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Re:Classic 03화

고독한 지식인의 팟캐스트 '지하로부터의 수기'

by In My Library

원제 : 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ья (Notes from Underground), 지하로부터의 수기, 1864년작

지은이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evsky, 1821–1881)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지 않은 자는 인간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카뮈 (Albert Camus 1913~1960)-


카뮈의 말처럼,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고전을 읽는 다면 반드시 한 번쯤은 읽어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이 책을 읽으려다 포기한 적이 있다. 시작부터 쏟아져 나오는 작가의 독백을 그때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상대가 듣거나 말거나 관심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극 중 주인공은 요즘같은 팟 캐스트가 있었다면, 정말 할 말이 많았을텐데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마음이 울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어떤 신호일까? 아마도 삶이 마냥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의미가 아닐까…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다른 대작들과 달리 장편은 아니지만, 작가의 인생에 있어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다. 재능 있는 젊은 작가에서 러시아의 대문호로 성장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작점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전반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무서운 필력을 실감하게 한다.


이 책을 읽는 좋은 방법을 추천하자면, 전반부를 우선 그냥 한 번 읽고 후반부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은 다음 다시 전반부를 읽는 것이다. 그러면 작가의 독백에 보다 마음이 울컥하는 나름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쏟아지는 그의 말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 감정만은 완벽한 이해 없이도 생생히 전달된다. 자신의 이상과 무력한 현실 속에서 갈등하는 한 지식인의 심리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으로 대문호의 명성을 얻은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고전 문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작가이다.

그들은 모두 ‘인간과 삶’이라는 큰 주제를 품었다고 나는 보는데, 그 차이를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톨스토이의 작품은 웜 톤 (Warm Tone)이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지극히 쿨 톤(Cool Tone)이라는 할 수 있겠다. 아마 그들의 성장배경에서 오는 차이가 이 같은 작품상의 온도차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가정해 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혹독한 삶 속에서 신의 존재를 절망적으로 찾고 있다면, 톨스토이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드러나는 신의 질서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무력함

설사 내가 고결한 체 하지 않고 나의 모욕자에게 복수하려 마음먹었다 해도 결국 아무한테도 복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설사 내 힘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결국은 아무것도 단행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가 활동하던 19세기의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문학적으로 그리고 사상적으로도 격변의 시기였다. 주류를 이루던 낭만주의의 사조위로 사회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사실주의가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이는 후에 보다 급진적인 혁명운동으로 바뀌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회주의 독서 클럽인 '페트라셰프스키 서클'에서 당시 금서였던 벨린스키의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고 사형을 선고받은 후 극적으로 사면된 이야기, 징역을 살고 시베리아로 유배를 간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아마도 죽음의 목전에서 ‘삶’의 무게를 제대로 느꼈던 그는 익히 알려진대로 신을 부정하던 사회주의와 계몽주의에 대해 지극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그는 인간이라는 ‘합리적이지 않은’ 존재에게 강요되는 계몽주의의 ‘이성’과 사회주의의 체제에 대해 비판하고 있지만, 동시에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 또한 받아들이고 있다.


당시 봉건 계급을 부정하던 사회주의 운동에서 내세우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은 소위 한 번도 겪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전혀 다른 세계였을 것이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변할 때 사회는 필연적으로 불안과 동요로 가득 차게 된다, 마치 예상보다 빠른 AI시대의 도래를 두려워하는 지금의 우리들처럼 말이다.

시대의 변화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 아무리 비판을 하고 공격한다고 한들 그저 허공 속으로 퍼져가는 울림일 뿐, 한 명의 인간이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나약하고, 처참하며 살기 위해 비겁하다. 그것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순리에 따르는 삶의 진실이다.


우리의 모순

거기 간다는 것이 미련하고 부질없는 짓이라고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기를 쓰고 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두 개의 상반된 감정 속에서 늘 후회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존재이다. 자신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자기파괴사이를 계속해서 오간다.

사랑을 기대하는 상대에게 모욕과 분노의 언사를 쏟아내고, 사회 속의 일원이고 싶어 하면서도 함께 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 같은 모순된 행위 속에서, 상대방의 상처받은 모습에서 우월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자위한다. 자신이 혼자인 이유는 그가 이상하거나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라 우월하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외롭다는 사실을 끝도 없이 부정한다.


