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hid

#041 토론토에서 101명 만나기

by reconceptor


나는 호스텔 꼭대기에서

Vahid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호스텔 라운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나에게

자기 친구들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는 친구들을 데리고

호스텔에 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오후 6시에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6시가 되고,

6시 30분이 돼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6시 40분까지 기다리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허기에 잠을 깬 나는

아침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5가지 종류의 식빵과 각종 시리얼,

3가지 종류의 잼과 바나나,

저지방과 고지방 우유,

오렌지 주스와 포도주스,

그리고 커피 등.


호스텔에서 제공되는 아침이었다.

음식 종류를 보면 꽤 신경 쓴 듯하지만,

대부분 No Name 브랜드의 것이었다.

노란색 라벨의 제일 싼 제품들.


그래도 어떠한가.

지갑이 얇은 호스텔 투숙객에게는

호텔 조식 못지않은 호사였다.


토스터기에 호밀식빵을 넣고

기다리며 잼병의 라벨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내 등을 툭툭 쳤다.


뒤 돌아보니,

Vahid가 능글맞게

웃으며 서 있었다.


"어제는 미안.

일이 있어서 6시 45분에 도착했어.

달려왔는데 네가 안 보여서,

거기 앉아 있던 애한테 물어보니까

네가 계속 기다리다가 방금 전에 갔다고 하더라.

내가 부탁해놓고 약속 못 지켜서 정말 미안해.

대신 내 그림을 그려줄래?"


Vahid는 눈치를 보며

애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소심한 어깨를 하고서.


"그럼 지금 어때?"

"내가 약속이 있어서

조금 있다 나가봐야 돼.

오후에 역기서 다시 만나자.

이번엔 늦지 않을게.

약속. 약속."


우리는 오후 5시에

라운지에서 다시 만났다.


Vahid는 라운지 테이블에서

다른 투숙객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 왔어?

여기 친구들을 소개하지.

이쪽은 러시아에서 온 Elena.

이 친구도 그림을 그리고 싶데."


금발 머리의 Elena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Vahid는 역시 능글맞은 미소를 짓더니

왼쪽 눈을 찡긋하며 나에게 윙크를 보냈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Vahid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나를 노려봤다가,

눈썹을 번갈아가며 움직이고,

고개를 돌렸다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Vahid는 덩치 큰 30대 아저씨의 탈을 쓴

5살 꼬마 아이 같았다.

Elias를 닮았다.


"Vahid!

1분이라도 가만히 있어줄 수 없겠니?"



©RECONCEPTOR



©RECONCEPTOR



그런 그가 나를 그려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한 수를 앞두고 장고에 빠진

바둑기사처럼 심혈을 기울였다.


한번도 웃지 않았고,

내가 말을 걸면 검지손을 세워 입에 갖다대며

가만히 있으라고 주문했다.


그런 진지한 반전이 낯설기까지 했다.


'녀석...

평소엔 장난기 가득하지만,

원래는 진지한 청년이었구나.'


그가 그린 나의 초상화는

독일 표현주의 화가인 Ernst Ludwig Kirchne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오~ Vahid!

너 그림에 소질 있어.

계속 그려봐."


그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

놀리지 말라고 잠시 정색하더니

낄낄 거리며 웃었다.



©RECONCEPTOR



©RECONCEPTOR



호스텔에 묵는 동안

매일 아침 Vahid를 만난 것 같다.


자기 고향 음식이라고...

이란 음식을 내밀며

먹어보겠냐고 해서,

조금만 맛보고 싶다고 했더니

절반 이상을 덜어주던 Vahid.


나도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더니,

자신은 무슬림이기 때문에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며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라운지에서 나를 발견하는 날이면,

꼭 찾아와서 손짓으로 말을 건네던 Vahid.


"저기 저 친구한테 가봐.

그림 그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의 손가락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오늘 몇 명을 그렸는지 물었고,

내일은 몇 명을 그려야 하지 않겠냐고

장난스럽게 명령하곤 했다.


그의 애정 어린 관심과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호스텔을 떠나는 날,

Vahid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하지만 그날따라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데스크에 물어보니 일찍 나갔다고 한다.


이미 체크아웃을 했지만,

아쉬운 마음에

오후에 다시 호스텔에 들렀다.

역시 Vahid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Korea Town에서 사 온 약과를

데스크 직원에게 건네며

Vahid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돌아서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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