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대한 유감과 변명

천방지축 50대는 왜 왼쪽으로 왔나

주말에 한 일간지 기자가 ‘50대 중년 남성의 고독’이란 흥미로운 오피니언을 올렸다. 50대 진상들이 많아 반려견은 입장이 가능해도 50대 남성은 입장을 금지하는 바나 주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50대는 겉으로 보면 직장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나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울한 통계가 적지 않다. 지난해 자살률 1위가 50대(21%). 은퇴와 고용률의 지속 하락, 샌드위치 신세, 미래 불안과 우울…. 사실 이들은 산업화의 혜택을 누려 크게 고생하지 않은 세대, 이념적으론 왼쪽이 압도적으로 많은 세대. 이들을 누구는 X세대라고 하고, 혹자는 인구가 가장 많기 때문에(70~73년생) 2차 베이비붐 세대라고 한다. 6·25 전쟁을 거친 부모 세대는 “니들이 고생을 아니?”, 86 운동권 세대로부터는 “니들이 민주화나 투쟁이 뭔지 아니?” 군대 가서 타자 치다가 컴퓨터와 조우한 세대라 컴퓨터와 IT에 익숙한 MZ 세대로부터도 문전박대를 받기 일수다.


내 눈길을 끈 건 기사 댓글이다.

“우리나라 50대 남정네들 보면 딱 휴가 나온 군바리 생각난다. 전투복 다려 입고 군화 반짝반짝 닦고 나온들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는 현실 ㅎㅎ 지들이 퇴물인지도 모르고 아직도 신세대인 양 천방지축 휘젓고 다니니 왕따 취급당하는 거지. 그 분풀이로 더불당에 열광하는 거고. 답 없는 세대 ㅋㅋㅋ”


“전교조 교육 받고 출근길 나꼼수 방송 듣고 낄낄대면서 세뇌당한 줄도 모르고 배급에 의존”


실제로 50대인 나의 친구들을 보면 7대 3 정도로 진보 성향이 많다. 그들은 어느 정도 멋도 부릴 줄 알고, 자유분방에 감성적이기도 하다. 세계화·정보화 바람으로 배낭여행하고, 국비가 아닌 부모 돈으로 해외 유학을 본격적으로 떠난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얘기 가지고 몇 시간도 떠들 수 있지만, 그냥 간단히 경험상 왜 50대가 진보 성향이 많은지 돌아봤다. (내 주위 친구들의 찐 경험)


사례 1: 친구 A는 중학교 때부터 교사들로부터 구타를 자주 당했다. 막대기로 머리를 맞고, 물리 선생은 조회 때 방송 사고 났다며 발로 가슴을 여러 번 가격했다. 머리가 벗겨진 기술 선생은 코를 인정사정없이 비트는 일명‘맥주’에, 오른쪽 볼따기를 손가락으로 꽉 붙잡고 손바닥으로 왼뺨을 가격, 막대기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맞는 것은 평범한 이야기라… 그런데 이렇게 자주 때리던 선생들이 대부분 ‘반공’을 강조하던 권위주의 선생들이다. 자기들은 학교 후 술 먹으러 가면서 이런저런 잔소리 늘어놓고… 그런데 이렇게 속상한 마음을 달래준 특이한 족속의 선생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이른바 ‘전교조’ 성향의 선생들이다. 그들은 좌우지간 때리지 않았다. 그리고 교과서에 없는 멋진 시들, 이를테면 천상병의 ‘귀천’을 읊조리거나 링컨 전 대통령을 소환했다. 한 독일어 선생은 “링컨이 정말 흑인 노예가 불쌍해서 남북전쟁을 한 걸까? 음… 북부에 많은 공장들을 돌리기 위해 값싼 흑인 노동자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권위주의 꼴똥들의 상습적인 체벌로 상처받은 영혼들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낭만교조?