후반부는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들과의 관계에 대한 심리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무척 흥미롭다. 심지어 가끔은 ‘맞아 맞아, 저런 사람들 있지’라며 누군가의 얼굴마저 떠올리게 한다. 친구들을 공격하고, 동료들을 무시하며 자발적인 왕따가 되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 분노하며 정작 행하지도 못할 복수를 머릿속으로 열망한다. 작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역설을 이처럼 주인공을 통해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사실 사회로부터 간절하게 받아들여지길 원하고 있었다. 외면당하는 지하의 인간이 아닌 평범한 사회 속 일원으로서 말이다. 자신의 모순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는 늘 혼자였으며 진정으로 고독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따금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변덕을 부리는 걸까? 대체 무엇이 소원일까? 자기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지하’는 그에게 있어 완벽한 은신처이다. 타인들로부터 비난받지 않을 안전한 장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의 장소. 온전하게 자신만을 위하는 자유로운 곳. 그 어둠 속에서 주인공은 비겁하게 숨어 끊임없이 불만을 이야기 할 뿐이다. 하지만 현실과 대면할 용기는 없다.


우리의 구원

1821년 11월 11일, 모스크바 빈민병원 안의 병원 숙소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군인이었으며,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언어폭력 그리고 강압적인 태도와 온화하며 종교적인 품성의 어머니 사이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복합적이고도 이중적인 내면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1857년 그의 첫 번째 아내였던 마리야를 만났지만, 그들의 삶은 불행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즈음하여 그의 지병이었던 간질 발작이 시작되었고, 힘들게 복귀한 문단에서 잡지는 폐간되었으며, 파산은 그를 가난과 도박중독이라는 잔인한 운명으로 몰아넣었다.


기록에 의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20번에 걸쳐 이사를 하였는데, 모두 모퉁이에 위치한 집이었다고 한다. 모든 길이 교차하는 그 장소, 그의 소설 ‘죄와 벌’에서 처럼 그는 평생을 구원의 탈출구를 찾아 실제 헤맸던 것으로 보인다. 가난과 질병 그리고 속죄와 구원,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실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많이 닮아 있다. 첫 번째 아내의 죽음 이후에 안나라는 여자를 만나 재혼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그의 출판일부터 도박중독치료까지 모든 것을 도맡아 처리하는 헌신적인 여인이었다, 마치 소설 속 ‘소냐’처럼 말이다.


그에게 있어 삶의 구원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그가 찾은 구원은 사랑이었을까? 신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의 소설 속 찌들고 중독된 삶은 한 인간의 사랑과 희생을 통해 늘 구원받는다. 그리고 그 인간은 언제나 여인이며 왠지 ‘성모’를 닮아 있다. 결국 진정한 사랑만이 인간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유일한 구원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던 것일까? 그는 위대한 예술가이며 철학자였지만, 스스로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이 시대의 우리 또한 늘 구원을 기다린다. 누군가는 나를 도와주기를… 누군가는 나를 알아주기를… 누군가는 나를 사랑해 주기를…

우리는 타인을 통해서 위로 받고 그들을 통해서 신과 만난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삶의 무게’에 대해 겸허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꿈꿨던 삶은 너무나 이상적이었기에 오히려 커다란 고뇌와 고통으로 다가왔다.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고 죽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에게 이상적인 선택지는 없다. 작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대들의 영혼의 구원은 무엇인가?’

나는 짓궂은 인간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결국은 아무것도 되지 못한 인간이다. 악인도 될 수 없었고, 선인도, 비열한도, 정직한 인간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 없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中-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1821~1881)
러시아 제국의 소설가이며, 세계 문학사에서도 손꼽히는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문학의 양대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인간의 심연을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인간의 실존을 고민한 철학자였으며 실존주의 문학의 시조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가난한 사람들’ (1846), ‘죽음의 집의 기록’ (1862), ‘지하로부터의 수기’ (1864), ‘죄와 벌’ (1866), ‘백치’ (1869), ‘악령’(1872),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880~1881) 등 대작들을 남겼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학생들이 모여 애도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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