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Don Quixote De La Mancha 1605(I), 1615(II) (라만차의 돈키호테)
작가 : 미겔 데 세르반테스 (Miguel de Cervantes 1647~1616)
편력 기사란 노상에서 만나는 가련한 사람, 사슬에 얽힌 사람, 학대를 받는 사람들이 그 모양 그 고생을 하게 된 것이 잘해서 그렇든, 못해서 그러든, 그런 것은 하등 알 바다 아니요, 알 것도 아닌 것이다. 약자를 돕는 그것 하나만이 기사의 할 일인 만큼 그 어려움을 볼 따름이지, 잘못을 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슬프고 불쌍한 백성이 꿰미에 묶여 가는 것을 본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신성한 직분이 요구하는 바를 해 주었을 뿐이니, 여남은 일이야 마음대로들 하래라.
1605년 출판된 돈키호테는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둔 책이다. 그리고 스페인 최초의 근대소설이기도 하다. 후에 1615년 후편이 나왔지만, 양이 너무 많은 관계로 이번 기회에는 읽어 보지 못했다. 돈키호테의 다음 이야기는 아마 내년 쯤에 읽어야 하지 않을까?
돈키호테가 출판되기 전 당시 스페인에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군에게 대패한 것이다. (1588 칼레해전)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유럽 최강국이었던 스페인은 쇠락의 길을, 영국은 새로운 해양 강국으로서 기반을 다지게 된다.
세르반테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영국 최고의 문호가 바로 셰익스피어다. 세르반테스는 1616년 4월 22일, 셰익스피어는 그로부터 10일 후에 죽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영국은 율리우스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1616년 4월23일이 셰익스피어의 사망일로 기록되어 있다. 1955년 유네스코는 4월 23일을 세계 책의 날로 지정하며 두 작가를 함께 기리게 되었다. 영국과 스페인 참 흥미로운 역사 속 팩트이다.
당시 아메리카의 식민지로부터 금과 은을 들여오던 스페인은 점점 황금 만능주의의 사회로, 그리고 귀족과 종교 중심의 체제가 오히려 강화되며, 실업자와 떠돌이를 양산하고 국내 경제를 서서히 붕괴시켜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혼란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고학력자이자 대단한 독서가였으며 스스로 모험을 즐겼던 세르반테스는 후에 회계 부정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 기간에 완성된 소설이 바로 돈키호테이다. 돈키호테의 구성은 복잡하지 않다. 스페인 라만차의 하급 귀족이었던 알론소 키하노는 16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기사도 소설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스스로 돈키호테라는 편력기사가 되어 방랑하며 겪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책은 1605년 1615년 두 번에 나뉘어 출판되었으며, 1부에서 돈키호테는 총 2번의 원정을 떠나게 된다. 돈키호테의 종자로 유명한 산초 판자가 등장하는 것은 바로 2번째의 원정이다. 2번째 원정의 대부분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들의 방랑 중에 만나는 사람들과 그리고 그들의 촘촘하게 얽혀 있는 인과 관계로 이야기는 계속 진행된다.
운명은 우리가 미처 생심도 못할 거창한 일을 우리에게 시키시려나 보다. 여보게, 산초 판자, 저기를 좀 보게. 산더미 같은 거인들이 서른 놈, 아니 그보다 더 될 놈들이 우뚝 서 있지 않은가. 내 저 놈들하고 싸워서 한 놈도 남겨 두지 않고 모조리 없애 버릴 테야.
예전 처음 돈키호테라는 책을 처음 읽게 되었을 때, 한마디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돈키호테가 ‘미친놈’의 대명사이지만 말이다. 적어도 어린 내 눈으로 보기에 그는 자신의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 내가 찾은 돈키호테의 키워드는 ‘신념’이었다.
산초는 무척 현실적인 평민이었지만, 돈키호테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그가 약속한 말도 안되는 보상을 종국에 믿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미쳐버린 이 노인을 비웃었지만 한편으론 사랑하며 그의 말도 안되는 이상에 동참한다. 돈키호테의 믿음과 신념이 세상에 닿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당하는 모습이 너무 어처구니 없고 화가 났지만, 그래도 세상에 누구나 하나쯤은 저렇게 자신만의 믿음을 가지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멋지지 않은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낭만적인 이상주의자인가 아니면 편협한 시대의 낙오자인가?
뇌과학에서도 이미 밝혀진 바이지만, 우리는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즉, 자기가 믿는 것만 보이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돈키호테가 살아가던 그 시기는 변화의 시기였고, 더 이상의 낭만이 존재하지 않는 불안한 시대였다. 나이든 하급 귀족 키하노에게는 어쩌면 너무 벅찬 시대가 아니었을까? 그는 시대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오래된 기사도 소설을 읽으며 빠져들었고, 마침내 스스로가 믿고 있는 인간상을 만들어 나름대로 그 시대의 자신의 의미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 마디로 그는 제대로 미쳤다고도 볼 수 있겠다.
풍차는 기술이며 새로운 세계의 상징이다.
돈키호테는 이를 거인으로 치부하고 쳐부수어야 할 상대로 규정한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옛날 기사의 모습으로 풍차로 돌격한다. 비록 허무한 몸짓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앞뒤 분별없이 사람들을 구하는 그의 모습,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 착각, 그는 단지 현실을 부정하는 시대착오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인간적이라고 믿고 있던 과거의 시간을 그저 홀로 살고 있는 사람말이다.
현대시대의 우리에게 풍차는 무엇일까? 감히 AI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AI가 결코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하며 ‘인간 중심’의 사회를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나 현실은 AI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인간이 대체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물을 수 밖에 없는 질문, 바로 ‘우리는 누구인가?’ 이다. AI시대에 있어 인간의 존재가 무엇인지, 새로운 고민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을 그리워 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돈키호테는 지금의 우리들 중 이미 누군가의 모습이다.
새로운 질서 속에서 누군가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타협할 것이며, 누군가는 자신만의 ‘인간다움’을 찾아 결국 길을 떠날 것이다. 이 시대의 새로운 돈키호테로서 말이다.
돈키호테 어쩌면 그는 너무 오래도록 ‘인간’이고 싶은 한 인간이었다.
삶 자체가 미쳐 버렸을 때, 누가 미쳤는지 어떻게 알겠나?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중-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는 스페인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로, 스페인 근대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그의 대표작 『돈키호테』는 기사도와 현실 사이의 충돌을 그린 풍자 소설로, 세계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청년 시절에는 군 복무를 하였고, 레판토 해전에서 부상을 입어 왼손을 잃는 중상을 입었다. 해적에게 납치되어 5년간 알제리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등 다사다난한 인생을 보냈다. 말년에는 가난했지만,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읽히며 돈키호테와 판초는 문학사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