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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희 Nov 14. 2023

따돌림 상처의 생존전략

이 글을 모든 왕따로 상처 있는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왕따를 당했다. 꽤 질이 나빴다. 일진 여자애들은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영문도 모르고 내 따귀를 때리고, 남자애들은 나를 옥상에 데리고 올라가 내 배를 발로 걷어찼다. 내게 더럽다, 병균이 옮는다, 같은 식으로 내가 무언가를 만지면 그 물건을 눈앞에서 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나와 짝이 된 아이가 울었다. 내 사물함의 물건들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은 그런 것이다. 내가 자신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걸 안 어떤 여자애가 다른 왕따를 끌고 와서 주차장에 데리고 가 서로의 따귀를 때리게 시킨 일이었다. 나는 그 일이 되게 모욕적이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말하면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지리멸렬한 이야기는 대충 이 정도만 해도 어떤 왕따를 당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가 싫었지만 집에는 말할 수 없었다. 새아버지는 나를 때렸고 엄마는 일을 하러 집에 없었다. 나는 점점 곪아갔다. 당시 나는 보수적인 학생이라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일한 탈출구는 글을 쓰는 일이었다. 판타지도 쓰고 2차 창작도 했다. 글 속의 주인공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내가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면 댓글이 달렸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피드백은 글 쓰는 사람을 춤추게 했다. 사실 그렇게 극복... 까지는 아니고 버텼던 것 같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병증이 온 것도 아마 그 영향이 아주 없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생이 기묘한 점이 있어서, 완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니까 자유로워지는 게 있었다. 어차피 너희는 내가 비위를 맞춰도, 비굴하게 굴어도, 웃어도, 울어도 싫어할 거잖아? 지금 생각하면 매슬로우의 5단계 이론 중 3단계인 애착의 욕구가 아니라 2단계인 안전의 욕구에서 허덕이며 살았던 것 같다. 당시 나에게 사람이란 건 걸리적거리는 존재였다. 어차피 나는 언제나 위험하고 왕따가 아니었던 적이 없으니까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모르는 나는 인터넷 세계로 빠져들어 글만 열심히 썼다. 


팁이 있다면 왕따를 당하는 학생에게 가장 좋은 학교의 공간은 도서관이라는 것이다. 도서관에는 오는 사람만 온다. 그리고 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와 상황이 같거나 나에게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판타지 소설이나 일본 문학 같은 것을 열심히 읽었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같은 작가들을 알게 된 건 그때쯤이었다. 사서가 있기 때문에 일진들도 와서 깽판을 치기가 힘들다. 나는 글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니까 아주 좋았다. 아직도 석양이 지는 도서관에 내리깔리는 노을빛이 책 모서리에 걸치는 감각을 기억하고 있다. 따뜻한 추억이다.


순정만화 <후르츠 바스켓>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면 누군가가 사랑해 주는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정확한 대사는 아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폭리에 가까운 사랑을 받아봐야 한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룰을 익혀야 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사람에게 사랑을 올바르게 줄 수 있는지. 세상에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규칙적인 행동 패턴이 있고 그걸 익혀야 한다. 그것도 다 학습의 영역이다. 왕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마음속 상처도 상처지만 사람과 어떻게 관계 맺기를 하는지를 배울 수 없다는 데 있다. 


나는 모든 건 학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신이 살아있는 이유는 신이 아직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방법도,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도, 하나하나 재활 치료를 하듯이 배워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듯, 휘파람을 처음 불듯, 세상에서 새로이 배우는 일은 분명히 즐거운 일이니.




제가 왕따를 당했을 때 유일한 구원은 글에 달리는 좋아요와 라이킷, 댓글 같은 것이었습니다. 글을 재미있게 보셨다면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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