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의 보이지 않는 손,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대한민국이 이 지도에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불안하다.
워싱턴의 안보 싱크탱크 제임스타운 재단이 최근 보고서 한 편을 내놓았다.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인민을 동원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해외 통일전선 공작 구조 분석."
이 단체 중국 연구 펠로 셰릴 유는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네 나라에서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 시스템과 연결된 조직을 추적했다. 그 결과 무려 2천294개가 나왔다. 작게는 동향회에서부터 문화센터, 상공회의소, 유학생 단체, 언론사. 겉으로 보면 평범한 시민사회 조직들이다. 보고서는 그러나 이들을 중국 공산당이 필요할 때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잠재적 역량'이라고 정의한다. 미국에만 967개, 캐나다 575개, 영국 405개, 독일 347개에 달한다.
물론 이 단체 전부가 직접 공산당의 지령을 받는 간첩 조직이란 뜻은 아니다. 평상시엔 조용하지만 당이 필요로 할 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는 게 핵심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영향력 생태계"라 부른다.
나는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숫자보다 패턴에 눈길이 갔다. 해외 화교 단체 지도부를 중국에 초청하고, 명예 직함을 주고, 수년에 걸쳐 관계를 심화시킨 다음, 서서히 요구 수위를 올리는 과정. 처음엔 문화 행사, 다음엔 대만 관련 성명서 서명 요구, 그다음엔 반체제 인사 감시 지시. 기술 인력을 포섭해 산업 기밀을 빼내고, 지방정부 정치인들을 친중 정책으로 유도하는 전술이 보이지 않게 진행된다.
이 패턴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읽고 있는 보고서 내용이 미국이나 캐나다 이야기뿐 아니라 한국에서 직접 보고 있는 현실과 오버랩되기 시작한다.
보고서에 한국은 없다. 분석 대상이 서구 4개국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안도가 아니라 공백임을 먼저 짚어야 한다.
통일전선공작부(UFWD)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직속 기관이다. 외교부도, 정보기관도 아니다. 당 바깥의 모든 세력, 즉 해외 화교부터 유학생, 기업인, 학자, 언론인, 종교인까지 모두 식별하고 관리하고 동원하는 게 임무다. 정보기관의 포섭 기능, 외교부의 공공외교 기능, 선전부의 여론 조작 기능이 하나의 조직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이 기구의 역사는 공산당과 결을 같이해 왔다. 마오쩌둥 시대부터 "친구를 단결시켜 적을 공격한다"는 원칙 아래 작동했고, 덩샤오핑은 이를 "중립화, 분열, 포섭"의 삼각 전술로 정교화했다. 시진핑은 통일전선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마법의 무기'라고 불렀다. 그저 수사적 과장으로 가볍게 흘려들을 말이 아니다.
2018년에는 국무원 산하 교무판공실이 통일전선공작부에 흡수 합병됐다. 해외 화교 업무, 종교 업무, 민족 업무도 모두 당 직속으로 올라갔다. 해외 공작의 지휘 체계가 당 중앙으로 일원화된 것이다. 시진핑이 이 기구에 '국가적 무게'를 실었다는 말은 이미 조직도에서 증명된다.
보고서가 소개하는 사례들은 이 구조가 이론이 아님을 보여준다. 1854년 설립돼 수십 년간 대만을 지지하던 샌프란시스코의 화교 단체는 통일전선 접촉이 시작된 지 18년 만에 오성홍기를 게양하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미 농무부 연구원은 통일전선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유전자 조작 쌀 종자를 중국으로 빼돌리다 실형을 받았고 2023년 시진핑의 샌프란시스코 방문 때는 통일전선 연계 조직 관계자가 시위대를 물리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유타주에서는 통일전선 인사가 주 의원들의 중국 방문을 주선하고, 공자학원 폐쇄를 지연시키고, 위구르 인권 결의안 통과를 막는 로비를 벌였다.
이를 일부의 일탈이라 보기 어려운 이유는 차고 넘친다. ASPI(호주전략정책연구소), 프리덤하우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 등 독립 연구기관들이 같은 패턴을 거듭 확인해 왔기 때문이다. 통일전선은 디아스포라 관리, 여론 조성, 기술 이전, 반체제 탄압을 동시에 수행하는 다층 시스템이다.
이제 질문을 한국에 던져본다.
중국과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국 국적 체류자가 약 98만 명에 달하고,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세계가 탐내는 핵심 기술을 보유한 나라. 보고서가 분석한 서구 4개국 중 어느 곳도 이 조건을 한국만큼 동시에 갖추지 못한다. 중국 출생 이민자 240만 명이 거주하는 미국도 물론 크지만, 인구 대비 밀도, 지리적 근접성, 경제 상호의존의 깊이, 핵심 기술 보유라는 변수들을 함께 놓고 보면 한국의 노출 조건은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중국 국적자들이 군사 시설이나 미군 자산을 드론으로 촬영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반복됐다. 부산에서 미군 항모와 해군 기지를 촬영한 혐의로 중국인이 체포됐고, 미군 기지와 공항 주변에서 촬영하다 붙잡힌 사례도 이어졌다. 물론 이 사건들이 모두 통일전선 공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이 이미 정보 수집과 회색지대 활동의 무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국정원도 이미 여러 차례 그 심각성을 경고했었다.
내가 직접 만난 한국 내 주요 매체 관계자들의 증언은 매우 구체적이다.
