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지는 시대

거대 거울위성, 백만 위성이 밤을 낮으로 바꾸는 시대

만약 밤하늘에서 별이 사라진다면?


밤에도 거대한 거울 위성이 보름달 36만 개 밝기로 당신의 도시를 비춘다면?


그냥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에는 이미 이런 사업에 대한 인허가 신청이 두 건이나 올라와 있다. 사업자들은 밤에도 태양광 발전으로 농업과 산업 생산성을 높이고,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데이터센터를 아예 지구 궤도에 올려 AI 인프라가 요구하는 막대한 전력과 물, 토지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거대한 인공 조명이 우리의 밤을 비춘다면, 우리 생태계엔 어떤 변화가 올까.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나 밀뱅크(Dana Milbank)가 최근 칼럼에서 이 화두를 꺼냈다. 신학자도 아닌 정치 칼럼니스트가 첫 문장부터 낯익은 창세기 구절을 독자에게 던진다.


“태초에,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


그 한 줄이 이 문제의 무게를 말해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미국에 리플렉트 오비탈(Reflect Orbital)이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궤도에 거대한 거울 위성을 올려 태양빛을 밤의 지구로 반사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태양광 발전소, 산업시설, 나아가 도시 전체를 비추되, 원하면 대낮 수준의 밝기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더 밝게 하고 싶으면 앱을 열면 된다. 북쪽 하늘에 인공 별 열 개를 동시에 띄울 수도 있다. 2035년까지 5만 기를 궤도에 올릴 계획이다.

인공별.png


동시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최대 100만 기의 위성을 쏘아올려 궤도 데이터센터로 운용하겠다는 신청서를 냈다. 현재 지구 궤도에 떠 있는 위성 수의 70배다.


매일 밤 100만 개의 광점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풍경, 그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들의 주장에 타당성이 없는 건 아니다.


반사 태양광은 태양광 발전소를 24시간 가동체제로 전환할 수 있고, 가로등이 없는 개발도상국에 빛을 제공하고, 식량 생산과 재난 구조에 쓸 수 있다. 이때문에 리플렉트 오비탈의 젊은 창업자 벤 노왝은 자신의 기술을 수천 년 전 관개 기술의 발명에 비유했다. “더 이상 해가 뜨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지는 겁니다.”

기술이 삶을 바꿔온 역사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항상 그 다음이다.

오비탈 캡처 사진.png 리플렉트 오비탈 홈페이지 이미지 https://www.reflectorbital.com/


대가를 누가 치르는가.


과학자들의 경고는 이미 선명하고 구체적이다.


인공 빛은 생각보다 잔인하다는 것. 철새는 길을 잃고, 바다거북은 바다 대신 도로를 향해 기어간다. 곤충은 줄고, 식물의 계절 시계는 흔들린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보름달 정도의 빛만으로도 수면 패턴이 바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리플렉트 오비탈이 약속하는 밝기는 보름달 36만 개. 리플렉트 오비탈의 노왝은 말한다. "첫 위성을 올리고 나서 생태 영향을 연구하겠다"고. 미국조류보호협회장의 반응은 짧고 묵직하다. "그 연구 결과는 이미 압도적으로 존재합니다."


먼저 쏘고, 나중에 묻겠다니. 순서가 바뀌었다.


위성의 수명은 평균 5년. 끝없이 교체해야 하고, 죽은 위성은 대기권에서 타면서 금속을 성층권에 뿌린다. 독일 과학자들은 지난달 스페이스X 로켓의 대기 재진입 장면을 촬영해 이를 증명했다. 화학 오염 기둥이 하늘에 번지는 불편한 장면이었다. 이 모든 걸 감독해야 할 FCC는, 위성을 환경심사에서 면제하고 있다. "인간 환경에 유의미한 영향이 없다"는 게 이유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면제의 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여기서 한 발 물러서 보면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밀뱅크의 한 줄이 자꾸 걸린다. "미국 위성 기업의 행위가 지구 모든 나라의 환경을 바꾸고 있다." 리플렉트 오비탈은 "가로등이 없는 개발도상국"부터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이 결정에 대해 한마디라도 할 수 있을까. FCC 인허가 절차에 케냐의 농부가, 방글라데시의 어부가 의견을 낼 창구가 있는가.


