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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 Mar 15. 2024

자폐 형을 통해 깨달은 것

사람은 늙어서 비로소 어릴 적 그 상태로 되돌아간다.

나에겐 4살 위의 자폐 형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형에게 많은 이질감을 느꼈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고 종종 생각하곤 했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형의 모습 그리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동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형이 나에게 좋은 영향으로 다가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마음속 어딘가에 두려움을 안고 미워하며 했던 시절이 있다.


내 눈에 비친 형의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찾아온 위기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시작할 무렵, 나에게도 장애가 찾아왔다. 이름은 투렛증후군. 장애의 유형으로 의도치 않게 신체의 일부가 제멋대로 움직이거나(운동 틱 장애) 이상한 소리를 내는 (음성 장애) 현상이 혼합해서 나타나는 것.


그렇게 형에게서 이질감을 느끼고 미워했던 나는 그와 같은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봤고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행동들 속에서 심한 자책감과 혐오감을 느꼈다.


중학교 3학년부터 혼돈 속에 빠져 들었던 나


시간이 흘러서 나는 대학을 졸업한 청년으로 자랐고 지속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발병 당시에 비해 (다른 사람들이 나의 아픈 구석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고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큰 회의감을 느꼈다. 그 시간들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많이 방황했던 시간들에 대해 "나는 남들과는 너무 다른 거리를 걸었다"라고 자책할 때가 많았다.


이렇게 무너질 줄 알았던 나는 훗날 어떤 한 사건으로 인해 가치관에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계속된 방황 그리고 찾아온 기회


취업준비생이 된 나의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자존감이 무척 떨어져서 프로젝트 결과물이 있었음에도 회사 지원을 하지 않고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더 하려고 책을 찾아보곤 했다.


그러나 공부를 거듭할수록 부족한 점들이 더 보였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더 큰 결핍을 느끼며 소용돌이 속에 빠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삶에 조금씩 활기를 찾은 나는 입사지원서에 쓸 사진을 찍을 생각으로 '그동안 스스로 발을 들여 본 적이 없던' 사진관에 난생처음으로 홀로 발을 들이게 된다.


그때 처음 알게 된다. "밝게 웃는 그 모습이 사람의 이미지를 매우 크게 바꿔놓는다"는 것을.



통찰, 자신에게 던진 질문


사진관을 갔다 오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게 되고 내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 '내가 피해온 기억은 없었는지, 떠올리기 싫어서 일부러 묻어둔 존재는 없는 건지' 솔직하게 열어놓고 생각을 하게 된 것. 그렇게 떠올린 게 내가 숨기고 싶어 했던 존재, 형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모든 것을 내게 열어놓고 솔직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형이 아프게 태어난 것이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틱장애가 있는 나를 싫어하게 된 이유도 사실 잘 알고 있었으나 그동안 '그러한 생각을 해본 '를 끊임없이 회피하고 합리화하면서 형을 미워해온 자신과 마주 보게 된다.


렇게 현실에서 숨겨두고 싶었던 자신을 직면하면서 얻는 것"사람은 언젠가는 약해지기 마련이고 그들이 보이게 될 모습은 지금의 자 형의 것과 별 다를 게 없다"라는 통찰이었다.



(통찰을 얻는 과정에서)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요양원에 계셨던 외할머니를 찾아뵈었을 시절 주변 어르신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양원에서 생활하는 의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았고 마침내 찾게 된 것은 내게 어린아이로 비쳤던 형에 대한 기억이었다.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것과 보호자가 필요한 점, 그리고 이해 못 할 행동을 하는 것까지... "형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자신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만약 내가 계속해서 이렇게 형을 혐오하고 미워하면, 나중에 그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부모님에 대해서는 어찌할 것인가. 똑같이 미워하고 숨기고 싶은 존재로 여길 것인지, 아니면 지금 내 가치관을 바꿀 것인지 그건 네가 선택해라."



스스로 내린 결론


"사람은 나이가 들면 언젠가는 나약해지기 마련이고, 마치 어린애로 돌아간 듯한 시절을 맞이하게 되겠지. 그건 나 자신 또한 마찬가지야. '장애가 발병한 자신을 형과 같은 시선으로 대했던' 그 경험을 겪어본 나라면 잘 알지 않는가.. 지금 바뀌지 않으면 훗날 나약해진 자신을 또다시 형을 보는 것과 같은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걸..."


형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달리하면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타인을 어떻게 보냐'에 대한 관점과 가치관은 곧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타인을 보는 관점은 곧 '그와 같은' 자신에 대한 가치관이다.


나는 오늘도 자신에게 희망을 품어본다.


오랜 시간을 끝으로, 이제는 조금씩 가치관에 변화를 주고 있는 나에게 이런 희망을 갖곤 한다.


"앞으로도 형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을 달리할 수 있다면, 훗날 그와 같은 사람이 되어있을 가족들에게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힘을 잃었을 자신'에게도 보다 관대하고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나의 가치관은 180도 달라졌고, 지금은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한다. 나는 내가 살아온 길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기에 그 경험 속에서 다른 이들이 얻을 수 없는 통찰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애벌레에서 고치가 되고 하늘을 날 수 있는 나비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의 시련을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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