한 매체 간부는 미국에서 주요 국제회의를 취재하고 돌아온 다음 날, 중국 대사관 관계자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다고 했다. 근사한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미국 행사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그는 이런 접촉이 지난 10년간 국내 주요 언론사 간부급에서 매우 보편화된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 대사관이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 학술회의를 열고 언론인, 학자, 정치인, 지방의회 인사들을 수시로 초대하는 패턴을 지적했다. 겉으로는 학술행사지만, 실제로는 관광과 접대의 비중이 크다고 했다. 1년에 한두 번씩 초대가 반복되면서 관계가 깊어지고, 그 과정에서 정보 요청이 오가고, 대만 관련 어젠다가 전달되고, 중국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 지지를 요청받는 구조라는 것. 제임스타운 보고서가 지적한 그 패턴이 한국에서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보도 환경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중국학 교수 또는 중국 전문가로 불리는 다수 인사들의 공개 발언을 보면, 베이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그들의 공통점은 중국을 수시로 방문한다는 것. 일부 학자들은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트럼프'라 쓰고, 시진핑에 대해서는 '시진핑 주석'이라 표기하기도 한다. 한 진보 매체 간부는 아예 대놓고 트럼프에 비하면 시진핑은 양반이라며 두둔한다. 사소해 보이는 이 습관 하나에, 때로 무언가가 녹아 있다.
과거 한국에서 기업이나 연예기획사가 언론에 돈을 주고 비판 보도를 막던 관행이 떠오른다. 지금 일부 언론의 중국 관련 보도 행태는 그 구조와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한 건, 그 관행을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던 진보 매체들이 중국의 행태에 대해선 비판의 칼날이 현저히 무뎌진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많은 한국인은 중국 당국이 국내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국정원은 이미 중국의 위장 언론 사이트 200여 개를 적발했고, 서울 한강변 중식당이 사실상 '비밀경찰서' 역할을 했다는 결론을 냈었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게 있다. 중국 공산당과 중국인 디아스포라를 의식적으로 하나로 묶지 말아야 한다는 것. 제임스타운 보고서도 이 점을 분명히 한다. 중국인 체류자, 유학생, 조선족 전체를 의심의 눈으로 몰아가는 순간, 중국 공산당이 노리는 사회 분열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는 꼴이 된다. 그래서 일부 극우 인사들이 근거 없이 중국인 전체를 향해 혐오를 쏟아내는 건, 옳은 문제 제기가 아니라고 본다. 당장 대통령이 “국격 해치는 자해행위”라며 발끈해 본질이 흐려지는 모습을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구분이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 혐오를 경계한다는 명분 아래, 중국 공산당의 불법 행위, 간첩 활동, 기술 탈취, 국내 정치 간섭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얼마나 많은 정치인, 학자, 언론인이 통일전선 조직의 호의에 익숙해진 채, 내야 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가. 정치인과 의원이 중국을 얼마나 자주 방문하고, 가서 무엇을 하고, 경비는 누가 내는지를 추적하고 보도하는 언론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이런 현실에서 대한민국은 제대로 대응하는 걸까
한국 국회가 지난 2월 26일 형법 98조 간첩죄 개정안을 통과시킨 건 많이 늦었지만 긍정적인 진전이다. 이에 따라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73년 만에, 간첩죄 적용 대상이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됐다. 이전에는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를 위한 간첩 활동을 간첩죄로 기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법이 바뀐 건 다행이다.
그러나 미국 FARA의 사례가 경고한다.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은 외국 정부를 위해 활동하는 개인과 단체의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역대 중국 관련 등록 건수는 275건에 불과하다. 보고서가 확인한 미국 내 967개 통일전선 조직 중 FARA에 등록된 곳은 단 하나도 없다. 법이 있어도 집행이 따르지 않으면 결국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것.
한국에는 아직 외국 정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 자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이 없다. 반면 미국과 호주는 FARA와 외국영향력투명성법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관건은 처벌이 핵심이 아니라, 공개가 핵심이란 것. 누가 외국 정부의 돈을 받고 한국의 정치와 학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드러나는 것 자체가 강한 억지력이 된다.
그 너머에도 구멍은 여전히 많다. 당장 국내 대학과 연구기관의 해외 파트너십에서 자금 흐름을 점검하는 표준 체계가 없다. 군사 시설과 핵심 인프라 주변의 드론 단속, 기술 유출 수사 역량도 지금보다 정밀해져야 한다. 중국이 한국 기업과 시민을 안보를 이유로 제약한다면, 한국도 동등한 상호주의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유타주 사례가 보여주듯, 지방자치단체와 정치인이 '우호 교류'라는 명목 아래 포섭 대상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이 전술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 결정자는 가장 먼저 표적이 된다.
제임스타운 재단 보고서는 서구 4개국만을 다뤘다. 한국은 빠져 있다. 그러나 보고서가 묘사한 포섭의 패턴, 동원의 구조, 침투의 경로를 한국의 현실에 대입해 보면,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보고서의 결론부에 이런 문장이 있다. "더 심각하고 조율된 노력이 구체화되기 전까지,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은 서구 사회 안에서 계속 확장될 것이며, 민주주의 제도의 회복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한국도 그 문장 안에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이름이 불리지 않았을 뿐.
영향력 생태계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초대 한 번, 식사 한 번, 명예 직함 하나.
그렇게 조용히 쌓인다. 그리고 필요할 때 작동한다.
중국의 만만디(慢慢地) 전략.
지금 한국에서, 무엇이 쌓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