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Re:Classic 10화

푸른 눈의 지성의 영원한 제국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by In My Library


원제: KOREA and her Neighbours (1898.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작가: Isabella Bird Bishop (이자벨라 버드 비숍 1831-1904)


"1894년 겨울, 내가 막 한국(조선)으로 떠나려 할 때 관심을 가진 많은 친구들은 한국(조선)의 위치에 대해 과감한 추측들을 했다. 한국(조선)은 적도에 있다, 아니다 지중해에 있다, 아니 흑해에 있다..."




이 책은 영국인 비숍여사가 1894-1897년 3년 동안 4차례에 걸쳐 한국, 즉 과거의 조선을 방문한 여행기이다. 단순한 여행기 이상으로, 지리학자였던 그녀의 통찰을 통해 과거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제도, 문화 전반에 대한 상황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책 제목에 '이웃나라들'이 붙은 것처럼, 비숍 여사는 조선에 머무는 동안 조선 뿐 아니라, 일본, 중국(만주),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등을 함께 여행하며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의 역학 관계를 함께 분석했다.


KakaoTalk_20260127_131703776.jpg [출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저녁 8시경이 되면 대종이 울리는데 이것은 남자들에게 귀가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며 여자들에게는 외출하여 산책을 즐기며 친지들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거리에서 남자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이 제도는 때로 폐지된 일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꼭 사고가 발생했으며 그로 말미암아 폐지되었다던 제도가 더욱 강력하게 시행되었다고들 한다.



내가 보는 한국인은 여행을 좋아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인에겐 힐링 1번지다. 그러자, 문득 궁금해졌다. 외국 사람이 본 한국은 어땠을까? 요즘에야 K-컬처가 전성시대를 맞으며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혹시 과거에도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을 찾았던 외국인이 있을까?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이 책을 찾게 되었다.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하더라

일단 내가 이 책을 너무나 재밌게 읽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럼에도 나의 총평이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하더라’라인 것은, 그녀가 봤던 당시 조선 사회의 모습, 조선인들의 장단점, 그리고 자연환경과 산수풍경에 대한 평가, 그 무엇하나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130여 년 전 그녀가 느꼈던 ‘그곳’의 모습이 2026년 지금의 우리 과 겪고 있는 ‘이곳’과 너무나 비슷하다. 놀라운 통찰력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녀가 조선을 방문했던 1890년대, 조선은 무너져가는 국운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지는 해’의 나라였다. 반면,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전성기로 접어들며 세계 영토의 1/4을 정복하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다. 영국인은 당시 지식과 탐험을 찾아 나서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그녀도 조선이라는 나라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발견을 하나 더 부친다면, 아마도 여왕이 지배하는 나라 영국에서 자랐고, 스스로도 앞서가는 신여성이었기에 당시 조선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여자’라는 사실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녀가 을미사변에 대해 적어 놓은 글을 보면, 명성왕후에 대한 강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여행 내내 그녀가 눈을 떼지 못했던 빨래하던 조선의 여자들을 보고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이라는 그녀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성의 교육과 사회참여가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이미 빨래를 하고 물을 긷는 하층계급의 여인들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이들 중의 대부분은 가정의 노예이며, 한국에서는 여성들 모두가 최하층계급의 일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강렬한 시각적 대비 지저분한 서울 VS 찬란한 금강산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면 당시 서울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드러난다. 비위생적인 주거환경, 가난한 사람들 하지만 유달리 깨끗한 흰색을 사랑하는 민족. 그녀는 서울에 대해 ‘멀리서 보아야 예쁘다’라고 평가할 만큼 당시 수도 서울의 모습이 모습이 우울했던 것 같다. 하지만, 금강산에 대해 지구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 풍경에 완전히 매료된다.


부패한 관리와 부지런한 민족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야기다. 청일전쟁, 을미사변 등 격변의 역사 현장에서부터 양반층을 ‘면허받은 흡혈귀’라고 칭하며 피어나지 못한 민중의 잠재력을 안타까워하는 그녀의 연민까지 가감 없이 묘사되어 있다.


그녀는 당시 조선이 가난하고 정체되어 버린 이유를 ‘사람’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바라보았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관찰력에 놀란 것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을 다 비슷하게 생긴 걸로 생각했지만, 그녀는 ‘조선인은 잘생겼다.’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나는 이건 골격상 근거 있는 사실이라고 믿는 1인이다. 전반적으로 한국인의 체격은 타 동양인들에 비해 크며, 이목구비가 또렷한 편이다.


조선인은 이해력이 빠르고 대단히 총명하다. 그들은 외국어를 배우는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며, 지적인 잠재력이 엄청나다.



KakaoTalk_20260127_131112620.jpg 한양 (서울)의 잡화상 [출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이 책은 깨알 같은 글자로 500페이지가 넘는 소위 요새 말하는 ‘벽돌책’이다. 하지만 전혀 막힘없이 재밌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번역’에 있었다. 내 인생에서 번역가 이름을 다시 찾아보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인화 작가이다. 운이 좋아 영어와 프랑스어를 이해하는 나는 통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많은 책들이 ‘참을 수 없는 번역의 무거움’으로 읽는 이를 심란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의 글은 명료하고, 정확하며 심지어 부드럽기까지 하다. 읽으면서 절로 ‘아니, 누가 번역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숍 여사의 날카로운 관찰이 만들어 놓은 ‘원석’을 이인화 작가는 놀라운 ‘세공’ 기술로 시대의 여행기를 문학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영원한 제국]을 집필했던 그의 지식과 필력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라는 푸른 눈의 외국인과 이인화라는 당대의 천재 작가가 만난 이 여행기는, 단순한 기록물을 넘어 우리 역사의 가장 아팠던 순간을 복원해 낸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 하지만 이토록 유려한 문장으로 조선의 숨결을 전하던 책이 현재는 절판되어 더 이상 서점에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개인적으로 유감을 표한다.


이인화 작가의 정치적 부침을 뒤로하고 오직 텍스트가 주는 그 압도적인 감동에만 집중해 본다면, 이 책은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마주할 가치가 있는 '영원한 고전'임에 틀림없다. 비록 종이책은 멈췄을지언정, 그 문장들이 깨운 우리 민족의 잠재력과 풍경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지금 이곳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130년 전 이땅을 다녀간 푸른 눈의 영국인에게 감사를 표한다. 흥미로운 시간 여행이었다.

*1896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조선은 파산했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된다.



한국에서 거의 1년을 보내면서, 그동안 그 국민을 나의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비록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여러 세기에 걸친 불이익을 당했지만,
또 1897년의 뚜렷하게 퇴보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코 그들의 장래를 절망하지 않는다.




KakaoTalk_20260127_131741850.jpg


이자벨라 버드 비숍 (1831-1904)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 (RGS, 1892)이자, 세계적인 여행가이며 작가이다. 평소 척추 질환과 우울증으로 영국 집에서는 누워 지내야 할 만큼 병약했지만, 일단 여행을 시작하면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를 나귀나 말을 타고 이동하는 강철 같은 체력을 보여줬다고 한다. 당시에는 특이했던 만혼으로 50세가 되던 해에 주치의였던 존 비숍 박사와 결혼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여동생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고,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여행을 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 조선을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