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아이와 단둘이 9박 10일, 마지막 날 밤에 드는 생각
둘째와 남편에게 여행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둘째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남편에게는 홀가분한 휴식을,
물론 큰 아이에게도 그 두 가지를 다 주고 싶었지만,
긴 비행거리는 아이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무리였다.
천천히 조금씩 도전해봐야 할 일이었기에,
온 가족 해외여행은 예전처럼 다음으로 미뤘다.
아이의 여권은 만들어졌지만 한 번도 도장이 찍혀본 적 없었고, 나 역시 남편과 다녀온 신혼여행이 전부였지만 부럽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이렇게 두 부자를 보낸 지 세 차례인데, 새삼 세상에 나 혼자 이 아이와 남는다면 어떨까 하는 처연한 생각이 든다.
너무 앞서가는 생각일까 싶다가도 언젠가 우리 부부 중 누군가의 모습이겠거니 싶어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풀어진다.
마음대로 아프기도, 바쁘기도, 여유부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잘 지내는 날은 신이 나서 많은 것들을 하다가, 아이가 힘들어하는 날이면 나 역시 힘들어 지쳐 쓰러질 것이다. 지금의 삶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오롯이 혼자 해낸다는 무게감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고 따르는 아빠와 동생의 빈자리를 느낄까 싶어 분주히 움직였다. 매일 규칙적인 일상을 보내면서도 외출과 운동을 빠짐없이 넣었다.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마치 강박처럼.
단둘이 기차 타고 서울에 가서 롯데월드도 가고 숙소에서 자고 오고,
매일 체육관에 헬스도 하고,
밖에서 밥도 사 먹고,
농구경기도 보고, 서점도 가고, 마트도 가고, 카페도 가고, 미용실도 가고. 눈이 오고, 비가 왔는데도 안 나간 적이 없었다.
가족들과 있을 때와 달리 빈틈없이 구려고 노력했고,
남편이 채워줬던 부분들까지 하느라 내 시간을 가질 엄두도 못 냈다.
아이는 자면서도 평소보다 뒤척이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으니 평소보다 더 빠듯했다.
아이와 단둘이 있으니 꽤나 많이 힘들겠다 싶었는데,
둘이 있으니, 더한 책임감이 느껴지고,
둘이 있으니, 아이를 차분하게 바라보게 된다.
물론 힘들고 지치기도 하지만,
계속 놓쳤던 아이의 눈빛, 표정, 행동이 읽힌다.
그러니 더 사랑스럽다.
그러니 더 애잔하다.
그러니 더 소중하다.
아이는 9박 10일 동안 오롯이 나를 통해 세상을 만났다.
내가 아이에게 세상과 만날 다리가 되고,
내가 아이에게 세상과 함께할 울타리가 되고,
내가 아이에게 세상을 이어 줄 시작점이 되어야겠다.
내가 없을 때에도 세상 속에서 어우러지고 행복하길,
나는 기꺼이 그 디딤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9박 10일 독박육아는 약간 피곤했지만, 제법 값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