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생들의 몽상가
사람들은 보통 사랑을 꿈이나 환상으로 기억하잖아.
이상하지.
실제로 그렇게 애절한 사랑을 해본 사람은 별로 없을 텐데.
가끔 ‘건축학개론’이나 ‘화양연가’ 같은 거 보면
괜히 ‘추억’이라는 말을 꺼내게 돼.
내 얘기도 아닌데
내 얘기 같고.
그때 그런 사랑을 못 했다는 걸
‘추억’이라는 말로 덮어두고
괜찮은 척 살아가는 거 아닐까.
나만 그런가.
우리 세대 있잖아.
70년대에 태어났거나, 그 전후에 자란 사람들.
이상하게 이런 영화에 약해.
라디오에서 옛날 노래 나오면
괜히 채널 안 돌리게 되는 것처럼.
나도 가끔 그래.
하루키 생각하다 보면
아직도 내가
그 소설 속 인물 중 하나였던 것 같아.
주인공은 아닌데
분명 거기 있었던 사람처럼 말야.
우리 세대는
뭐가 그렇게 비어 있었던걸까.
왜 그렇게 채워지지 않았을까.
꼭 철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진 않아.
생각은 늘 많았거든.
정리가 안 됐을 뿐이지.
솔직히 말하면
가슴에 사무치는 사랑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어.
후회 없이 안아보고
그 안에서 활활 타기도 하고.
젊었을 땐
괜히 그런 게 있어야 할 것 같았거든.
근데 현실은 늘 비슷했어.
텅 빈 자취방 하나랑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
다들 바쁘게 지나가는데
나는 왜 자꾸 서 있는 느낌이었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또 하나.
스스로 괜찮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고독.
사실은 외로움인데 그게 그렇게 내 마음을 후볐어.
그렇게 살다 보니까
어느새 50대더라.
눈치 없는 시간에
취해 살다 옆을 보니 반 백년의 숲을 걷고 있는 거야.
요즘은 말야.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모를 바람에
솔잎이 흔들리는 걸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해.
예전엔 그런 거 안 보였거든.
괜히 한 번 더 보게 되고
나랑 그 흔들리는 솔잎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말야.
가끔 이런 생각도 해.
왜 나는
그렇게 흔들리는 것만 봐도
가슴이 좀 먹먹해지는 걸까.
나이가 들면
차츰 배보다 가슴으로 숨 쉰다던데
아마 그런가 봐.
아니면 진짜로
여성 호르몬이 늘어서
눈물샘이 고장 난 걸 수도 있고.
웃긴 건 말야.
그렇게 찐한 사랑을 해본 것도 아니고
지금 누굴
절절하게 그리워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가끔
그 기억의 착각 같은 게
발라드 한 곡처럼 찾아와.
아무 예고도 없이.
그리고 그게
아프다기보다는
아, 아직도 심장이 뛰고 있네.
그 정도.
이를테면 몸도 마음도 시간도
감성과 현실의
경계선에 서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