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토론토에서 101명 만나기
Melanie는 프렌치 캐나다
여행의 가이드였다.
Montreal과 Quebec을 방문했을 때,
나는 Graffiti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 벽화를 찾아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이를 눈여겨보던 Melanie는
어디에 가면 더 많은 그래피티를 볼 수 있는지
종종 알려주곤 했다.
"너 혹시 Banksy 아니?"
"아니 잘 모르겠는데..."
사실 내가 그래피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토론토 거리 곳곳, 골목 사이사이에서
만난 그래피티들 때문이었다.
합법이다, 불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고층 빌딩 너머 골목 곳곳을 수놓고 있는
그래피티들이 토론토의 또 다른
도시 이미지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Banksy는
스스로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자부하는
영국 출신의 그래피티 아티스트이다.
자신의 신상을 비밀에 붙인 채 음지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작품화하여
사회를 풍자하고 세태를 고발하며
정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그는
논란과 이슈를 함께 불러일으켜온 작가이다.
그는 2005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리장벽에 그림을 그렸다.
관리당국으로부터 불법 통보를 받았음에도
그는 시멘트 장벽에 다양한 작품을 표현했다.
사실 그의 행위는 불법이었지만,
국제법상 분리장벽 또한 불법이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이 땅의 법을 무시하고 그린다면,
그것은 좋은 그림이다.
Banksy <WALL AND PIECE>
그는 작년 8월,
영국 브리스톨 근처 버려진 야외수영장을
개조해 Dismaland를 만들었다.
Dismaland는 꿈과 행복이라는 환상을 파는
디즈니랜드를 비판하며 현실의 우울을
담은 테마파크이다.
"꿈과 희망의 나라에 온 걸 환영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디즈니랜드와
달리 디즈멀랜드에서는
“잊지 마세요, 야망은 현실 안주만큼이나 위험합니다.”
라는 말이 나온다.
현실을 회피하도록 만드는 가짜 행복을
비판하며 다양한 풍자를 통해
음울한 현실을 비꼬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동화처럼 행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테마파크가 더 큰 테마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테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중 가장 해학이 느껴졌던 것은
유명 미술관에 자신이 만든 작품을
몰래 붙여 함께 전시한 '미술관 테러'
혹은 '도둑 전시'였다.
아래 영상을 보면,
뉴욕의 메트로 폴리탄 뮤지엄에
변장하고 들어가 자신의 그림을 슬쩍
전시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영국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등 세계 4대 뮤지엄은 물론 유명 미술관 등에
자신의 조각이나 작품을 들고
들어가 몰래 전시했다.
길게는 2주까지, 전시 관계자들도
눈치채지 못한 상태로 전시되었다.
그는 이런 행위를 통해
전형적인 전시관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러한 권위에 기대어 가치판단 없이
그대로 수용하고 끌려다니는 관람객들을
조롱하고 있다.
Marcel Duchamp이
미술관에 변기를 갖다 놓고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이 아닐까 한다.
뒤샹이 '샘'을 통해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물었다면,
뱅크시는 '도둑 전시'를 통해 예술의 작품성과
비 작품성의 경계에 대해 묻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의 권위와 허위의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루브르 미술관에 갔을 때,
모나리자 그림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관광객들과
연신 터지던 카메라 플래시 섬광이 잊히질 않는다.
모나리자의 원본을 본다는 설렘도 잠시,
생각보다 너무나 작은 그림 크기에 한번 놀랐고,
그림 보호를 위해 4겹에 가까운 유리관에
둘러싸여 있어 제대로 보기 힘든 상황에 두 번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신도처럼
그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을 비집고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그의 촌철살인적인 행동에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누구도 믿지 않는 자유, 평화, 정의
같은 것들을 적어도 익명으로 부르짖을
정도의 배짱은 가지고 있다.
Banksy <WALL AND PIECE>
다시 토론토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Melanie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여전히 그래피티에 관심이 있다면,
ROADSWORTH의 출판기념회에 가봐.
나도 시간이 되면 가볼 계획인데
아직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시간 되면 꼭 가보길 바래.
