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과 철창 사이: 테헤란을 보며 평양을 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늘 이란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 개시를 선언했다. 8분짜리 영상 성명의 끝자락에서, 그는 이란 국민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끝내면, 정부를 접수하라. 세대에 한 번 있을 기회다."
전쟁 선언문 안에 혁명의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
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 한 나라의 국민에게 스스로 운명을 쥐라고 말하는 것. 그 말이 진심인지, 전략인지, 수사(修辭)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그 문장이 가진 무게는 부정할 수 없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란이 아니라 북한을 떠올린다.
김정은에게 핵무기는 성벽이다. 그 성벽 안에서 그는 왕조를 잇고, 체제를 세우며, 세계를 향해 협박의 언어를 쏘아올린다. 그러나 같은 핵이 2천만 북한 주민에게는 철창이다. 세상이 감히 손을 뻗지 못하는 이유, 어떤 대통령도 "정부를 접수하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 아니 철창 속 사람들에게 자유의 소식조차 전하지 못하는 이유. 그 모든 이유의 한가운데에 핵이 서 있다.
평양은 바그다드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봤다. 트리폴리가 쓰러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하나의 교훈을 삼켰다. 핵을 절대 놓지 마라. 오늘, 테헤란이 불타는 것을 또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얻을 교훈은 같다. 더 단단히 틀어쥐어라. 담장을 높이고 세뇌를 두텁게 하라.
트럼프의 말이 이란에서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21세기에 유일하게 아우슈비츠 같은 정치범수용소를 운용하고, 청소년조차 한국 드라마를 보고 유통하면 무기징역에 처하는 저 어처구니없는 나라, 북한은 늘 국제사회에서 예외다. 폭탄도 향하지 않고, 말도 닿지 않는 곳. 지도 위에 있되, 세계의 바깥에 놓인 나라.
핵을 가진 독재자에게 세상은 거리를 둔다. 그리고 그 거리의 무게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등 위에 얹힌다.
여기서 나는 묻고 싶다. 세상이 거리를 두는 곳에, 하나님도 거리를 두시는가.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시편 기자는 썼다. "여호와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신다." (시편 102:20) 출애굽은 그 문장의 역사적 실현이었다. 바로의 성벽은 견고했고, 이스라엘은 벽돌을 굽고 있었으며, 세상 어디에서도 구원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침묵 속에 이미 계셨고, 때가 찼을 때 움직이셨다.
북한의 철창이 얼마나 더 오래 서 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것을 무너뜨릴 힘이 외부의 폭탄에서 올지, 내부의 균열에서 올지, 아니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올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억압받는 자의 신음 소리가 닿지 않는 귀는 없다. 적어도, 하나님의 귀에는.
그리고 그 신음 소리를 듣는 것이 하나님만의 일은 아니다. 듣는 자에게는 응답할 책임이 있다. 모른 척 지나가지 말라고, 성경은 거듭 말한다. 세상이 침묵할 때, 그 침묵에 동의하지 않는 것. 그것이 신앙인의 가장 작은, 그리고 가장 무거운 의무다.
테헤란에는 오늘 폭탄이 떨어졌다. 평양에는 침묵 속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하지만 침묵이 영원한 적은 없었다.
성벽은 반드시 무너진다. 다만 그 전에, 철창 안의 사람들이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