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예술가, 그리고 Ray

#037 토론토에서 101명 만들기

by reconceptor


나는

Dundas Square 건너편에서

Ray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여성이 길바닥에 앉아

머리에 사슴뿔 장식을 한

미지의 소녀를 그리고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았다.


러프하게 그린 스케치에

색깔을 더해 양감을

불어넣고 있었는데,

손가락이 다 닳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시멘트 바닥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목탄으로 그림 그린다고,

끝없이 문지르다가

검지 손가락 지문이 없어졌던

친구가 생각났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잠깐 보고 지나친다는 것이

호기심에 30분을 더 서 있었다.

왠지 모를 오기가 발동했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덧칠만 반복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오늘 완성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노란 바스켓에 동전들이 놓여있는 걸 보니,

길거리 버스킹처럼 그림을 그려

행인들에게 돈을 받는 것 같았다.

역시 빨리 그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지난 한 과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노숙자인듯한 사내가 달려오더니,

그림을 밟고 바스켓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와르르르...

땡 그르르르...

동전 쏟아지면서 여기저기

동전들이 굴러다녔다.


마침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깜짝 놀란 여성이 고함을 치며 일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주변에서 사내 3명이

노숙자에게 덤벼들었다.

30~40대로 보이는 등치가

건장한 남자들이었다.


노숙자는 그들을 발견하더니

바스켓을 뛰어넘어 재빠르게 도주했다.

그들 중 둘은 그 노숙자를 쫓았고,

나머지 한 명은 화를 내며

서 있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 노숙자는 동전이 탐났던 것일까...

아니면 괜히 심술이 났던 것일까...


덕분에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녀는 어딘가에 소속이 돼 있거나

비즈니스적 차원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거리의 예술가가 아니었다.


길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고,

모인 돈을 갈취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내들이 마치 보디가드처럼

그녀 주위를 맴돌며 보호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챈 순간, 김이 새 버렸다.


마침 Ray에게 메시지가 왔다.

우리는 세컨드 컵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Ray는

Language Exchange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었다.


Iran에서 온 이민자였는데,

왜 한국어를 배우고 싶냐고 물었더니

내년(2012년)에 한국에 갈 계획이라고 했다.


"홍대에 가보고 싶어. 거기 클럽이 많다며?"

"하하. 클럽뿐 아니라 맛집도 많고 재미있는 곳이지.

언제쯤 갈 예정이야?"

"6월쯤 될 것 같은데... 많이 더울까?"

"캐나다보다 습도가 높아서 아마 훨씬 더 더울 거야. 괜찮겠어?"

"아... 습한 거 딱 질색인데...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흐흐."


"안녕?"

"잘 가~"

"고마워."

내가 자주 쓰이는

한국어 표현 몇 가지를 알려주자,

그 또한 나에게 영어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Can do you speak English?


"읭?"

can과 do는 함께 쓸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보다 말은 더 유창하게 하지만,

영문법은 잘 모르는 듯했다.



덥지 않은 날씨에도

땀을 비 오듯 흘리던 그가

진짜 홍대를 갔는지는 알 수 없다.



©RECONCEP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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