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 a drive~ BITCH"

#005_토론토에서 101명 만나기

by reconceptor


<Pleasantville>이란 영화가 있다.


1998년 개봉한 이 영화는

어느 완벽한 마을의 일상을 통해,

북미 중산층의 이상적인 전형을 보여준다.


붕어빵 찍어낸 듯 똑같은 집에서

매일 즐거운 일상을 반복하며

배려와 애정이 넘치고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사는 행복한 마을.


유토피아가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만...


Bulington의 첫인상은

마치 <Pleasantville>을

컨트롤 C, 컨트롤 V 한 것처럼

닮아있었다.


온타리오 주에 있는 벌링턴은

토론토와 나이아가라 폭포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토론토가 서울이라면,

벌링턴은 수지나 용인쯤 되는 셈이다.


온타리오 호수와 가까울수록

백인의 거주 비율이 높아지고

Lakeshore에 가면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원에

유럽의 성처럼 들어선 대저택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Lakeshore에서 조금 벗어나면

<Pleasantville>과 같은

거의 똑같은 형태의 집들이

아파트촌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곳에 숙소가 있었다.

벌링턴에서 토론토를 오갔다.


"How are you?"

"How is it going?"

Mall가면 점원들이 안부를 물으며

동네 이웃처럼 긴 대화를 이어간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는 마을 사람들.


"이 도시락통 정말 좋아.

우리 애들도 작년에 사줬는데,

이번에 업그레이드돼서 케이스도 주네.

넌 참 운이 좋구나."


코스트코에서 도시락 통을

고르고 있던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던 흑발의 백인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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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se me.'

'Parden me.'

'Sorry.'


어깨만 조금 스쳐도,

지하철에서 발만 부딪혀도

사과하고

다음 사람을 위해서 항상

문을 잡아주는 사람들.


산책길에서 만난 리트리버가

방실방실 웃으며 인사하고

여기저기 캐나다 구스가

뒤뚱뒤뚱 돌아다니고

솜뭉치처럼 하얀 토끼가

정원을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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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에선 언제나

보행자 우선이기 때문에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발만 들어도

자동차가 자동으로 멈춰 선다.


파란불이 켜지고,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는데

횡단보도에 슬쩍 범퍼를 내민

BMW의 창문이 열리더니

할머니가 고개를 쭉 내밀었다.


"I am really sorry.

It's my mistake."


유토피아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그렇게 몇 개월 동안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어색하면서도 묘한 안락함에 취해있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운명의 날은 찾아왔다.


Go Train을 타기 위해

숙소 앞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을 때의 일이다.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빛 아래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려오던 초록색 승용차에서

빨간색 티셔츠에 갈색 선글라스를 낀
이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창밖으로 상반신을 내밀더니

오른손 손가락 중지를 세우며

나에게 소리 질렀다.


"Get a drive~ bitch."


읭?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순간 얼음이 됐다.

100미터 근방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Get a drive?

분명 이렇게 들렸는데...

get a driver's license라고 한 건가...

운전면허증 따란 소린가...

그건 그렇다 쳐도 bitch는..

B.I.T.C.H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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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다리는 게 그렇게 큰 죄인가.

피부색이 불만인가.


한동안 그 말이 귓가를 맴돌며
정신이 얼얼했다.


그리고 똑같이 중지를

세우지 못한 것이 못내 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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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을 기점으로

나의 유토피아 입성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보행자 우선은 개뿔...

클랙슨으로 연주를 하며

발끝을 지나갔던 자동차,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질주하며

빗물 샤워를 선사한 운전자,

치킨 윙 포장하러 갔던 바에서

치근덕 대던 남자...


그렇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완벽한 꿈에서

현실의 카오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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