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나는 또 돌아볼 테니까

by 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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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는 또 돌아볼 테니까, 이번에는 저기 저 지점까지만이라도 가보려고 한다.



1. 환대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의 환대가 필요하고, 적절한 장소도 주어져야 한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그래, 환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 느끼는 그곳.

'돌아가야 하나', '돌아가고 싶은 건가' 하며 늘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내게 묻는다.

내가 환대받았다고 느끼는 그곳, 돌아가고 싶고 계속 있고 싶은 그곳은 바로 음악이다.

맞다.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나뿐만이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예술은 신병이라고도 부를 정도로 많은 이들이 뒤돌아보며 발걸음을 쉬이 돌리지 못한다.


나의 가치관의 기반,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어린 시절 동안 나는 노래를 부를 때에 환대받았다.

오빠의 넘치는 재능에 밀려 아무것(nothing)도 아니었지만 노래방에 가서는 내가 무엇인가(something)가 되었다. 교회에서도 노래를 부를 때에 무엇인가 되었고, 따돌림으로 또래들의 기피대상이었음에도 노래를 불렀을 때 주류 중 한 명이 내게 주목하며 칭찬해 주었다. 어딜 가나 노래를 불렀을 때에 나는 환대받았다.

혼자 있을 수밖에 없던 시간에도 대중가요를 들으며 노래 가사와 음악으로 상상되는 장면들 안에서 환대받았다. (H.O.T - 전사의 후예, 서태지 - 환상 속의 그대)

하지만 나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게 아니었고 외모도 평범했고 나의 부모님은 이런 나를 믿고 밀어주는 분들이 아니었다.


20대 내내 다른 일을 전전하면서도 한 손에는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쥐고 놓지 못했다.

결국 뒤늦게 20대 후반이 되어서 음악대학을 갔고 거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하게 되었다.

하지만 또다시 나는 그 길에서 뒤돌아섰다. 사람과 돈 때문에.


사회에서는 돈을 버는 것이 환대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일을 했을 때에 그것으로 돈을 벌면 그래도 나름 환대받았다고. 그래서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도 환대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데 자꾸만 나는 또다시 돌아본다.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내가 무엇인가(something) 되는 그곳을 향해.



2. 앨리스와 도로시


앨리스와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HOME. 돌아가야 하는 곳, 근원, 혹은 내가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러브, 데스+로봇 : 지마 블루」의 지마처럼 가장 단순한 즐거움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늘 불만이 많다. 불만의 근원은 이것이다.

"언제쯤이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에게도 봄이라는 게 오긴 할까, 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보지 못한 것을 꿈을 꾸는 게 가능한 것일까.." 마치 over the rain bow를 부르는 도로시처럼 저 멀리 어딘가에만 존재하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처럼, 나 자신도 모르는 그 무엇을 꿈꾸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앨리스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고, 도로시는「오즈의 마법사」일까.


여러 가지 견해가 있겠지만 오늘은 그저 내 생각에 끼워 맞추기로 했다. 잠들어 있는 앨리스를 깨우는 것도 앨리스이고 도로시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도로시이다. 돌아가야 하는 그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열쇠가 있었다.

그런데 이 둘은 '돌아감'에 있어서 누구를 의지했는가가 달랐다. 앨리스와 달리 도로시는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야만 집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오로지 오즈의 마법사만을 의지하며 그를 찾아 나섰다.

물론 모험 속에서 선택하고 싸우며 성장한 앨리스와 도로시, 모두 집으로 돌아가긴 돌아간다. 다만 둘 다 돌아갈 수 있는 열쇠는 자기가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그러니까 어떤 방법이 되었든지,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는 방법은 내가 알고 있고 그 열쇠도 내가 갖고 있다는 것이다.



3. 막다른 길


지도 앱이 발달했음에도 유동인구가 적은 곳이거나 새로 생긴 길은 정확하게 표시되지 않을 때가 있다. 표시되어도 사람이나 차가 다닐만한 길이 아닐 때도 있다.

백수 시절 그런 곳을 자주 갔던 것인지, 우연히 여러 번 그런 상황을 겪었다.


그날도 그랬다. 더운 봄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좀 걷고 싶어 무작정 버스에서 내렸다.

눈으로 보기에 하천이 보여서 하천길로 가려고 했는데, 지도에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하천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보였다. 다만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계단까지 가는 길이 정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충 눈대중으로 갈만한 길을 탐색해서 걷고 또 걷는데 앞을 보니 길이 막혀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다시 돌아갈까, 저 큰길로 가면 분명 내려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하며 한참 서 있었다. 낮이었지만 인적이 드물어서 무서웠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우선 저 막다른 길 끝까지 가보기나 하자는 생각으로 걸었다. 큰길로 가려면 한참을 더 걸어야 하기도 했으니까.

역시나, 길은 작은 나무들과 벽에 가려져 있었다. 옆으로 굽은 길을 따라 가보니 이제 막 완성된 계단을 만났다.


많은 길잡이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게 될 거라고 조언해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 세계는 블랙스완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일어난 일들이 내게도 똑같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주팔자 같다고 다 똑같이 살던가? 각자의 환경과 환경에 의해 형성된 가치관과 가치관으로 인한 선택이 모두 다른 인생을 만들어내지 않던가?

물론 대부분이 가는 큰길에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따라 가면 분명 도달할 수 있다. 대부분이 그렇게 산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길을 이탈한 것 같다. 너무도 오래전에.



4. 무지개


이미 남들이 다 가는 그 큰길로 가기에 너무 늦어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어릴 적 환대받았던 그곳, 환상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곳을 뒤돌아본다.

하지만 지금은 저 환대는 환상인 것을 느낀다. 저 환대의 환상은 아무것도 아닌 내가 대단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한동안 파리 증후군을 겪었더랬다. 덕분에 나는 그 길을 가기를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다시 아른거린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무지개는 조금 떨어져서 보아야 하는 것처럼, 어릴 적 환대의 환상 주변부에서 무지개를 보듯 보기로. 그래서 다시 그 길을 아주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음악도 아니고 글도 아니고 그냥 무엇도 아니다. 그냥 나를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아마도 나는 또 돌아볼 테니까.


그리고 단호하게 길이 없다고 하는 무언의 벽을 '나'라는 열쇠로 열어보려고 한다.

"모든 벽은 문이다" - 정호승


아니다. 이것도 다 꿈같은 소리다.

그저 이번에는 저기 저 지점, 막다른 길까지만이라도 가보려고 한다.

저 벽의 코앞에 가서 노려보다가 또다시 뒤 돌아 설지라도 가보려고 한다.


적어도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대단한 것도 무엇인가도 아닌, 별것 아닌 것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래, 별것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는 조금은 나아보인다.


긴 시간 아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두려워하고 고민한 끝이 이렇다.

거참.. 미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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