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Nils Holgerssons underbara resa genom Sverige (닐스의 신기한 여행 1부 1906, 2부 1907)
작가 : Selma Lagerlöf (셀마 뢰거뢰프 1858 – 1940)
어린 시절 일요일 눈만 뜨면 켰던 TV.
KBS에서 한동안 방영(1981-1982)했던 ‘닐스의 모험’을 기억한다.
제목에서 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모험이 있고, 소년의 성장이 있으며, 자연과 동물, 그리고 용기와 희망이라는 덕목을 갖춘 의미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다. 한 마디로 요즘 내가 사랑하는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너무나 건전하고 도덕적인 애니메이션이다.
스웨덴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년 닐스는 게으르고 버릇없는 아이로, 늘 누군가를 괴롭히고 장난칠 생각만 하는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 물려주신 궤짝 속에 숨어있던 요정을 괴롭히다가 몸이 조그마한 요정만큼 작아지는 벌을 받게 된다. 작아진 닐스는 동물들과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고, 자신이 괴롭히던 집 거위 모르텐과 함께 야생 거위 떼와 함께 북쪽으로 날아가는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길고 험난한 여정 속에서 닐스는 위험에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늪지대에 뛰어들기도 하고, 사냥꾼들에게 쫓기는 거위들을 구해내기도 한다. 특히 거위 떼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잡아먹으려는 여우 스미레와 여러 차례 대결하면서 용기와 지혜를 발휘한다.
스웨덴의 남쪽에서부터 북쪽 끝까지 거위를 따라 여행하면서 닐스는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도시, 사람들의 삶과 전설들을 배우고, 조금씩 성장하며 사려 깊은 아이로 변해 간다. 긴 여행을 끝내고 거위 떼와 함께 다시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온 닐스는 더 이상 게으르고 심술궂은 아이가 아니라, 용기 있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소년으로 성장해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도 사랑받게 된다. 모험을 통해 그는 자연과 생명을 아끼는 마음을 배우고, 자신이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닐스의 신기한 여행은 '동화책'이다.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는 이 동화책은 알고 보면 엄청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닐스의 신비한 모험은 작가에게 최초의 여성 노벨 문학상의 영광(1909)을 안겨 주었고, 루드야드 키플링 (Rudyard Kipling)의 ‘정글북’과 더불어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쓰였지만, 어른들에게 더욱 사랑받았던 문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참고로 키플링 또한 문학에 대한 공헌과 ‘정글북’으로 190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게 정말 동화책일까라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주인공이 어린이라는 사실 빼고는 어린이가 보기엔 때때로 난해하기도 하며 다소 무서운 장면을 상상하게 하기도 한다. 아니면 그저 어린이는 건강하며 해맑게 자라야 한다는 낡은 패러다임 속에 내가 여전히 갇혀 있기 때문일까?
단순한 서사, 이것은 어린이 책이니까 그렇다 쳐도, 어딘가 엉성한 이야기 속 인과관계와 긴장감 없는 느슨한 구조, 결코 노벨상을 탈 만큼 깊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의 기원과 작가가 살아온 이야기를 알게 되는 순간 이 책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진정한 유산, 동화와 전설의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전설을 먹고 자라 풍부한 상상력에 사랑을 더한 영혼만이,
환상을 보는 사람이 항상 보이는 세계 옆,
아니 오히려 그 아래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비밀을 감히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시상식 연설문(1909) 중에서-
‘닐스의 이상한 여행’은 작가가 스웨덴 교육계의 의뢰를 받아 쓴 작품이다.
당시 교육계가 요구한 것은,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으면서도 교과서로 활용될 수 있고, 스웨덴의 지리와 자연환경, 풍습, 역사까지 한눈에 담아 쉽게 배울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책의 목적을 알고 나니, 그동안 이 동화책이 얼마나 충실하게 제 역할을 다해 왔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요구를 기러기들의 긴 여행 속에 녹여낸 작가의 탁월함에 새삼 놀라게 되었다.
