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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희 Nov 13. 2023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유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

2015년에 나는 해외로 떠났다. 돌아올 생각은 없었다. 


돌아올 생각이 없으니 내 모든 짐을 욱여넣고 인천 공항으로 갔다. 그런데 수화물 부치는 게이트 앞에서 나는 황망해졌다. 승무원 선생님께서 상냥한 목소리로 32kg 이상은 수화물에 넣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만 원을 더 내야 해요. 철저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가난한 나에게 거기다 쓸 돈은 없었다. 당장 비행기 시간을 코 앞이라, 그 자리에서 짐을 풀고 거기서 반 이상을 공항 쓰레기통에 버렸다. 제일 먼저 버린 것들은 내가 추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잊을 수 없는 누군가의 선물을 버리고, 몇 년 동안 가지고 싶었던 신발을 버리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기타 등등을 다 버리자 얼추 32kg가 맞춰졌다. 남은 건 노트북, 책 몇 권, 옷가지 몇 벌, 신발 한 두 켤레 정도가 전부였다. 그때 깨달았다. 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정말 거의 없구나. 그리고 사람에게 중요하게 남는 건 마음속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정말로 사람에게 중요한 건 생존을 위한 것들, 치약과 칫솔 같은 것. 나는 그런 것들의 소중함을 그때 깨달았다.


그 뒤로 나는 다시 모종의 이유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렇다고 짐이 32kg에서 크게 늘어나는 일은 없었다. 물건이 많아지는 일은 피로함을 쌓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곤도 마리에(넷플릭스에서 유명한 무조건 버리라고 하는 청소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내 소유의 물건을 더 만드는 일을 피해왔다. 특히 추억이나 선물 같은 것들, 사랑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행위 등을 지나치게 평가절하하기 시작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내 바운더리 안에 존재하면 물성이 생겨서 책임감을 가지고 지속해야 하는데 나는 무언가를 아끼는 일을 힘들어했다. 주의 깊은 사랑을 고르게 주는 일을 힘들어한다. 대신에 언제든지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노트북 하나와 옷가지 몇 개만 들고 훌쩍 외국으로 떠났던 8년 전 나처럼, 이름 모를 낯선 외국어가 들리는 곳으로 가고 싶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느끼는 안정감을 좋아했다. 나는 아직도 우울할 때 내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서 이민가방에 넣어보고 32kg를 재보곤 한다. 일종의 의식 같은 것으로, 그리고 언제든지 내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안 뒤 안심하고는 씻고 잠에 든다.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건 나의 병이다. 나는 안정감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에 맞고 뭔가 더 성숙한 사람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는 철든 사람이 돼서 식물을 잘 키우는 종류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서른넷이 된 지금, 나는 천성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혼이 없는 물건에도 삶을 버거워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구독과 라이킷, 댓글에선 맥시멀리스트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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