“없다”


누군가의 밤을, 누군가의 생태를, 누군가의 하늘을 담보로 빛을 파는 모델이라면, 그 비용은 대체 누가 내는가.


그런데 이 논쟁에서 빠져 있는 게 더 있다. 어쩌면 가장 무거운 질문.


“별이 사라지면, 우리는 무엇을 잃는가.”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FCC 서류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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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한국인들에게 70년 넘게 사랑받는 백설희의 노래 ‘봄날은 간다’이다. 최근 뮤지컬 배우 차지연이 한 TV 프로그램에서 너무도 구슬프게 불러 새삼 주목을 받은 곡.


별이 뜨고 지는 모습 속에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이 노래에 우리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별이라는 단어가 우리 안에 있는 아주 오래 동안 쌓여진 교감을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에게 별은 유난히 깊다. 윤동주는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을 담았다. 김광석은 별 아래서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고 물었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세대를 넘었고, '별에서 온 그대'는 베이징을 너머 아시아 전역을 울렸다. 별은 늘 닿을 수 없지만, 올려다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거리가 우리에게 그리움과 동경, 겸손을 가르쳤다.


유년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던 알퐁스 도데의 '별'도 떠올려 본다.


프로방스 산속의 외로운 목동. 양 떼와 바람뿐인 산꼭대기에서, 별만이 유일한 친구인 주인공. 어느 날 폭우를 뚫고 주인집 딸 스테파네트가 올라온다. 물이 불어 돌아갈 수 없게 된 밤, 그들은 모닥불 옆에 나란히 앉는다.

"저건 뭐예요?" 그녀가 하늘을 가리킨다.


목동은 떨리는 목소리로 알려준다. 은하수를. 삼왕성을. 그리고 가장 늦게 뜨고 가장 늦게 지는, 밤새 목동 곁을 지키는 '목동의 별'을.


그러다 그녀는 잠든다. 목동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목동의 맥박은 두 배로 뛴다. 그리고 속으로 고백한다. 하늘에서 가장 곱고 눈부신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 위에 살며시 앉아 잠들어 있는 거라고.


당신이 15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장면에 가슴이 뛴다면, 그건 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공 위성 100만 개가 줄지어 지나가는 하늘이었다면, 거울 위성이 산꼭대기까지 비추는 밤이었다면, 목동은 스테파네트에게 별을 알려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깨 위의 별처럼 설레이는 감정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3천 년 전, 목동이었던 다윗은 별을 올려다보며 노래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이 질문은 별을 올려다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별은 우리를 작게 만든다. 작아지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자기 바깥의 무언가를 느낀다. 그것을 누군가는 하나님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우주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냥 ‘경외’라 부른다. 이름은 달라도 감각은 같다. 이 우주에 나보다 크고 오래된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 그 깨달음이 인간을 겸손하게 하고, 이웃을 돌아보게 하고, 내일을 견디게 했다.


우리는 이 지구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빌린 것이라는 말이 있다. 땅만 빌린 것이 아니다. 하늘도, 궤도도, 별이 보이는 밤도 빌린 것이다.


그런데, 노왝의 말은 섬뜩하다. “더 이상 해가 뜨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자신감 안에 스며있는 감각이 나는 두렵다. 기다림이 필요 없다는 감각. 한계를 지울 수 있다는 감각. 우리 힘으로 충분하다는 감각 말이다. 인류는 그런 감각에 도취될 때마다, 비용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놓았다. 보이지 않는 생태계로. 보이지 않는 나라들로. 보이지 않는 다음 세대로.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시절이 있었다. 프로방스의 목동은 별 아래서 사랑을 느꼈고, 다윗은 별 아래서 하나님을 만났으며, 윤동주는 별 아래서 칠흑같은 어둠 속의 내일을 견뎠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 질문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밤이 어두웠기 때문에.


빛과 어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를 곧 맞이한다는 것은 무섭고도, 서글프다.


밀뱅크는 이렇게 끝맺었다.

"천문학자가 아니어도 그것이 틀렸다는 걸 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또 하나의 상실의 시대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에 잃는 것은, 위를 올려다보는 이유 그 자체다.


김영권(William Kim)은 20년 이상 VOA에서 기자로 북한 인권과 국제 외교·안보를 전담 취재한 독립 저널리스트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jpg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De sterrennacht (The Starr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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