우리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어.
Wednesday, September 28, 2011 - 7:30pm
The Gladstone Hotel, Ball Room, 1214 Queen St. W
ROADSWORTH는 내가 Montreal의 거리를
헤맬 때 Melanie가 언급한 적 있는 작가였다.
그는 캐나다 Montreal 출신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공공장소에서 불법으로 규정된
그래피티 작업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유명세를 탄 작가였다.
그의 이름은 생소했지만,
신기하게도 그의 작업들은 이미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이미지로
한 번쯤은 봤던 것들이었다.
눈에 익숙했던 작품들의 작가를
오늘에서야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Queen Street West를 따라 걷다 보니,
다양한 미술관과 갤러리, 그리고
개성 있는 샵과 레스토랑 등이 나타났다.
상업화되기 전의 홍대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개성 있는 풍경들이 펼쳐졌다.
Gladstone Hotel에 들어서자,
여러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와인과 샴페인 잔을 들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예술계, 문화계 인사인 듯한 사람들과
출판사 관계자, 그리고 ROADSWORTH의
팬들과 그에게 관심 있는 독자들이 모여들었다.
작가와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 출판기념회에서
그는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계기와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Where WORDSWORTH is a poet of words,
ROADSWORTH is a poet of roads.
몬트리올에서 2001년부터 활동해온
그의 본명은 Peter Gibson이다.
ROADSWORTH란 가명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WORDSWORTH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그의 작업들을
극단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뱅크시와 비교한다면,
보다 서정적이고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일상적 풍경에 위트를 더하여 도시의 삶에 잠깐의
쉼과 여유를 선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새벽 5시,
아무도 없는 거리에 나가 작업하기를 좋아했다.
불법과 합법이 공존하는 공공영역에
Street Art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또한 빨리 그리고 사라져야 했기 때문에
스프레이를 활용한 그래피티 작품이 많았다.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도로의 선들이었는데,
그것이 길바닥으로, 벽으로,
그리고 도시로 확장되었다.
도시 곳곳이 그의 캔버스가 되고
그는 그 속에서 어떤 관계를 발견하고
이를 그래피티를 통해 표현했다.
Street Art는 예술가와 도시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도시는 영혼을 가지고 있고,
도시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두개의 영혼이 맺고 있는 관계를
표현한 것이 나의 작업이다.
ROADSWORTH <ROADSWORTH>
유명세를 떨치고 난 이후
그는 합법적으로 혹은 상업적으로
많은 작업들을 하게 되었고,
작업은 좀 더 디테일하고 안정화되었다.
이제는 새벽 5시에 몰래 그리고
도망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담이 끝나고 사인회가 이어졌는데,
나도 책을 구입하고 줄을 섰다.
그리고 속으로 고민했다.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서로 초상화를
그려주면 어떨까?'
하지만 사인을 받기 위해 늘어선 줄이 길기도 했고,
분위기가 조금은 엄격한데다
ROADSWORTH의 표정과 제스처가
친화력 있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생각으로만 만족해야 했다.
ROADSWORTH와 악수를 나누고,
사인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ROADSWORTH의
책을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래 구절이 눈에 띄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나는 명확하게 정의된
Manifesto를 갖고 있지 않았다.
ROADSWORTH <ROADSWORTH>
분명한 의도와 계획을 바탕으로
행해지는 뱅크시의 작업과
자신의 영감과 감성으로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가는 ROADSWORTH의 작업은
다를 수밖에 없다.
모두 예술이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다.
각자의 취향과 미감, 철학과 사고에 따라
자유롭게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의 프로젝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의 프로젝트는
ROADSWORTH의 작업처럼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특별한 메시지나 의미를 만들지 않았다.
그냥 흘러가도록 두면서 그것이 내가 의도하지
않은 무엇을 만들어내는지 보고 싶었다.
만들어진 과정과 결과를 쫓아가기보다는
시작점으로부터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결과를 관조했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결국 참여자들이 이 프로젝트를
만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과 결과를 겪으면서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어떤 목표지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
흔들리거나 타협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
분명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