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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600~ '삼총사 그리고 20년 후'

by In My Library

원제 Les Trois Mousquetaires (삼총사)

Vingt Ans après (20년 후)

작가 : Alexandre Dumas (1802-1870)


바로 그날 다르타냥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세 가지 선물, 즉 앞에서 말한 대로 은화 15 에퀴와 말과 트레빌 씨에게 전할 편지를 가지고 길을 떠났다. 아버지의 충고도 마음에 새기고서 말이다.


장르서사의 시조새 '삼총사 3부작'

과거의 문화가 시간과 지역을 넘어 사회의 통념으로까지 자리 잡는 경우가 있다. ‘삼총사’라는 단어 또한 그러하다. 삼총사란 3명의 사람이 모인 단체를 가리키지만, 이미 그 안에는 ‘우정’과 ‘모험’이라는 보이지 않는 필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숱하게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어 왔으며, 이 소설의 콘셉트는 각색되어 시리즈로 그리고 영화로 재탄생되어 왔다. 따라서 작품의 명성에 대해서는 달리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상당히 대중적인 소설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시대의 이야기꾼이었던 뒤마의 삼총사 3부작을 완전히 읽는 다면 당신도 의견을 달리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변화의 과정을 통해 인간의 갈등과 성장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충분히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거 고전의 명작 중 ‘인물’의 테마로 ‘삼총사’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삼총사는 총 3부작으로 신문에 연재된 소설로서 (1884~1850, Le Siècle) 사실 그 분량이 방대하다. 시골청년 다르타냥이 파리에 올라와서 총사대의 삼총사를 만나고 모험을 통해 성장, 근위대원이 되는 이야기가 1부(삼총사 : Les Trois Mousquetaires), 20년 후 루이 13세에서 루이 14세로의 왕위 교체 과정에서 일어난 내란( La Fronde : 라 프롱드)을 배경으로 삼총사의 선택과 흩어짐을 이야기하는 2부(20년 후 : Vingt Ans Vingt Ans après) , 그리고 3 총사의 다음 세대인 아토스의 양자이자 다르타냥의 제자인 라울의 이야기가 3부(브라질론 자작 : Le Vicomte de Bragelonne)이다.


3부작 중 실제적으로 삼총사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1부인 ‘삼총사’와 2부인 ‘20년 후’이며 ‘철가면’으로 알려져 있는 뒤마의 또 다른 소설이 바로 마지막 3부의 클라이맥스에 해당된다. 한 마디로 한 시대를 아우르는 역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삼총사.jpg (좌)로부터 알렉상드르 뒤마 '삼총사'와 '20년 후'의 출판 포스터 [출처] 위키페디아 프랑스

뒤마의 삼총사 3부작은 현대의 웹소설류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앞서 밝혔듯이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이었으며(마치 요즘 N시리즈나 카카오페이지처럼), 명확한 세계관이 존재하고( 17C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 먼치킨 같은 주인공과 그에 대적하는 반세계적 인물이 등장하며, 모험과 복수, 사랑과 배신 그리고 우연한 행운 등 현대의 웹소설의 서사상에서 꼭 필요한 전형적인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다.


뒤마, 상상을 현실로 만들다

뒤마는 백인귀족과 아프리카 노예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다. 그의 아버지는 나폴레옹 당시 무훈을 세운 장군이었나 후에 몰락했다. 그는 파리에서 극작가로 먼저 성공을 거두었고, ‘삼총사’의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연히 발견한 ‘다르타냥 회고록’을 통해 작품의 모티브를 얻게 된다.


실제 삼총사 3부작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외에도 몽테크리스토 백작 그리고 400편에 달하는 작품을 쓴 다작 작가로서 엄청난 부를 축척했었다. 천성이 사치스러웠던 뒤마는 실제 ‘몽테크리토성’을 축조하기도 했다. 19세기판 디즈니랜드 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뒤마의 작품을 보면 마치 어린 시절 삼촌이 해주는 재밌는 옛날이야기가 생각난다. 마치 실제 듣는 듯한 느낌의 생생한 묘사와 대화를 통해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뛰어난 그의 언어감각은 지금까지 그의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데에 큰 기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 변한다, 그렇기에 소중하다


"손을 내밀고 맹세해!" 아토스와 아라미스가 동시에 외쳤다. 그들의 행동 앞에 무너진 포르토스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손을 내밀었고, 네 친구는 동시에 다르타냥이 선언한 구호를 외쳤다.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One for All, All for One)" -삼총사 중에서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우정은 신이 없는 종교라고 한다. 그만큼 그 속에는 깊은 믿음과 애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릴 때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가, 피보다 진한 우정의 이야기를… 인간의 가장 순수할 수 있는 감정 중 하나가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완성되기까지 큰 영향을 준 것이 있다고 한다면, 가족을 제외하고는 ‘친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함께 하고 싸우고, 말도 안 되는 고민을 들어주고 서로의 이상을 지지하던… 고백의 쓰라린 패배를 맛본 후, 늦은 밤 술집에서 같이 취해 주던 사람도 가족이 아닌 친구였고, 첫 직장에서 만난 진상 상사의 욕도 친구가 같이 해 주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의 인생이 순탄하기를 진심으로 빌어주던 이도 ‘친구’밖에 없었다.


