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Siddhartha: Eine Indische Dichtung (싯다르타 인도의 이야기 1922)
Die morgenlandfahrt-Eine Erzählung (동방순례 1932)
작가 Herman Hesse (헤르만 헤세 1877-1962)
2500여 년 전 인도의 고타마 싯다르타는 삶의 고통을 알기 위해 사유했고, 약 2350년 후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고통스러운 자신의 삶의 원인을 찾기 위해 방황했다. 그의 책은 그가 살아보고 부딪히며 얻은 처절한 깨달음이며 진리를 향한 긴 순례이자 영혼의 기록이다.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문제를 만나 낑낑대고 있는 나에게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와 동방순례는 묘한 기대를 가지게 했다.
'혹시, 그 안에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답이 있지는 않을까?'
우연한 행운을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아쉽게도 내가 기대하던 그런 답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답을 찾을 것인가, 무엇을 해 나갈 것인가를 배우기에는 충분한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싯다르타’에서 작가는 부처의 속명인 고타마 싯다르타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던 한 남자의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이름에서 추측이 되듯이 불교와 힌두교 사상이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다.
반면 ‘동방순례’는 도(道)라는 궁극의 진리를 찾아 동쪽으로 떠나는 순례단의 여행 이야기이며 눈치챘겠지만 이 책은 중국 ‘도교’로부터 사상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래된 고전 속에서 이처럼 대 놓고 서양의 작가가 동양의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헤세는 왜 자신의 삶과 반대편에 존재하는 세계를 그토록 동경했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계속 ‘동(東)’으로 향하게 했을까?
그의 영혼의 여정에는 3가지 공통된 테마가 등장한다.
멀리 여행하는 자는 종종 사물들을 보게 되나니, 그가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거리가 먼 것 들이다.
-동방순례 중-
사람들은 인생을 종종 ‘여행’에 비유한다. 여행과 삶이 그만큼 닮아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시작과 끝이 있다. 그리고 과정을 이루는 스토리 또한 존재한다. 미지의 존재와의 만남! 여행이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이며, 우리의 삶 또한 알고보면 끊임없는 의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여행의 경이로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자신이 직접 길을 나서야만 한다. 마치 나의 인생을 다른 사람이 살아 줄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삶을 내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싯다르타’에서 우리의 주인공 싯다르타는 지고지순한 진리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한다.
인도 최고의 사회계급인 브라만의 아들도 태어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아 스스로 길을 나서고 만다. 수행자에서 사업가로 아버지로 그리고 다시 수행의 길을 거쳐 마침내 한 인간으로서의 깨달음에 결국 이르게 된다.
‘동방순례’에서 HH는 다른 이들과 함께 ‘진리’가 있다고 믿어지는 동쪽의 이상향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난다. 진리에 다다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여정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각자의 인생의 목적을 위해 그들 만의 길을 떠났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닌 그들 스스로 길을 걸었다는 것이 중요하며, 헤세는 이러한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해세는 많은 작품 속에서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섬세한 서사와 인물들의 결연한 다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삶’이란 결국 하나의 ‘과정’이며, 이 삶의 과정이야 말로 인생의 진정한 주제라는 것을 헤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과정’의 중요성…
요즘 시대에는 꽤 답답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과정은 시간, 땀 그리고 일련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결정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결과’ 앞에서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다. 우리는 많은 경우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보고 가치를 판단한다. ‘과정’만으로 세상의 인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 이제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결과’에 집착하는 것이야 말로 다다를 수 없는 동방의 이상향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그 숨 가쁜 여행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때, 우리가 이미 그곳을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헤세에게 있어 여행이란 이 모든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한 이 과정은 곧 ‘삶’이었다.
지혜는 알려줄 수 없다. 현명한 이가 지혜를 알려주려 하여도
다른 사람에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지식은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지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혜를 찾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강해지기도 하며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지혜를 말로 설명하거나 다른 이에게 가르쳐 줄 수는 없다.
-싯다르타 중-
나는 스승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주저하던 순간들, 두려움에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들, 세상에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지극히 외로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게 길을 보여주고 누군가는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누군가는 친절을 베풀었다.
