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두려움은 국경을 넘고, 어떤 두려움은 강의실을 바꾼다
스님 출신의 예일대학교 김환수 교수가 이 대학 Morse College의 차기 헤드로 임명됐다. 한국에서 16세에 출가해 군종 승려를 지낸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탈북민을 예일대에 초청하고 '북한과 종교' 강의를 처음 개설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나는 그 때문에 그와 여러 번 인터뷰를 했었다.
Morse College는 예일대 14개의 기숙형 칼리지(Residential College) 중 하나다.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라, 입학과 동시에 배정받아 4년을 함께 먹고, 자고, 토론하며 성장하는 하나의 작은 공동체다. 옥스퍼드·케임브리지 시스템을 본뜬 것으로, 예일 학부 경험의 심장부로 불린다.
그 공동체의 수장이 바로 Head of College다. 행정가이면서 교수이면서, 수백 명의 학생들 곁에 함께 살면서 그들의 전인격적인 성숙을 돌보는 자리다. 강의실 밖에서도 계속되는 가르침. 그런 자리다.
예일대는 지난 30일 임명 소식을 전하면서, 그가 동아시아학 협의회(Council on East Asian Studies) 의장을 역임하며 한국학 강화와 예일의 글로벌 학술 네트워크 심화에 기여했다고 소개했다. 페리클레스 루이스 학장은 특히 그의 협치, 학생 지원 등 지속적 헌신을 언급하면서, 학생들이 미국에 거주하는 탈북 청년들을 대상으로 교육 및 직업 경로에 관한 튜터링과 멘토링을 제공하는 '바람(Baram)' 이니셔티브를 출범하도록 도왔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2020년 미국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북한과 종교' 수업을 개설한 뒤 내게 이렇게 말했다.
"탈북민들의 목숨을 건 탈출, 그 어려움 속에서 나은 삶을 살려는 몸부림 자체가 종교성입니다. 그 내면의 고통과 두려움은 예일 학생이나 북한에서 고생한 분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근본적인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런 것을 학생들이 느끼게 하는 겁니다."
그때 나는 잠시 멈칫했다. 북한 인권을 오래 취재했지만, 탈북민의 두려움과 예일 학생의 두려움을 같은 문장 안에 놓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는 북한을 핵과 미사일, 독재자의 프레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가족을 보살피고 더 나은 삶을 원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하고 싶다고 했다.
강의에 감화된 예일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바람(Baram)'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탈북 고등학생·대학생들의 에세이, 논문 작성, 진학 상담을 돕는 멘토링 프로그램. 씨앗 하나가 강의실 밖으로 번진 것이다.
이번 임명 소식을 보면서, K열풍이 K-교수로도 확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단에서 그저 이론을 전달하는 선생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뿌리를 내리고 다음 세대를 품는 스승. 그런 한국인 학자가 아이비리그의 심장부 중 한 곳을 맡게 됐다는 건 반갑다. 지난해 포항의 한동대를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온기를 느꼈다. 이상호 교수 부부를 비롯해,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학생들에게 혼신을 쏟아붓는 선생님들. 그 온기가 태평양 양쪽에서 동시에 피어오르는 것 같아 괜히 뭉클하다.
김 교수는 이번 임명에 대해 "Morse College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고, 그들이 지지받고, 연결되고, 편안함을 느끼는 공동체를 계속해서 가꿔나갈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이라고 말했다.
예일대에서 불교 지도법사(Buddhist Chaplain)로 활동하는 그의 아내 수미 런던 킴(Sumi Loundon Kim) 씨도 부헤드(Associate Head)로 함께 합류한다.
7월부터 모스 컬리지 공동체를 담당할 김 교수 부부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며, 그가 2년 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남긴다.
"예일대 학생 단 몇십 명이라도 북한에 사는 2천400만 명의 사람들, 그 혹독한 체제 안에서도 매일 열심히 일하고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 많이 알아야 북한에 대해 섣불리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겠죠."
� Morse College는 건축 거장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이 1961년 완공한 건물로, 학생 생활공간에 직각이 단 하나도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정형의 공간. 틀을 거부한 건물 안에서, 이제 한국인 학자가 수백 명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