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커크의 암살, 미국을 패닉에 빠트린 이유 I

대한민국이 커크 암살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할 이유

오늘은 미국을 공포로 몰았던 9·11 테러 24주년입니다. 당시 큰 충격에 빠진 미국인들의 모습을 저는 맨해튼 직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9·11 테러가 외부의 공격이었다면 지금 미국은 내부로부터 공격받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정치 폭력이 턱밑까지 다가온 거죠. 그 배경을 몇 차례에 걸쳐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한국의 정치인들도 이를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1. 왜 커크인가


오늘 트럼프 대통령은 찰리 커크의 장례식 참석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참석할 것이다. 나는 장례식에 참석할 의무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31세 청년의 암살에 대통령이 전국에 조기를 내걸고 장례식 참석 의무를 언급한 것은, 커크가 단순한 보수 청년 운동가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미국에서 꺼져가던 젊은 보수주의자들의 불꽃을 다시 살린 혁명가였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조지 윌(George Will)은 오늘 커크를 70년 전 ‘내셔널 리뷰’를 창간해 미국 보수 운동의 기초를 다진 윌리엄 버클리 주니어에 비유했습니다. 버클리는 리버럴한 모교 예일대와 전면전을 불사하며 ‘예일대의 하나님과 인간(God and Man at Yale)’이란 책과 ‘내셔널 리뷰’ 창간으로 향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까지 영향을 미친, 보수운동의 기초를 다진 인물입니다.


커크 역시 18세에 TPUSA를 세운 뒤 왼쪽으로 기운 미국 대학가 운동장을 마구 흔들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캠퍼스를 순회하며 민감한 이슈에 관한 논쟁을 서슴없이 펼쳤고, 보수주의와 복음주의 기독교 가치로 청년들을 결집시켰습니다. 특히 오프라인과 소셜미디어를 결합해 토론 콘텐츠를 브랜드화했고, ‘포맷의 천재’라는 평가까지 받았죠.

kirk banner.jpeg


2. 정치는 평화를 위한 것


커크의 강점은 적대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리버럴 언론마저 지금 커크를 평가하는 이유는, 그가 의견이 다른 이들을 찾아가 존중하며 교류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20억 뷰를 기록했다는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XwmqCVrkXWk)에서 그는 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대학 캠퍼스를 다니며 도전적인 대화를 나눕니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에 정말 중요한 건 서로의 의견 차이를 존중하며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말을 멈추면 그때 폭력이 시작되거든요…. 우리는 이런 자리를 녹화해 인터넷에 공개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히는 걸 보여주려는 거죠. 왜냐하면 대화가 끊기면 폭력이 나오고, 결국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상대를 너무 악으로만 보고 인간성마저 잃게 되거든요.”

charlie-kirk 1.jpg Charlie Kirk speaks@UVU Tess Crowley/The Deseret News/AP

그는 실제로 “식당에서 쫓겨난 적도 있고, 공개석상에서 폭행당한 적도 있으며, 수차례 살해 위협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3. 정치 폭력 옹호 여론 증가


미 정치 폭력에 대한 통계는 냉혹합니다. 존스홉킨스대 릴리아나 메이슨 박사와 위스콘신대 네이선 칼모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 응답자의 5분의 1은 정치 폭력이 때때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답했고, 5분의 3은 “상대가 먼저 폭력을 쓴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FIRE(개별적 권리와 표현 재단)와 College Pulse 조사에서는 대학생 3명 중 1명 이상이 ‘캠퍼스 연사를 막기 위해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미 폭력의 불씨가 캠퍼스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죽음이 아닙니다. 많은 대학이 보수 연사를 초청하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토론 행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표현의 자유에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운 거죠.


4. 폭력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을 퇴출시켜야


냉소적으로 보면 미국에 정치 폭력이 부활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은 이미 네 차례 대통령이 암살된 전례가 있고, 린치 등 폭력은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리 정치인뿐 아니라 평범한 미국인들까지 좌우 급진화되며 반대자를 ‘악마화’하고 있습니다.


상대를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트럼프 대통령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죠. 그래서 미국 언론들은 오늘 사설에서 지도자들은 정치적 폭력을 불러올 여지를 조금이라도 열어두어서는 안 된다고 공통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시카고 트리뷴은 이렇게 지적했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말을 폭력으로 규정할 때, 폭력은 논리적 대응으로 고개를 든다.”


“만약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당신을 죽여도 된다고 느낀다면, 표현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커크는 과거 캠퍼스 투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믿는다면, 그 아이디어를 위해 싸울 용기를 가져야 한다. 도망치거나 침묵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시카고 트리뷴은 그의 말이 옳았다고 강조합니다.


지금 미국에선 커크를 ‘정치적 순교자’로 만들어 더 큰 좌우 폭력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의 암살이 급진적인 청년들의 폭력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현실화되고 있는 겁니다.


미국인들은 지금 패닉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패닉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도 그렇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정치가 사법 절차를 무시하며 ‘특별재판부’까지 설치해 상대를 척결하려는 초법적 발상까지 내놓습니다. 그것은 결국 상대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악마의 문을 여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커크의 죽음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경고입니다.


#커크 #찰리 #암살 #정치폭력 #미국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보수 청년 암살로 충격에 빠진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