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도 괜찮아, 계속 나아가고 있으니까
길 위에서 배운 것들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날이 있다.
어딘가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계속 이 자리에 있다가는 스스로가 무너질 것만 같은 그런 날.
그럴 때 나는 가방에 이불을 던져 넣고,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없었다. 단지, 길 위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이유였다.
혼자 떠난 밤은 낯설었다. 조용했고, 그 고요함은 처음엔 무겁게 느껴졌다.
누군가와 나눌 말도, 눈 마주칠 사람도 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내 안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무시했던
아주 조용한, 그러나 분명 존재하던 내 마음.
그 길 위에서 나는 배웠다.
창밖 풍경이 한 장면씩 스쳐 지나갈 때,
붙잡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다는 걸.
낯선 식당에서 조용히 밥을 먹으며,
혼자 있는 시간이 꼭 쓸쓸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그동안 나는 자리를 지키는 일에만 익숙했고,
떠나는 법을 잊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 위에 있는 동안만큼은
머무는 나보다 조금 더 솔직한 나였다.
어느 바닷가, 바람이 세차던 저녁이었다.
방파제 끝에 앉아 무심한 파도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내가 견뎌낸 것들은, 그저 아픔만은 아니었다.”
그건 나를 여기까지 버티게 만든 내력 같은 것이었다.
내가 걸어온 길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그렇게 모든 것이 멈춘 듯 조용한 순간이었다.
여행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날씨는 예상과 다르게 흐려졌고, 목적지는 생각보다 낯설었다.
감정도 종종 들쑥날쑥했다.
하지만 그런 흐트러짐 속에서도 알게 됐다.
삶은 늘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불완전함 안에서, 오히려 가장 진짜 같은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나는 완전한 행복을 느낀 적은 없다.
그렇다고 특별한 감동만 가득한 여정도 아니었다.
다만 분명한 건,
다시 내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 길 위에서 스스로를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자꾸만 지도를 펼친다.
여행지를 검색하고, 어딘지도 모를 길을 따라가보는 상상을 한다.
그건 세상을 향한 갈망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다시 나와 마주하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내가 진짜 사랑하는 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니라,
그 안에서 흔들리고 멈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걸어보는 나 자신의 모습이다.
다음 여행은 어디가 될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또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어쩌면 삶이라는 이름의 여행길 한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