사례 2: 친구 B는 서울의 한 대형교회 청년부 총무였다. 그런데 툭하면 장로들이 다가와 잔소리를 해댔다.”맨날 너희는 모여서 놀기만 하냐. 교회 봉사도 해야지”, “성경 지식이 그래서 믿음이 성장하겠니? 새벽 예배도 나오고 여름 단기선교도 많이들 가야지, 교회 청소도 하고”…그런데 그렇게 잔소리를 해대는 장로들의 자녀들은 정작 교회에 잘 안 나오거나 해외 유학 중이라 교회에 없다. 그런 장로들은 이상하게 대부분 보수적이거나 권위적이다. 그래야 장로가 될 수 있다나 뭐래냐. 또한 마치 자기가 다 아는 양 잔소리하고 청년들의 말은 그냥 흘려듣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였다. 우린 뒤에서 “너나 잘하세요”했다. 우리가 그럼에도 교회에 남았던 이유는 갓 청년부에 부임한 정 모 전도사 때문이다. 그는 개인의 헌금 내역 공개하는 것, 헌금 바구니 돌리는 것을 다 없앴다. 좀 많이 리버럴했지만, 잔소리는 거의 없고 함께 족구하고 빵 사주고 그랬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인생에 대해 고민을 얘기하고 ‘실로암’을 부르며 낭만 교회를 꿈꿨다.


사례 3: 친구 C는 아버지가 공무원이었다. 일제 때 태어나 전쟁을 거친 전형적인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반 아버지들. 내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한 뒤 신문 직행 혹은 TV를 켜는 아버지. 본인의 잘못은 절대 인정 안 하고, 가끔 논리적으로 빼도 박도 못할 때면 ‘나는 이렇게 살아와서 어쩔 수 없다’라는 변명에 툭 하면 엄마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잔소리를 해댄다. 엄마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아빠를 볼 때마다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 아버지는 주로 조중동 신문을 읽으며 진보주의자들은 서슴없이 “빨갱이 넘들”이라고 비판한다. 종종 지역 차별적 말도 서슴치 않는다. C는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숨이 턱턱 막힌다며 밖으로 또 밖으로 맴돌았다.


이런 사례들은 사실 50대들에겐 보편적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반항적이다. X! 또한 속에 상처도 많다. 그래서인지 잘잘못이나 진실의 여부보다 그 마음을 터치해 주면 쉽게 감동을 받거나 마음을 연다. 눈물도 많다. 김현식이나 김광석, 여성 동무들은 이승철 노래 들으면 울컥하고…조금 배운 친구들은 상당히 사회 비판적이거나 판단을 잘한다. 자신이 상당히 자유주의적이며 합리적이고 꽤 오픈된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깊이’는 글쎄다…


이런 친구들에게는 진보적 어젠다가 더 쉽게 어필할 수 있고 매력적이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가 위의 댓글처럼 무작정 비판하면 할수록 더 마음 문을 닫는다. 그럼 아무리 객관적이고 통찰력 있는 조언을 해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김어준의 교조주의적이고, 아니 말도 안 되는 선정적인 말에도 ‘사이다’로 적시고 긁어 주니까 홀딱 반한다. 멀쩡한 청년들이 JMS사이비에 빠졌던 것도 이런 영향이 분명 있을 것이다.(사실 딴지일보나 한겨레는 초기에는 꽤 일리있는 기사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자기 최면인지 모순인지 지금은 사이비 ‘종교지’나 ‘기관지’같이 전락!)


나 역시 한 손에는 한겨레신문, 또 한 손에는 ‘일간스포츠’를 즐겨 읽었던 전형적인 좌파 청년이었다. (근데 혼자 있을 때는 스포츠신문을 먼저 읽다가 누가 오면 한겨레를 펴는 전형적인 위선적 청년이기도 했다) 그러다 외국에서 한국과 아시아의 근대사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공부하면서, 비판적이었던 인물이나 이념에 대해 생각이 많이 달라지게 됐다. 아울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권위적인 아버지를 정죄하는 것 자체가 독을 삼키는 것이며, 그 독을 먹을지 말지는 내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아버지가 용서를 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먹었던 독을 빼고(회개) 용서하니 관계가 바뀌고 아버지의 인생을 compassion의 마음으로 보는 시각을 갖게 됐으며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에 대해서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50대를 욕하시는 어르신들께도 당부드리고 싶다. 그들이 그렇게 밖으로 왼쪽으로 가도록 이끈 조력자 중의 하나가 바로 어르신들이라는 것도 인정하셨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무작정 빨갱이, 사회주의자, 전교조 꼴통 팔로어… 욕하지 마시고 좀 더 마음을 다독거려 주시라…. 그럼 시간이 다소 걸릴진 모르지만 그들의 사고나 태도도 더 유연해질 것이라고. 왜? 디따 감성적이라니까요.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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