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 부산대점, 부산에서는 상영하는 곳이 몇 없는데 그중에 한 곳! 무삭제판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 개봉되었다.
패왕별희와 장국영은 워낙 유명해서 언제가 보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이 영화는 한 명의 인물이 아닌 조금이라도 표현되는 장면이 있는 모든 인물들 각자의 삶의 비극을 엿볼 수 있다. 시대적 배경에서 오는 인간적 갈등과 연결된 관계 속에서 개인의 처절한 슬픔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인물들의 변화하는 감정선을 볼 수 있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그리고 두지(청 데이)가 장대관에게 강간을 당하고 나오는 길에 버려진 아이를 데리고 갈려고 하자. 스승님이 "모두에겐 각자의 운명이 있다"라는 느낌의 대사를 하는데 스쳐 지나가는 듯한 장면이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인물들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청 데이(두지), 경극 그 자체가 되어버린 예술가
이 영화에서 가장 순수하고 어쩌면 감정의 변화가 많이 없는 인물이다. 엄마에게 버림받듯이 경극 학교에 맡겨진 두지의 인생에서 강요받지 않고 억압받지 않은 것은 없다. 육손이여서 경극 배우가 될 수 없다는 스승의 말에 엄마에 의해 강제로 절단된 여섯 번째 손가락, 남성이지만 여성의 역할을 맡아 바뀌 된 자신의 성에 대한 정신적 인식 등 하지만 기댈 곳 없는 두지는 경극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경극 그 자체인 청 데이로 성장하게 된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들을 읽어봤을 때 동성애에 대해서 많이 다루던데 나는 개인적으로 청 데이는 동성애를 하는 인물이 아닌 우희로서 패왕을 사랑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사랑은 연인 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샬루(시투)가 주샨과 연인의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단순한 질투가 아닌 그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그가 갇혀있던 경극이라는 알을 사랑해 마지않는 패왕이 직접 깨부수는 듯한 충격이 아녔을까 싶다. 그는 격동적인 시대 흐름 속에서 제삼자들에 의해 사회적 위치가 여러 번 바뀌고 핍박 받음에도 불구하고 경극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변화가 없는데 이것은 그가 경극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며 격동의 시기에 천대받는 예술가의 비극적 생애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패왕별희는 엔딩과 동일한 방법으로 목숨을 끊어냄으로써 그는 온전히 우희 그 자체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주샨,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 노력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운명을 확인받은 비련의 여자
주샨을 보면서 느낀 점은 그녀에게서 청 데이가 비춰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둘 다 단샬루를 사랑한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인물이 가지는 분위기? 같은 것들이 영화가 끝나갈수록 비슷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청 데이와 다른 것은 스스로 운명을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매춘부로서 평범함과 거리가 멀었을 그녀는 평범을 동경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단샬루에게 평범성을 강요하는 부분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비극은 우희를 절대 배신하지 않았던 진짜 패왕이 아닌 가짜 패왕, 단샬루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가짜 패왕을 사랑하게 된 대가는 그녀에게 너무 가혹했는데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매춘부라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운명을 확인 사살당하고 만다.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 그녀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때 결혼식 날 입었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 그녀에게 있어서 결혼식이란 거스르고 싶은 운명으로부터의 도피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의 시작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녀가 가장 행복에 부풀어 있었던 순간이 아녔을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옷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또한 우희의 모습을 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청 데이의 모습과 겹친다. 둘 다 가장 갈망했던 모습을 하고 그 모습인 체를 유지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단샬루(시투), 혼돈을 품은 나약한 가짜 패왕
단편적으로 보면 단샬루는 시투였던 시절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실망감을 안겨주며, 혼란했던 시대적 흐름과 비슷하게 변화무쌍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고 인간의 본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인물이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는 있을지부터 고민되는 슬픈 시대에 엄청난 사랑을 받는 인물로 초반에는 당돌하고 시대적 압박에도 맞서 싸우려는 패왕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청 데이에게 자신은 가짜 패왕을 할 것이라고 뱉은 말이 씨가 되었는지 극 중 스토리가 흘러갈수록 나약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화도 나지만 그의 변화야말로 인간의 본성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어릴 적 경극 학교 친구, 아내, 그리고 반평생을 함께한 청 데이까지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에게 무슨 의미일지 고민하게 만든다. 시대의 압박에 못 이겨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신하고 그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살아가는 것.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많은 중국인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청 데이가 함께 경극을 하던 중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그의 얼굴에서 다양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 그의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나는 보았다. 그 미소가 의미하는 바를 모두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먼저 청 데이가 두지였던 시절에 많이 틀렸던 대사를 언급하며 청 데이를 두지라고 부른 것에서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우희가 되어버린 청 데이에 대한 찬사와 과거 시투였던 자신을 되새기는 미소가 아녔을까 한다.
이 셋을 제외하고도 쌰오쓰나 원대인 등 다른 인물들도 각자의 비극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장면들에서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마무리를 하며, 이 영화는 여러 번 보면 본 횟수만큼 감상평이 달라질 것 같다. 영화를 볼 때의 내가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는지에 따라 이야기할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경극이라는 중국의 문화적 특징,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비극사와 변화하는 심리, 역사적 사실과 그 당시의 시대상 등등 다채롭기 때문에 심오하지만 주기적으로 만나고 싶은 매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