진실된 마음은 언제 어디서든 단지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되어 준다. 그러나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더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은 그런 순간이 존재했다는 것, 그 자체가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큰 행운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잠시의 위로로 다시 힘을 내는 그런 존재들이다. 진정으로 사랑받고 지지받았다는 기억은 때때로 거친 삶의 현장에서 비록 짧더라도 달콤한 휴식이 되어 줄 수 있다.


"이보게들, 이번 일은 중요하다네. 마치 심장이 여기저기 뚫리는 것처럼 고통스럽구먼.
그렇지, 우리는 한때 자유로운 인간들이었지만 이제는 갈라서야 할 때가 되었네. 아마도 서로 원하는 조건이 있겠지. 가장 중요한 의견을 말해 보세나." -20년 후 중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것 중 하나가 친구와 나누었던 우정, 그리고 지금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군가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가 믿는 '정의'… 결국 이러한 기대가 헛되고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을 세상을 통해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면, ‘책’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영원할 것 같았던 4명의 친구의 믿음과 사랑도 종국에 막이 내린다. 심지어 마지막 3부에서 보면 사실상 거의 파국으로 치닫는다. 젊은 시절의 순간보다 현재의 순간이 더 소중해졌고, 우정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는 ‘신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함께 공유했던 세계관은 점점 변색되고 쪼개어져서 새로운 세계관들이 탄생하고 이제 인생의 주인공들은 각자가 속한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세계의 벽은 점점 두꺼워지고 높아지며 종국에는 그 속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조금 씁쓸하게 느껴지지만 과거의 내가 그랬고 지금의 나 또한 나의 세계 속에서 벽을 쌓아가고 있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진실했던 순간도 변질되기 마련이고 그 시간과 함께 우리는 그래서 점점 더 외로워진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며, 어떠한 감정도 영원할 수 없고 서로의 이익이 다르다면 반목할 수밖에 없으며, 역사적인 숙명 속에서 개인의 한계는 자명하다. 꿈을 좇는 이상주의자 아토스, 국가에 헌신적인 공무원이 된 현실주의자 다르타냥, 부와 명예를 소중히 하는 기회주의자 포르토스, 종교적인 삶을 살면서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지 못하는 아라미스.


내가 알았던 그가 지금의 그와 다르고 내가 좋아했던 그녀가 지금의 그녀와 다르다. 함께한 세계에서 이제 각자의 세계로 흩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이것이 어쩔수 없는 삶이다’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도.


‘순간’은 지속되지 않으니 소중하고, 소중한 것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큰 성공을 거둔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가 있었던 이유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본 과거의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라는 노다가 판에서의 달콤한 휴식 같은… ^^;;


뒤마의 삼총사를 다시 펼쳐보고 난 후 지금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그저 삶이라는 강물을 따라 떠내려 가고 있는 작은 존재들이다. 누구를 만나고 또 어떻게 헤어질지 알 수 없지만, 물살이 어떻게 변할지 내가 어디로 떠내려 갈지 또한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반드시 그 끝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물줄기를 거슬러 다시 올라간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순간의 ‘최선’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만남마다 나는 매순간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곳에 옳고 그름은 없다. 오직 해프닝만 있을 뿐!


[note] 정말 유명한 작품임에도 안타깝게 한국에는 삼총사 1부의 완역 판 밖에 없다. 아주 오래전에 ‘20년 후에’의 번역판이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절판되었다. 따라서 원서로 읽는다고 오래간만에 상당한 고생을 했다. 뒤마의 삼총사 3부작은 역사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고전인 만큼 시리즈의 완역본을 ‘좋은’ 출판사에서 출판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희곡작가이자 대중 소설가로, 그의 아들 또한 동명의 희곡작가로 활동했다.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연재소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뒤마는 극적인 전개, 선명한 캐릭터, 역사와 허구를 절묘하게 결합한 서사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문학 공장’처럼 다수의 조력자들과 협업하며 방대한 작품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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