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는 자들의 문법: 두려움

북한이 이란의 불빛을 감추는 이유

2월 28일, 테헤란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쳤다. 하메네이가 죽었다.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이 죽었다. 36년 신정체제의 머리가 잘린 것이다.

song byeok-2.png 북한에서 선전 작가로 활동했던 탈북 화가 송벽 님의 작품입니다.


세계가 이 소식을 들었다. 평양은 들었지만, 인민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밖으로는 말했다. 조선중앙통신이 외무성 담화를 실었다. “불법무도한 침략행위”, “추악한 주권침해.” 그러나 그것은 수출용 분노였다. 3월 1일자 노동신문 1면에는 당대회 선전 기사가, 2일에는 김정은의 시멘트 공장 방문이 헤드라인이다. 2,000만 주민은 테헤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소리는 밖으로 지르고, 침묵은 안으로 삼킨다. 이것이 독재의 문법이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올해 1월 마두로가 체포됐을 때, 2011년 카다피가 죽었을 때, 2006년 후세인이 교수대에 섰을 때도, 북한 주민이 보는 매체에 그 소식은 실리지 않았다. 독재자의 최후는 보도되지 않는다. 패턴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


왜?


아이가 어두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는 이유는 뭘까? 무섭기 때문이다. 이불이 괴물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걸 아이도 안다. 그래도 덮는다. 보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느끼니까.


북한 정권이 하는 일이 이런 짓이다.


독재는 용감해서 숨기는 게 아니다. 두려워서 숨긴다. 그들이 감추는 건 뉴스가 아니다. 가능성이다.


밧줄에 끌려가는 독재자를 본 인민의 머릿속에서 한 문장이 번역되는 데는 1초면 족하다. “아, 저런 일도 가능하구나.” 이 한 문장이 체제의 수명을 단축한다.


총알은 한 사람을 죽이지만, 질문은 체제를 죽인다. 그래서 평양은 질문의 씨앗이 싹트기 전에 뽑는다. 소식을 지우고, 디테일을 삭제하고, 인민의 눈과 귀를 이불로 칭칭 감아 덮는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스콧 펙(M. Scott Peck)은 『거짓의 사람들(People of the Lie)』에서 인간의 악을 이렇게 정의했다.


"악이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고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것이다."


펙이 악의 특징으로 든 것들을 읽으면 한 나라가 보인다. 일관된 희생양 만들기. 자기 성찰에 대한 완강한 거부. 외부에 비치는 이미지에 대한 병적 집착.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진실을 통째로 부정하기 보단, 결정적 디테일만 지워버리는 편집된 거짓말.


평양은 늘 희생양을 만든다. 굶어도 미제 탓, 무너지면 봉쇄 탓. 자기 성찰을 거부한다. 최소 수십만이 굶어 죽은 90년대를 "고난의 행군"이라 이름 붙여 고통을 훈장처럼 선전한다. 화려한 거짓이랄까.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오르는 김정은의 사진, 인민들에게 둘러싸여 어린 딸과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김씨 부녀, 미사일 발사를 슬로모션으로 편집하는 조선중앙TV. 완벽함을 주장하는 자일수록 가장 많은 것을 숨기는 법이다.


펙은 이런 악의 핵심이 힘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빛의 문제라고 했다. 악은 자기 안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감추고, 덮고, 편집하고, 삭제한다. 어둠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북한을 정치적으로만 본다. 핵 사거리, 유엔 결의안 번호, 미사일 제원, 평화와 안보.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평양의 행태가 왜 70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거짓말을 전략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 체질로 굳힌 체제. 빛을 피하는 것이 습관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 된 권력. 이것은 정치적 범주만으로는 다 읽히지 않는다. 거기에는 ‘선악의 렌즈’가 필요하다.


에베소서에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에베소서 5:8–9)


바울이 말하는 빛의 열매는 착함, 의로움, 진실함이다. 이 세 단어는 평양이 가장 두려워하는 세 단어이기도 하다. 착함은 희생양 만들기를 멈추게 하고, 의로움은 자기 성찰을 요구하고, 진실함은 편집된 거짓말을 무너뜨린다.


나는 오랜 세월 북한을 취재하면서 많은 탈북민을 만났다. 그들 대부분은 내게 진실을 북한에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몰래 들은 라디오 한 문장, 중국에서 건너온 USB 속 영상 한 편이 세뇌의 껍질에 금을 냈다고 증언했다. 깊이 잠들어 있던 ‘비판적 사고’가 깨어났고, 새로운 삶과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는 것. 그토록 오랫동안 덮고 있던 거짓의 이불을 걷어낸 순간이었다.


그들의 증언은 빛 가운데 사는 우리의 역할을 자명하게 한다.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일. 삭제된 디테일을 복원하는 일. 이불 밑에 가려진 현실을 인민의 눈앞에 되돌려놓는 일. 대북 전단이든, 외부 방송이든, 탈북민의 증언이든, 결국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진실을 건네는 일이다. 어둠에 빛을 보내는 일이다.


독재가 가장 무서워하는 무기는 B-2폭격기가 아니다. 인민의 눈에 들어오는 ‘진실’ 한 줄이다.


테헤란에 불이 떨어진 날, 평양은 세상에서 가장 긴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이 그들의 정체를 말한다.


숨기는 자는 두려운 자다. 어둠을 택한 자는, 빛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빛 앞에서는 살 수 없는 자다.


그러나 빛의 열매는 진실함에 있다. 그리고 빛은, 결국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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