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희 Nov 14. 2023

믿음에 대하여

조현병 환자에게 믿음이란 종교가 아니라 사람이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렇지만 종교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정의는 경험으로 뭔지 정확하게 안다. 내가 인지할 수 없는 것을 ‘있다’고 한다면 그대로 따르는 것. 그것을 알려준 계기는 종교가 아니었다. 나의 정신장애였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조현 증세 때문이었다.


조현 증세가 시작된 것은 내가 중학교 때였을 거라고 추론된다. 나는 방 안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가족들의 목소리로 나를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방 바깥으로 나가서 욕을 할 거라면 차라리 내 앞에서 하라고 소리를 지르면 이상하게 그 소리는 멈췄다. 그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욕을 듣고, 가족들은 당황하고, 소리는 멈춘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런 인풋이 들어오니 나는 전파로 사람들이 날 조종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악화되었다.


20대가 되었을 땐 손목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보다 못한 가족들은 나를 데리고 처음으로 정신과를 갔다. 몇 군데를 돌았다. 소견은 각기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불안장애, 조울증, 조현병 같은 것들이 꼽혔다. 그중 조현병 증상이 있는 조울증이라고 말하는 병원에 가서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와 가족들의 지리한 정신병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병원에서 준 약을 먹으면 하루에 20시간을 잤다. 지금도 그 시절은 푹 파낸 것처럼 기억이 없다. 정신병은 자신을 인식했다는 걸 알았는지 인지할수록 자신의 형체를 드러냈다. 그나마 깨어있는 시간에는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환촉과, 수 백개의 벌레들이 나를 바라보는 환각에 시달렸다. 시야가 녹아내려 벽과 천장이 흐물거리는 일도 있었다. 약을 바꿔달라고 하면 의사는 적응 기간이 있을 수 있으니 참으라고 말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내가 들었던 소리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 나의 인지적 알고리즘이 많이 잘못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까지만도 몇 년이 흘렀다. 나는 그 사이동안 계속 주변인을 의심했고 나를 죽음으로 내모는 일을 반복했다. 가족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쉬이 죽음으로 가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고 나에게는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그 정신병적 증상을 ‘일반인’에게 이해 가능하게 번역하는 작업도 또 몇 년이 걸렸다. 정신병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병증을 태어났을 때부터 미약하게나마 가지고 있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실은 전혀 일반적인 것이 아님을, 그래서 내 안의 비 장애인-정신장애인 통역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 장애인들을 카피해서 최대한 조율을 맞추는 일을 계속했다. 나와 비 장애인과의 거리는 그런 식으로 가까워졌다. 그렇게 나는 어느 정도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현병은 오감과 자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는 병이다. 모든 사고는 오감으로 인지하고 뇌의 사고 과정을 거쳐 발생한다. 그런데 그 중간 과정이 고장이 나면 있는 것이 없는 것이 되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은 신에게 의존하듯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믿는다. 마치 내 앞에는 천길 낭떠러지가 있는데 옆에서 ‘다리가 있다’라고 하면 허공에 발을 뻗는 일.



나는 보이지 않는 다리를 믿는 일. 나는 여전히 다리를 보지 못한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고 믿는 가족들이, 애인이 그렇게 말한다면 기꺼이 허공으로 다리를 뻗는다. 성경 속 유일한 소설 속의 욥이 자신을 버린 것 같은 신을 믿듯, 상황이 악화되어도 신은 자신을 버리지 않았음을 필사적으로 믿듯이.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나는 그보다 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을 믿는다. 신념이나 이런 거창한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일 당장 무너지는 환각을 보고서도 밥 숟가락을 뜨고 스몰토크를 할 수 있기 위해서. 삶을 위해서 나는 신보다 모자란 사람을 믿고 어느 순간 배신도 당하며, 그때는 원론적인 나의 병을 욕하면서 절절매다가 다시 일어나는 삶을 반복하기 위하여.


조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울과 같이 평생 동안 안고 경영해야 할 내 숙제다. 그때까지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나에게 떨어지지 말아야 할 생존 전략이다. 믿음은 신념에 기대면 필패한다. 생활에 기대어야 유지될 수 있다. 부디 내 인생에 배신이 너무 많지 않기를.




많은 분들과 글로 소통하고 싶습니다. 구독과 라이킷, 댓글로 얼마든지 저와 대화를 나누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글이 천명인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