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해리 포터’ 매니아?

작은 소망, 더 큰 마법


북한 관영 매체들은 지난달 매우 흥미로운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김정은이 29일 러시아의 올가 류비모바 문화부 장관을 만나 대화하는 모습인데, 사진 속 공간이 중세 유럽의 도서관을 연상케 할 정도로 웅장합니다.


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9일 올가 류비모바 러시아 문화부 장관을 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접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보도했다..jpg


나선형 계단, 천장까지 닿은 책장, 묵직한 원탁… 얼핏 보면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오는 아일랜드의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Library of Trinity College Dublin) 내 롱룸을 떠올리게 됩니다.


The Library of Trinity College Dublin.jpg


이곳은 김정은의 집무실로 알려진 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 내부입니다. 건물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언제 내부를 이런 모습으로 개조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죠.


북한에도 ‘해리 포터’가?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해리 포터를 언급한 적은 없지만,

몇 가지 정황상 젊은 세대에게 이 시리즈는 꽤 익숙한 듯합니다.


과거 유튜브 채널에서 북한을 홍보했던 11살 소녀 ‘송아’는 자신을 해리 포터 팬이라 소개해 관심을 끌었죠.(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이 소녀가 과거 런던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함께 근무했던 임준혁의 딸이며, 북한 ‘혁명 1세대’ 리을설 조선인민군 원수의 외증손녀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Song A.jpg


또한 2017년부터 2년간 평양에 머물렀던 영국 외교관의 아내 린지 밀러는

북한 학생들이 자신에게 “해리 포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심지어 북한 문학매체인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기관지 ‘문학신문’은

2020년 6월 20일자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장편동화 '해리포터'에 대한 독자들 관심이 커가고 있다…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됐는데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 속에서도 인기도서가 되고 있다"


북한에서 이처럼 세계적인 콘텐츠가 공개적으로 언급되려면,

최고지도자의 직접적 승인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김정은은 해리 포터 세대


1984년생 김정은이 해리 포터 세대란 점도 그냥 지나치기 힘들것 같습니다. 김정은은 1984년생.

1997년, 그가 13살일 때 해리 포터 첫 소설이 나왔고 2001년, 그가 17살일 때 영화 1편이 개봉됐습니다. 스위스 유학 시절 그가 이 시리즈를 즐겼을 가능성은 충분하죠. (형 김정철은 에릭 클랩튼 광팬으로 알려져 있죠)


고풍 서재의 정치적 이미지


고풍적인 스타일의 도서관이나 서재는 김정은만의 취향은 아닙니다. 사담 후세인, 무아마르 카다피, 루마니아의 전 독재자 차우셰스쿠도 자신의 궁전이나 관저에 고전풍 서재를 두고

지적 권위와 통치 정당성을 과시하기도 했죠.


한국에선 최근 김지윤 박사가 자신의 유뷰브 방송에서 최태원 SK 회장을 인터뷰한 공간(SK 서린빌딩 내부)도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코엑스몰의 별마당 도서관도…)

김지은 SK.jpg


영화는 금지, 책은 가능?


북한 당국은 서방 영화를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에 ‘해리 포터’ 영화를 일반 학생들이 봤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인민대학습당 같은 곳에서 열람이 가능했을 수는 있습니다.


김정은이 혼자만 즐기지 말고, 북한의 다음 세대에게도 ‘해리 포터’ 영화를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작은 소망


물론 ‘반동사상문화보호법’과 ‘평양문화어보호법’ 등 3대 악법을 통해 한류와 서울 말씨까지 금지한 김정은이 이를 수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작은 소망을 가져 봅니다.


북한의 다음세대가 자유롭고 열린 세상을 마주하는 것.

그건 어쩌면, 해리 포터의 마법보다 더 간절한 희망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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