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노리한...

#007_토론토에서 101명 만나기

by reconceptor


"Fly 하는 것 같아..."


토론토의 뒷골목은

마리화나의 노릿한 공기로 기억된다.


화려한 그래피티 사이를 부유하는

음침하고 매캐한 연기...


마리화나를 해본 친구는

그 느낌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특유의 노리노리한 향 때문에

연기가 조금만 밀려와도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래피티로 가득한 토론토 뒷골목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노리노리한 향이 물안개처럼 피어올랐고...

소독차가 남기고 간 뿌연 연기 같은

공기 사이를 인상을 찌푸리며 걸었다.


골목 끝에 다다르면...

소설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처럼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 창백한 표정의

수염을 밀지 않은 떡진 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마리화나를 입에 물고 있거나...

'뭘 봐!'라고 말하는듯한 도도한 표정의

피어싱을 한 여자들이 한 손에 마리화나를 들고

입으로는 연기를 내뿜는 모습과

종종 마주치곤 했다.


©RECONCEPTOR


"마리화나는 Grey Area에 있답니다."


이곳에서 마리화나는

불법도 합법도 아니었다.

그래서 보통 회색지대에 있다고 말했다.


마리화나를 파는 것은 불법이지만

피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했다.

마리화나를 피다가 경찰을 만나면

주머니에 다른 마리화나가 있는지

검문을 받게 된다.

아무것도 없다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고.

집안에서 피는 건 괜찮지만

밖에서 피는 건 안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사람마다 말이 달라서 뭐가

정답인지 알 수는 없었다.


신임 총리인 Justin Trudeau가

현재 대마초 전면 합법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하니...

뒷골목에서 피어오르는 노리노리한 연기가

꺼질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RECONCEPTOR


"밤늦게 홈리스가 많은 거리에는 가지 마.

저쪽 George Steet에 노숙자 보호소인

‘Seaton House’가 있어서 밤엔 위험해.

Jarvis나 Jane and Finch는 말할 것도 없고...

밤에 혼자 다니면 안 돼."


근사한 영국식 발음이 돋보이는

그의 이름은 Peter Quick이었다.

전직 엔지니어였는데,

지금은 은퇴하고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제도와 엔지니어링 과목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어둠이 깔린 Nathan Phillips Square는

타르를 바른 듯 칠흙같은 검정바탕에

물결의 일렁임과 건물의 불빛이

교차하며 잔잔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의 안경에도 물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의 집은 Leamington에 있는데

토론토영화제를 보기 위해서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고 했다.


"오늘까지 영화를 보고,

내일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야."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했더니

옆에 앉으라고 조용히 손짓했다.


물빛이 그의 안경에 반사되어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안경 너머 언뜻 보이는

그의 눈동자에서

형언할 수 없는 쓸쓸함이 배어나왔다.


"토론토에는 혼자 오신 거예요?"

"응. 나는 매년 이맘때면

영화제를 보러 토론토에 와.

영화표 가격이 리즈너블해서

영화제에 자주 오는 편이야.

예전에는

친구들이랑 같이 왔었는데...

요즘은 혼자 와서 좋아하는

영화 보고 쉬다가는 게

나의 유일한 낙이 되었어.

나는 클래식 영화를 참 좋아하거든.

너도 영화 본 거 있니?"

"아뇨. 아직이요..."


예순을 훌쩍 넘긴 그는

싱글이었다.

결혼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혼자 여행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즐기며 사는 게

더 좋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엔 정말 재미있었지.

그런데 나이 들고 보니까...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보람 있지만...

나 혼자인 시간이

요즘은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

삶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말이야..."


그는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으며

분수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RECONCEPTOR


"오늘 그린 그림을 페이스북에서

더 보실 수 있어요."

"어떻게 찾지?"

"제가 주소를 적어드릴게요."


'좋아요' 수가 부족해서,

페이스북의 주소를 만들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페이지 링크 주소를 적어서 그에게 건넸다.


그는 주소가 적힌 종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안경을 벗고 눈 가까이 갖다 댔다.


"이 숫자가 뭐지?"

"아... 링크 주소예요."

"이 번호가 무슨 뜻이냐고..."

"여기서부터 보시면 돼요.

링크 주소를 나타내는 숫자예요."


뭔가 의문스럽다는 듯이

그는 숫자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작별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데...

불현듯 그가 그 숫자가

내 전화번호일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설마..."


걸음을 잠시 멈칫했지만,

되돌아보지는 않았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그의 외로운 그림자가

물의 표면에 깊게 드리우더니

멀리 물보라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