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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희 Nov 13. 2023

글이 천명인 사람

평생 동안 남들보다 못 쓰는 글을 쓸 수밖에 없어도

용기를 내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특히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많을 때는 더 그렇다.


아직 어떤 글을 쓸지는 모르지만 모든 걸 다 써 볼 생각이다. 시나리오도 쓰고, 웹소설도 쓰고, 브런치도. 잘 쓰는 사람보다 공장처럼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글이라는 것 자체가 쾌감이 있어서 어떤 걸 써도 아직은 즐겁다. 현실적으로 전업 작가가 되기 전까지는 다른 알바를 하는 겸업 작가가 되어야겠지만 꿈은 전업 작가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른네 살인 나는 남들처럼 인생의 목표를 성공에 두고 있었다. 그런 거 말이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해서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나는 그 어쩌고 저쩌고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꽤나 조급한 상태였다. 이러다가 인생이 망하면 어쩌지, 하며 단기 프리랜서 일로 생활을 때우는 가난한 서른 중순. 내 주변의 사람들 역시 인생의 목적이 다분히 성취지향적인 사람들이었다. 있잖은가.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생산적인”일을 하고 거기서 보람을 느끼는. 나는 점점 조급해졌고 점차 내 인생을 실패자로 떠밀어버리기 직전이었다.


그러다 이 주일 전에 친구들 둘과 술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사실 엄청 친하지도 않았는데 그 친구들과 그런 자리를 가지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들은 영화를 업으로 삼는 친구들이었다. 영화를 일주일에 여섯 번은 보는 그런 사람들. 일단 내 주변엔 그런 인종이 없었으므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좋아하는 일에 두려움 없이 달려 나가던 그 친구들은 빛이 났다. 자신을 책임지도 믿는 것에 대해서 달려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살아있는 아우라가 흘렀다. 경외심이 들었다. 내 인생과는 너무 달라 보여서. 물론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불안이 있어 보였겠지만 그 빛은 그 불안을 덮어버릴 정도로 큰 것이었다. 


술자리가 파하고 집에 갈 때 그 친구 중 한 명의 인스타를 소개받았다. 나는 집에 돌아가면서 그 친구의 인스타를 꼼꼼히 봤다. 그 친구가 살아오면서 만들어 낸 시나리오와 활동들,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고민들의 흔적들이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잘 쓴 글을 보면 머리에서 불이 난다. 밤을 새워서 다 읽었다. 일단 글의 구성과 문장이 너무 유려해서 놀랐다. 영화에 문외한인 나는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그 친구에게서는 열정을 보았다. 내 인생이 이제까지 죽어가고 있었는데, 내가 이 불꽃을 붙잡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불을 잡고 싶었다.


그때 나는 회계사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살고 싶어서. 더 이상은 죽은 것처럼 숨만 쉬면서 살아가는, 삶은 지옥이고 지옥은 인내해야 하는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삶을 더 이상 살기 싫어서.


그렇지만 학업을 포함해 몇 년을 쏟은 일을 그만두겠습니다, 하는 문제는 현실의 문제였다. 그러면 나는 정말로 이 사회의 잉여가 될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회계사를 때려치우겠습니다, 전업 작가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서른넷에 말하면 모두가 비웃을 것 같았다. 그런데 주변의 반응은 의외였다. 잘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얼마나 힘들었느냐, 긴 길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으니 고통스러웠겠구나. 어머니의 말에 나는 오열을 하며 울었다. 이것은, 다, 어머니와 얽힌 이야기였으니까.


어머니는 딱 내 나이에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IMF가 터진 것도 그때쯤이었다. 예술가들은 그런 일에 가장 첫 번째 희생양이 된다. 집안은 금세 기울었고 지리멸렬한 언어가 집안의 공기 궤도를 타고 돌았다. 어린 나는 그 사이에서 핏발 선 눈으로 꿈 따위는 가지지 않을 거라고, 그것은 뾰족해서 가족들을 다치게 하니까, 얼른 제도권 안에 들어서 돈을 위해서 살 거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34년 동안 나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제 천명임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어릴 적 삐딱했던 저 자신과 어머니에 대해 화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해를 한다는 건 이제까지의 제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전업 작가로 산다고 했을 때 가장 큰 걱정은 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야 돈을 잘 버니까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아침 반나절을 글을 쓰는 삶을 살 수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글을 위한 워드프로세서를 한편에 올려놓고 알바 천국을 봐야 하는 게 내 현실이다. 가급적이면 세상을 알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만큼 다양한 일을 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건 꿈이고 현실적으로는 쿠팡 알바 같은 걸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의 이면으로,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든다.


나이를 이만큼 먹고 비정규직조차 되지 못하는 것. 글을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내가 볼 때 내 글이 재밌는지 안 재밌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완전한 낙오자의 길로 가고 있다는 불안함도 있다. 글에서 재능을 따지는 건 완전히 무용하다. 나에게 글은 이미 천명이라 능력이 안 되면 안 쓰고 되면 쓰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일단 써야 하는 것이다. 비록 내가 평생 글을 잘 쓸 수 없더라도, 모든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대도.




구독과 라이킷, 댓글을 달아주시면 제희도 춤추게 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글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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