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무너지고, 천천히 다시 일어나는 법
“그날 밤, 나는 도망친 게 아니라 숨을 쉬러 떠난 거였다.”
어느 날, 차 키를 집어 들었다. 딱히 갈 곳은 없었다. 목적지도, 도착 예정 시간도 없었다.
그저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었다.
누군가의 시선도, 말도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혼자이고 싶었다.
밤이 깊어갈 즈음, 해안가 가까운 어느 골목길, 사람 없는 공터에 차를 멈췄다.
시동을 끄고 시트를 뒤로 젖혔다.
천장은 낮았고, 세상은 조용했다.
‘이게 끝인가. 아니면 시작인가.’
그 순간,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던 것 같다.
차창을 통해 바람이 스며들었다.
내 마음을 감싸는 듯한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괜찮은 척, 흔들리지 않는 척 애써 지켜오던 것들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저게… 나였나?”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나를 마주했다.
말없이, 숨죽인 채.
잠시 걷다 멈춰선 바닷가 벤치.
가라앉은 노을빛을 바라보는데,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슬쩍 인사를 건넸다.
무슨 말을 나눴는지는 오래 지나 흐릿하지만, 그저 “안녕하세요”라고 답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색하면서, 또 그렇게 따뜻할 줄이야.
그 밤, 나는 떠난 게 아니었다.
도망친 것도, 끝내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숨이 막힌 마음을 잠깐 내려놓으러 나온 것이었고,
그 조용한 어둠 속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
별 하나 없는 하늘 아래,
그날 밤의 정적은 내게 말했다.
“너는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 밤 이후 나는 나를 조금 더 믿기로 했다.
한 발씩, 느리게라도 걷기로 했다.
목적지보다 중요한 건
걸음 속에 깃든 나의 마음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