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결집이 북한에 대해 말해주는 것
이란계 미국인 발리 나스르(Vali Nasr)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이란 상황을 매파 쪽도 비둘기파 쪽도 아닌, 매우 현실적으로 진단하는 드문 전문가입니다. 최근 한국에선 낯선 전문가들이 등장해 이란 사태를 진단하고 언론들은 말말말을 전하지만, 현실을 냉철하게 읽는 목소리는 적은 것 같아 그의 분석을 소개합니다.
나스르 교수가 13일 파이낸셜타임스(FT)를 비롯해 쓴 글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이란은 미국을 군사적으로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지치게 만들려는 것이다.”
지도를 펼쳐 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이란은 페르시아만 북쪽 해안 전체를 쥐고 있습니다. 세계 석유 수송의 핵심인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의 코앞입니다. 반대편을 보면, 이란의 동맹인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입구에 버티고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로 가는 길목입니다. 아라비아반도의 양쪽을 동시에 조일 수 있는 위치. 이것이 이란이 가진 카드입니다.
나스르의 비유가 날카롭습니다.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을 괴롭힌 것은 최첨단 무기가 아니라 도로에 묻힌 급조폭발물(IED)이었습니다. 이란은 지금 같은 논리를 세계 경제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드론, 단거리 미사일, 기뢰로 유조선과 항만을 공격하는 것은 IED의 바다 버전입니다. 다만 파급력이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고 유가가 치솟습니다.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란이 쓰는 비용은 미국보다 훨씬 적습니다. 토마호크 미사일 한 발에 200만 달러. 이란의 드론 한 대에 수만 달러. 비대칭 전쟁의 경제학이 이란 편입니다. 오래 끌수록 이란에 유리합니다.
나스르가 짚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설령 휴전이 성사되더라도, "다시 전쟁이 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남는 한 걸프 지역에 기업도, 투자자도, 관광객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두바이, 사우디, UAE가 수십 년간 쌓아온 경제 생태계 전체가 흔들립니다. 이란은 바로 이 불안감을 무기로 쓰고 있습니다.
이란의 요구 조건도 명확합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보증하는 주권 보장. 전쟁 피해 배상. 레바논 휴전. 그리고 미국이 2월 제네바에서 거부한 핵 합의로의 복귀와 제재 해제. 한마디로 이란 정권은 이 전쟁을 가미카제식 마지막 전쟁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나스르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란 지도부는 이 전쟁이 자신들을 무너뜨리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바꾸거나, 둘 중 하나라고 봅니다. 그래서 버팁니다. 충분히 오래, 충분히 아프게.
그의 최근 발언들을 더하면 그림이 더 선명해집니다.
빠른 승리는 환상이다. 3월 10일 NPR 인터뷰. “트럼프는 이 전쟁이 빨리 끝날 것으로 계산했다. 최고지도자를 제거하면 이란이 새 얼굴을 내밀고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베네수엘라나 시리아 시나리오처럼. 하지만 미국은 장기전에 대비하지 않았다.” 실제로 하메네이 사망 후 이란은 항복이 아니라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했습니다. 순교의 상징. 나스르의 표현대로, 항복이 아니라 저항의 신호였습니다.
이란은 전장을 바꿨다. 3월 4일 Foreign Policy 라이브. “미국은 빠른 종결을 원하지만, 이란은 전쟁을 늘리는 데 관심이 있다.” 전투기와 미사일의 전장에서는 미국이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유조선과 공급망의 전장에서는 이란이 시간을 법니다. 이란의 무기는 드론과 기뢰. 미국의 약점은 요격 미사일 비축량과 글로벌 경제의 인내심.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요격체를 소진하고, 걸프 국가들도 방어력을 잃는 시점을 기다리고 있다.”
출구는 하나뿐이다. FT 기고문 마지막 단락이 사실상의 로드맵입니다. 이란이 수용할 휴전 조건: 러시아·중국이 보증하는 주권 보장, 전쟁 피해 배상, 레바논 검증 가능 휴전, 제네바 핵 합의 복귀, 제재 해제. 미국이 이것을 거부할 경우의 대안은 지상 침공뿐입니다. 나스르는 그 대안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국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미국에게 좋은 선택지는 없다. 침공할 준비가 없다면 협상해야 한다. 협상한다면, 이란의 가격표는 미국이 지금까지 거부해 온 것들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계산은 다릅니다. 행정부는 이란의 장기전 전략을 인식하면서도, 군사적 압박의 강도를 높여 이란의 버티기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입장입니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이란 군함의 어뢰 격침을 공개하며 "우리는 이기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선언했고,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란이 핵을 영구 포기하지 않는 한 압박은 계속된다"는 원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행정부의 논리는 나스르와 정반대입니다. 장기전이 이란에 유리한 것이 아니라, 이란 경제가 먼저 무너진다는 것. 그리고 그 붕괴가 결국 체제 내부의 균열로 이어진다는 베팅입니다.
그런데 체제 전복은? 나스르는 1월 Project Syndicate 기고와 3월 NPR 인터뷰에서 같은 답을 합니다. 외부의 군사적 압력이 오히려 "국기를 중심으로 한 결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정권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그러나 이란인들은 전쟁에 경악하고 있고, 지금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정권에 대한 정치적 반대가 아니라 나라에 대한 방어 본능이다.” 트럼프가 이란인들에게 "정부를 접수하라"고 말했을 때 전제한 시나리오를 나스르는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이란을 통해 북한을 봅니다.
외부의 많은 이란인이 트럼프의 공격을 반겼듯이, 다수의 탈북민도 비슷한 상황을 고대합니다. 그러나 정작 무력 공격이 발생하니 이란 내부의 결속이 강화됩니다.
북한은? 아마 소외 지역인 함경도와 양강도 주민들은 총부리를 평양으로 겨눌 수도 있겠지만, 평안도를 비롯한 나머지 다수 주민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주변국이 북한에 대한 무력 공격은 물론, 급변사태를 불러올 모든 강압 정책을 피하는 것입니다.
북한보다 훨씬 외부와 소통이 가능한 이란에서도 적지 않은 국민이 이런 결속을 보이는데, 모태부터 수령 결사옹위로 세뇌된 북한을 생각하면 아찔하고 참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