살다 보면 정말이지 고통의 순간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주는 그런 존재들이 종종 나타나곤 한다. 삶이 우리에게 주는 큰 선물이다.
이처럼 헤세의 여행길에는 어김없이 안내자가 등장했다. 그는 스승이자 친구이자 주인공을 진리로 이끄는 주요 인물이다.
‘싯다르타’는 부처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를 만나게 된다. 그를 스승으로 섬겨 단순히 귀의하면 끝났을 것을 그들의 만남은 오히려 싯다르타를 진정한 깨달음의 여정으로 이끄는 운명적인 계기가 된다.
부처의 미소는 그에게 스승이었고 부처와 나누었던 대화는 그의 수행길의 친구였으며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존재 자체는 그의 깨달음에 있어 큰 표지판과 같은 역할을 했다.
‘동방순례’에서는 레오가 등장한다. 레오는 ‘봉사’라는 가치를 알려준 스승이자 순례단을 도와주던 하인 즉 충실한 친구였으며 그의 실체는 동방순례를 안내하는 결사대의 리더였다.
부처와 레오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 삶의 여정을 알려주는 안내자를 상징한다.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안내자의 모습을, 그리고 작가 자신의 고뇌를 통해 말해주고 싶었던 인생의 진실을 그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려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그 길을 발견하려면 결국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수레바퀴 아래서 by 헤르만 헤세-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늘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궁극의 진리를 갈망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진리를 찾는 데에 실패하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 헤세의 소설은 비극 희극으로 딱 잘라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소설의 형식을 빌린 철학서에 가깝다게 나의 의견이다.
헤세는 1877년 독일 칼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외조부는 루터교의 선교사로서 일찍이 인도에서 활동했다. 따라서 그가 동양의 문화에 상당히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가족적인 배경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다만 그의 예민한 감수성에 비해 집안의 분위기는 너무나 엄격했고 기독교식 규범이 강요되었다.
학교와 가정생활 모두 적응이 힘들었던 헤세는 상당히 반항적이고 거친 아이로 자라났으며 그 트라우마로 인해 12살에 가출과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의 젊은 시절은 ‘고통’ 그 자체였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그 길을 알기 위해 그는 글을 썼을 것이고 그의 진실된 사유의 결과로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유리알 유희’ 등의 명작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답’. 정말 그 옛날 부처의 ‘동기’와 꽤 닮아 있지 않는가. 다른 것이 있다면 부처는 보다 ‘인간’ 자체에 중심을 뒀다면 헤세는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려 했다는 것. 하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들의 고통에도 깊은 공감을 이루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성장배경과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가 왜 불교와 명상 그리고 도교 등 동양의 종교에 깊게 빠져들 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싯다르타’에서도 ‘동방순례’에서도 주인공의 영혼은 답을 찾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났지만 그가 얻은 진리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진리는 설명할 수 없고 다만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 그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했지만, 더 이상 도달하려 애쓰지 않게 되었고, 그리고 마침내 그 속에서 평화를 얻었다.
우리 또한 각자의 삶의 여정 속에서 늘 ‘답’을 찾아 헤매고 있다. 잊을 만하면 새롭게 던져지는 인생의 숙제 속에서 ‘답’을 고민하다 보면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고 만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종종 포기하지 못하고 매달리게 된다. 답을 찾아 헤매는 한 평온은 얻을 수 없다.
헤세가 이끌고 있는 두 여행은 모험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길 위의 여행이 아니라 영혼의 성찰을 위한 마음속으로 이어진 길이다. 우리는 그 곳에서 자신의 삶과 만나게 되고 그 삶이야 말로 이 여행의 진정한 목적지임을 깨닫게 된다.
삶의 목적은 답을 찾는 것에 있지 않다.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 것, 그 여정이 바로 진정한 삶의 목적이며 자신이 이루어야 할 가치이다.
-In My Library-
헤르만 헤세(1877~1962)는 독일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인간의 내적 성장과 자아 탐구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대표작으로는 《데미안》,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이 있으며, 동양 사상과 서양 사유를 융합한 문학세계를 보여줬다. 그의 청년기는 방황가 예술가로서의 고뇌를 솔직히 담아내어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그의 문학적 업적을 인정 받았다. 헤세의 작품은 지금도 자아 찾기와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