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은 조용하지 않았다
떠난다는 결심은, 늘 조용히 다가오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목구멍이 뻐근해졌고,
내가 떠나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향은 동해를 마주한 공업도시였다.
굴뚝은 많았지만 연기는 얌전했고,
기계음보다 먼저 바람 소리가 창을 두드렸다.
거대한 건물들이 지켜보는 골목은 늘 깨끗했고
그 안에서 나는 조용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자라났다.
그 도시를 떠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원이라고 하기엔 너무 담담했고,
붙잡기에는 각자 너무 바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무심한 시선들이 떠나기 직전의 나를
더 크게 흔들었다.
짐을 싸던 밤,
가장 오래 망설였던 건
입지도 않을 옷 한 벌이나
책상에 붙어 있던 낡은 포스트잇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내일이면 ‘기억’이 될 거라는 감각이었다.
고향을 떠난 첫날,
새 도시의 공기는 깨끗했지만 낯설었다.
거리는 단정했고 사람들도 친절했지만
도시 전체가 마치 나에게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완벽한데,
나는 그 안에 잘 끼어들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이따금 고향을 떠올린다.
겨울 햇살이 유독 길게 드리워지던 정류장,
일요일 오후 텅 빈 공터에서 바람을 맞던 순간,
그리고 습관처럼 올라갔던 언덕 위 작은 편의점.
그 모든 장면들이
요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해준다.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곳이 있었기에 지금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도 맞다.
떠난다는 건 잊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더 자주 떠오르고,
조금씩 다시 꺼내보게 되는
내 삶의 원본 같은 곳이 되어버린다.
나는 떠나왔지만,
내 마음 어딘가는 여전히
그 도시의 느린 시간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