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토론토에서 101명 만나기
Kensington Market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잔디밭에 놓인 캔버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캔버스 앞에는 젊은 청년이 앉아있었다.
"네가 그린 그림이니?"
"응, 모두 내 작품이야."
"왜 여기 펼쳐놓은 거야?"
"그림을 팔고 있어."
"아... 너 화가구나?"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어했다.
"내 그림은 다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아직 화가라고 부르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해.
정식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공부하는 중이거든."
그림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의 말대로 아직은 스킬도 부족하고
재료를 다루는 방법도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작품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태도는
화가와 다를 바 없었다.
Mark는 그림을 팔아서 생활하는
20살의 청년이었다.
처음에는 이 그림들이 팔릴까...
의문이었지만...
여기는 캐나다가 아닌가.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갖고
가격을 물어보는 행인들이 꽤 있었다.
"와우~ 멋지네요. 이 그림은 얼마죠?"
"네, 5달러예요."
검고 긴 생머리에
몸매가 드러나는 셀룰리안 블루 컬러의
반소매 티셔츠에 흰색 스키니진을 입은
흑인 여성이 그림 하나를 집어 들었다.
검은 보잉 선글라스의 금빛 테두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자
그녀의 짙은 구릿빛 피부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말투나 제스처가
클럽에 자주 다니는 클러버 같았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다음에 다시 들르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한 점에 5달러씩 팔아서 생활이 돼?"
"나는 하루에 20달러만 벌면 만족해."
가장 비싼 그림이 10달러였다.
"많은 돈은 필요 없어.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살 수 있을 만큼만 벌면 돼.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애쓰다 보면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힘드니까.
내가 5달러에 팔았다고 해서
내 그림의 가치가 5달러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내가 그냥 갖고 있는 것보다
누군가의 집에서 혹은 책상에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기쁨을 준다면
5달러 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거겠지.
나는 아직 연습생이니까
내 그림을 사주는 사람들이
나를 응원해준다고 생각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있어."
우리는 함께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언뜻언뜻 나를 바라볼 뿐
그는 미동도 없이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스케치를 끝내고 서로의 그림을 확인하는데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처음엔 나에게 별 관심 없어 보였는데
아니 조금은 도도한 태도로 일관했는데,
내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림을 배운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갑자기 자신의 스케치북을 펼쳐 보였다.
어떤 말을 듣게 될지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스케치북을 열어 그림 하나하나를 보여주고
설명하며 내 조언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학창 시절 교수님께 크리틱을 받던 때가 떠올랐다.
"이건 어떤 것 같아?
이건 이런 의도로 이렇게 그린 건데 어떻게 생각해?"
처음엔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그의 진지한 태도와 열정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음...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이 그림은 너의 의도가 정말 잘 표현된 것 같아.
이건 이렇게 표현하면 더 멋진 그림이 될 거야.
그런데 Mark,
그림에는 정답이 없어.
너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고 그걸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너의 길에 서 있게 될 거야.
너 자신을 믿고 계속 너의 길을 걸어가."
붓을 꺾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의 손은 여전히 그림을 배웠던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스킬이
그보다 조금 더 나을지 몰라도
그의 열정과 예술에 임하는 태도는
나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에게 배우고 싶어 했지만,
내가 그에게 배워야 했다.
나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나의 꿈을 뒤로 미루기만 했기 때문이다.
직면할 용기를 갖지 못하고
그 주위를 항상 빙빙 돌기만 했다.
언젠가는 할 거라면서...
철학자 강신주 박사가
이루지 못한 꿈 혹은 포기한 꿈은
평생 유령처럼 우리 주위를 맴돌게 된다고
했던 말이 무척 아팠던 것은
내가 바로 그 유령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Mark가 아직 그 자리에서
그림을 팔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림을 포기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화가로 데뷔를 했을 수도 있다.
사는 대로 산다는 말처럼,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이
그를 그의 길로 이끌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루 20달러의 도전이 적어도 그에게
유령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멋진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