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만 했다.

by 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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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온전히 나에게 속해 있고, 내 안에 있으며 내 일부이고, 내 존재의 근간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전해 들은

나의 태몽에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나 보다.


나의 기억은 두 번의 큰 가위질이 들어갔다.

그 부분이 편집되어 검은 공백만 남았다.

왜 검은가 하니 내가 칠해버린 것 같아서 이다.

무의식의 무의식으로 밀어낸 이는 분명 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면서 살기에는 내 존재의 근간이 흔들릴 것 같아서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때에 옆에서 나를 지켜본 엄마는 일부러 기억할 필요 없다고 해왔다.

하지만 서른셋이 되고서야 묻고 또 물어보아서 알게 된 여러 사건들.

마치 타인에게 일어난 일들을 듣는듯한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도 드라마에서처럼 어떤 큰 충격과 함께 기억이 돌아오는 일은 전혀 없었다.

다만, 늘 느껴오던 부유하는 듯한 자아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늘 갖고 있던 억울함과 배신감과 분노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내면의 울음 때문에 불면증이 지속되고 끝내 꼭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던 밤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기억, 나의 근간을 정리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오색물고기」를 쓰기에 이르렀다.


그때의 일을 들은 그대로 기록하는 것보다 동화같이 이야기하고

비유와 상징 안에 꼭꼭 숨겨두기로 했다.

독주를 그대로 들이키는 것은 나로 충분하니까.

「오색 물고기」를 읽는 타인은 토닉워터에 레몬과 라임도 곁들여서 맛을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나처럼 따돌림과 폭력으로 인한 기억상실을 겪고 10대와 20대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몽에 시달리며 불면증과 우울증에 꼭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아주 조금은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몽까지 거슬러 올라가 「오색 물고기」를 써야만 했던 것 같다.

물고기의 근간인 물,

존재의 근간, 그 기억의 길이 끊어져 죽어가는

오색물고기를 살려야만,

그래야만 했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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