피가 났다.


가뜩이나 독감까지 걸려 컨디션이 꽝인 아이는,

우리 부부가 캐리어와 아이스박스에 짐을 쌓고 있는 모습을 유심히 보더니,

"리조트"라고 전자노트에 쓰고 연거푸 말했다.

아, 여행을 가는 거로 알고 있구나.

아이는 얼굴에 설렘이 가득했다.


여행은 아닌데 여행을 기대하는 아이의 기대를 부응하기 위해 저녁 산책길에 오랜만에 탕후루도 먹었다.

그래, 여행이 별 건가.

남의 집에서 먹고 자면 여행이지.


임시로 머물 숙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모처럼의 여행이 좋았는지,

아주 편안히 있다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여행 때마다 잠을 못 자 늘 고생했었는데 또 컸다.


내일은 독감 좀 낫자, 휴지는 이제 그만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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