이 책은 스웨덴의 인문적, 지리적 환경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휴머니즘에 대해서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동화 속 주인공 닐스가 여행을 통해 배우는 것은 단순히 착한 아이로 자라는 것 이상이다. 그는 그가 직면한 어려움과 모험 속에서 점점 더 독립적이고, 지혜롭고, 강인한 아이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북유럽의 아름답지만 차갑고 척박한 자연을 생각해 보면, 닐스의 성장은 스웨덴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린이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저 순수함보다는 책임감과 용기, 그리고 긴 여정을 끝까지 견디며 나아가는 끈기와 인내가 중요한 덕목으로 그려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작가가 현실적이고도 생생한 ‘생명’을 서사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가 느껴졌다.
'아니, 이건 좀 애들한테 잔인해 보일 수 있지 않나?'
'애들이 이런 걸 이해한다고?
나의 이 많은 생각들은 나의 오만이자 '어린다'는 개념에 대한 지독한 선입관일 뿐일 수도 있겠다. 크면 알게 되어 있다라는 말을 종종 듣고 자란 우리들의 세대. 지금의 시대에 부합되는 합리적인 교육은 진정 어떤 것인가를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작가인 셀마 오틸리아나 로비사 라겔뢰프가 태어난 스웨덴 베름란드 지방은 풍부한 자연과 전설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군인이었으며, 어머니는 광산주의 딸로 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보인다.
셀마는 어린 시절 고관절 질환과 다리 마비로 고생했지만, 외가의 넉넉한 재력 덕에 어머니는 그녀의 교육에 정성을 다할 수 있었다. 스톡홀름의 여성 교원 양성 학교에서 수학한 뒤에는 스웨덴어와 문학 교사로 10년 넘게 근무했고, 1891년 고향 베름란드를 배경으로 쓴 ‘예스타 베를링의 사가’를 발표하며 단번에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상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였던 그녀는 언제나 인간의 선함과 가능성을 믿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유대인들의 피난을 돕고 평화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마음의 병을 얻었고, 결국 1940년 고향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이책의 목적과 작가가 자라났던 환경을 생각하면 '닐스의 이상한 여행'이라는 이 책이 가지는 진정한 의의와 풍부한 감성에 절도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을 보면서 사실 끝까지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던, 중년의 어른인 나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두 가지 대사가 있었는데, 바로 신비한 기러기 떼의 대장이었던 ‘아카’의 명언이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읽고 나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를 기대하며, 어쨌거나 내 나름의 해석을 해 보고자 한다.
천천히 나는 것보다 빨리 나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해 주게나.
높이 나는 게 낮게 나는 것보다 훨씬 쉽다고 말해 주게나.
비행의 관점에서 보면 빨리 날아야 공기의 흐름을 타기가 쉽다고 한다. 공기의 흐름을 타야 힘을 적게 들이고 더 멀리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높이 날아야 장애물들의 방해가 적다. 아마도 ‘아카’ 대장은 나는 것이 처음인 거위 모르텐과 닐스에게 용기를 내고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빨리 난다는 것은 아마 전력 즉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의미할 것이고, 높이 난다는 것은 떨어짐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용기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의 원본은 2권이며 생각보다 길다.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정말 추천하고 싶다. 정말 웃긴 건 수십년이 되어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이런 모험이 있다면 여전히 한 번은 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 철 들길 싫은 어른에게도 추천해본다!
셀마 뢰거뢰프 (1858-1940) 1858년 스웨덴 베름란드에서 태어났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작가(1909), 스웨덴 아카데미 최초의 여성회원 (1914)으로 스웨덴의 국민 작가이다. <예스타 베를링의 이야기>로 데뷔하였으며, <닐스의 이상한 여행>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북유럽의 민속과 전설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였으며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메시지를 중시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보이지 않는 굴레>, <늪의 집 딸>, <반 그리스도적 기적>, <예루살렘>, <지주의 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